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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2. 2024

아빠에게 애인이 있는 것 같다

가족

우리 가족 굉장히 화목해. 아빠랑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한 두 번 정도밖에 안 싸우시고 사이도 굉장히 좋으셔. 난 몇 년 전에 아빠한테 애인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아빠 핸드폰을 빌려 쓰다가 한 사람 문자만 계속 와있는데 내용이 범상치가 않은 거야. 그때만 해도 어리니까 모른 척 가만히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자기 너무 보고 싶은데 못 봐서 짜증 나서 그랬어 자기야 사랑해’ 이렇게 문자가 와 있는 거야. 옛날엔 일부러 막 남자이름으로 저장해 뒀는데 얼마 전에는 그냥 번호로 뜨더라. 막 그 뒤에 엄마 문자도 있고 그래서 너무 화가 났어. 사람이 이렇게 가식으로 살아도 되나 싶어서. 근데 내가 뭐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어. 

그리고 나 재수생이서 학원에서 막 공부하고 있거든. 어떤 남자애가 집 근처에 살아서 우리 집까지 데려다 준걸 아빠가 본거야. 그날 아빠랑 싸웠는데, 아빠는 내가 친구 엄마 차 타고 온다고 거짓말 쳤다는 사실에 화나서 화내는 거라고 하시는데, 사실 내가 보기엔 공부한다는 애가 남자랑 놀고 온다 뭐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애. 근데 진짜 밤까지 공부하고 집 방향 같아서 얘기하다 데려다 준거거든. 그래서 그날 싸울 때 ‘아빠도 거짓말 하잖아!’ 하고 소리쳤어. 너무 화가 나서 ‘난 적어도 건전한 만남이야!’ 그러면서.. 그니까 아빠가 눈치챈 건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막 물건 던지려고 하면서 내 말 막으면서 과민반응 보이는 거야. 근데 나 아빠랑 굉장히 친해. 다른 애들이 엄마랑 친한 것처럼 난 아빠랑 친해. 평소에는 싸워도 그다음 날 되면 괜찮고 근데 이번엔 지금 일주일째 냉전 중이야. 아빠가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주고 그러는데 그날 이후로 완전 사사건건 시비 걸면서 차도 안태워주고 걸어가라 그러고 차라리 말 안 걸면 괜찮은데 완전 짜증조로 얘기하고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고 화나고 그래서 공부가 안 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생각이 들고 억울하고 그래서 사실 그 문자 나중에 때가 오면 쓰려고 그 문자 내 핸드폰에 전송해서 저장해 놨거든. 

아빠한테 얘기하는 게 좋을까? 엄마는 아빠가 그런 짓 하는 거 상상도 못 하셔. 그리고 엄마는 아빠 너무 사랑하셔서 내가 이 말하는 순간 우리 집안에 행복이 다 깨질 것 같애. 근데 아빠가 그렇게 계속 사시는 게 놔두는 게 옳은 일도 아닌 것 같애. 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돼? 이거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요즘 이 일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미치겠어. 말하는 게 나을까? 계속 이렇게 답답하게 모른 척 참는 게 나을까?




아빠한테는 그냥 어색하게 돼버린 거잖아요 지금. 아빠한테 그냥 다 까놓고 얘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 감아준 것도 아니고. 아빠한테는 뭐 ‘아빠인생이니까 아빠 알아서 해라 단지 엄마 눈에서 눈물 짜게 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그냥 아빠가 어른이니까 어른답게 행동해 줬으면 좋겠다’ 이 정도 경고만 날리고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습니다. 그게 말이죠 만일 아빠가 바람이 난 게 정말 늦바람이 나가지고서 가정이 깨질 정도의 정말 쇼킹한 뭔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 거라면, 딸내미가 울고불고 뭐 말리든 아들내미가 자살기도를 하든 그게 말려지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엄격히 얘기하면 아버지도 아버지 인생이 있는 거고,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는 건데, 어른은 어른의 고민을 하면 되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고민을 하면 됩니다. 아이들의 고민이 어른들의 고민보다 더 커요. 그리고 어린이들이 더 고민할 게 많죠. 궁금한 것도 많고. 힘든 거예요. 어른은 어른이니까 뭐 고민이 있든 뭐가 있든지 간에 어른이니까 라는 문제로 자기가 감당해야 될 부분이 있거든요. 이 부분들은 부모님이 두 분이 감당해야 되는 부분이거든요. 어른들의 고민의 영역이거든요. 그리고 뭐 어떤 이런 문제가 있는데 지금 겨우 그걸 가지고 얘기하느냐 말씀하실지 몰라도, 아버지 핸드폰에 있는 문자 훔쳐보고 그거 내 핸드폰에 전송하고 그거 가족끼리도 용납되는 행위 아니거든요? 뭐 그럼 물론 아빠의 외도는 용납되느냐라고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아빤 아빠의 인생이 있고 엄만 엄마의 인생이 있데도요. 


그리고 그 문제는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 부부라는 게 과연 어떤 룰로 유지되는 것이냐. 그리고 부부관계라는 게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종류의 부부관계가 있는 것이냐. 우리는 한 종류의 부분관계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양쪽 부부가 전부 신의를 지키고 두 사람 다 너무 사랑하고 화목하고 그것만이 완벽한 부부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부부는 그 두 사람의 룰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거든요. 제삼자가 개입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여기서 자녀는 제삼자가 아닙니다. 자녀는 그 부부관계에 대해서 개입하거나 말할 수 없는 제삼자의 입장은 아닌데 또 웃긴 게 그렇다고 부부 당사자는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처신을 하는 게 좋겠구요. 여기서 아빠에게 압박을 준다든가, 추궁한다든가, 재판한다든가, 판단한다든가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돌아올 것도 아니고 그럴 권리를 100% 자녀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부모는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고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죠. 그리고 어른들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들은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그런 일로 괴로워하지 않도록 하는 책임들이 따르는 거니까. 


가령 저는 지금 상담을 보내신 분의 아버지에 대해서 저도 속으로 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어떤 점이 못마땅하냐면요, 외도관계가 실제로 있으신지 어떠신지는 모르겠어요. 그게 외도나 뭔가 썸띵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내용만 들여다봤을 땐 별거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근데 왜 딸내미한테 걸려?? 저는 그게 참~ 못마땅해요. 그리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실수를 저지르고 신은 그것을 용서하죠. 그래서 뭐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남자가 외도해서 생기는 문제들만 얘기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는 여성의 외도로 인한 문제도 엄청나게 많아요. 엄마가 바람피우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고요. 똑같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어린 시절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만일 결혼했는데 내 배우자가 바람 한번 핀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바로 이혼이다. 이거는 내 부인이 될 사람은 반드시 처녀여야 한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굉장히 어린 차원의 얘기라고요. 근데 실제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예를 들어서 자기 배우자가 바람을 폈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거거든요. 무엇이 저 사람을 외도를 하도록 내몰았나. 나의 어떤 행동이 잘못됐기 때문에 저 사람이 저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내가 행동을 했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있거든요. 저 같으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지만 만일 우리 집사람이 바람을 폈다고 하면 제가 생각할 때 그건 제 잘못이거든요.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제가 어떤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결론밖에 안 나오거든요. 그렇지 않고 내가 잘하고 모든 것을 잘했는데 그 사람이 그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엄마아빠를 보는 기준도 그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관계라는 게 뜨거운 사랑과 열렬한 연애가 평생 유지되는 커플들은 상당히 드물어요. 물론 서로 막 경멸하고 짜증 나고 이러는데도 자식 땜에 참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지만, 뜨거운 사랑이나 격렬한 연애보다는 우정과 같이 아이를 길러나가는 동반자로서 입장은 맞는데, 연애감정이라든가 사랑의 느낌 같은 것들은 사라지는 그런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 사람들도 엄마 아버지 이전에 인간인데. 뭐 제가 지금 외도를 옹호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옳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라는 거죠. 그 사람을 재판하고 단죄하려고 들기보다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유를 한번 들여다보자는 얘기죠. 


어떤 커플 같은 경우에는 약간 아슬아슬하고 위험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실루엣을 회복하고 단단한 반석 위에 부부애가 올라서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을 몸이 상처가 나면 스스로 병균을 잡고 치료하는 자정능력이 있는 것처럼, 부부간 커플이라는 것도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부부싸움을 하고 트러블이 일어나고 하지만 그 안에서 트러블들을 녹여내고 소화해 내고 꿀꺽 삼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감당이 안 되는 정말 큰 트러블을 목으로 꿀꺽 삼켜서 목이 메일 정도로 걸린 상태에서 오랜 세월을 힘겹게 힘겹게 둘이 빛을 가리면서 가기도 하고. 어떤 커플들의 경우에는 그 트러블이라는 것을 꿀꺽 삼킨 다음에 그걸 녹여서 그게 아주 뜨거운 반죽이 되가지고서 두 사람 사이를 강하게 결합시켜서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자잘한 다툼과 이런저런 사연들이 두 사람들을 강하게 결합시켜주기도 하거든요. 이런 것은 케이스마다 수천 수 만 개의 케이스가 있어서 정말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사람 개인 한 명 한 명이 다 다른 소우주가 있는 것처럼 부부사이도 수 만 개 수 억 개 소우주들의 결합이라서 그걸 남이 정말 뭐라고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저는 그래서 그런 외도문제나 이런 것들은 법이 법률로 재단해서 누가 잘못이네 이렇게 할 수 없다고 믿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져야 할 책임은 그러므로 인해서 상대방 배우자가 받게 될 상처, 내 상처, 두 사람 간의 문제, 이거는 차치하고라도, 자녀들이 받게 될 고통에 대해서는 좀 섬세하게 신경을 써야 되지 않겠느냐. 왜냐하면 어른이니까. 부모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어른이니까. 자녀들은 그 문제를 상처를 받게 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애들은 모르게 해 줬어야죠. 외도하고 문자 하면서 그걸 딸내미가 보도록 그렇게 부주의하게.. 외도할 자격이 없어요.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그 딸내미 아들내미들은 이러다가 우리 부모님 깨지는 건가 우리 아빠 바람났나 딴 사람 생겼나 그러면서 흑흑 흐느끼며 밤에 이불 덮고 울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세상이 어두컴컴한 암흑 같은 지옥으로 변해버려요. 그걸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교육을 받는 사회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란 말이죠. 애들한테 왜 상처를 주도록 그렇게 구냔 말이에요. 그니까 꼭 못 놀아본 것들이 늦바람 나면 이런단 말이에요. 아 정말 답답해. 왜 애들을 괴롭게 만들어. 


@20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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