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탄쟁이 Apr 03. 2024

시험정책 때문에 임용고시 낙방해서 우울함

진로*교육*미래

마왕 나 좀 혼내줘.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어. (중략) 난 지금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어. 죽어라 공부해서 과 수석으로 졸업까지 했어. 근데 자꾸만 마음이 약해져서 큰일이야. 요즘 임용고시 합격이 하늘에 별 따기인 거 알지? 작년 교육청에서 예정공고 낼 때 그 지역에 시험이 없다고 해서 다른 자격증 준비하느라 중간에 공부 그만뒀었거든.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험 없다 해놓고 시험 한 달 전에 시험이 있다는 거야. 돌아버리는 줄 알았잖아.

그런데 겨우 0.8점 차이로 아깝게 안 된 거 있지. 시험 없는 줄 알고 공부 그만뒀는데도 그 정도 점수 나온 거 보면 내가 그전에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에 더 노력해서 이번엔 꼭 합격하자 이렇게 생각을 해. 그런데 한 번씩 울화가 치밀 때가 있어. 그 0.8점 때문에 180도 달라져버린 내 모습을 보면 미쳐 버릴 거 같아. '0.8점 밖에 차이가 안 났으니 이번에 열심히 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천사가 말하는데 옆에서 악마가 자꾸만 '그렇다고 올해 꼭 합격한다는 보장도 사실은 없어' 이러는 거야.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울증 때문에 참 힘들었어. 하루에 평균 10번 정도는 울었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날씨가 좋으면 눈물 나고 비 오면 슬퍼서 눈물 나고 노래가 좋아서 눈물 나고 노래가 슬퍼서 눈물 나고. 우울증 테스트하는 거 해봤는데 바로 심각한 수준의 바로 아래 수준이더군. 즉시 전문가와 상담 및 치료 요망이라나. ... 

나 올해는 꼭 합격하고 싶어. 나 합격할 수 있도록 맘 강하게 다시 다잡을 수 있게 마왕이 내 약해진 마음 혼 좀 내줘.




내가 왜 화를 내야 되는데? 왜 혼을 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뭘 혼을 내달라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시험에 떨어진 게 무슨 혼날 일도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살다가 좀 운 때 안 맞아가지고 나름대로는 꽤나 은근히 자신도 있었던 시험인 모양인데 한 달 전에 꼴랑 공고 나와서 그것도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0.8점 차이로 떨어졌으면 짜증 나고 때려치우고 싶지. 그리고 왕창 점수 차이 났으면 '에휴 어차피'라고 생각하지만 0.8점 차이였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다 할 필요가 없을 시간들인데 운만 좀 좋았어도 되는 시간들인데 지금 내가 고생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인간이 맘이 약해지고 당연한 거거든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우울해지고 사람이 눈물이 나고 짜증이 나는데, 0.8점 차이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고 지금 그렇게 짜증이 나고 마음이 약해지고 막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고 이러는 걸 못난 모습이라거나 자기를 자책하지 말고요, 자기 자신을 좀 편하게 해 주세요. 인간인 이상 그렇게 약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에 또 붙는다는 보장도 없어요. 진짜야. 진짜로.


제가 어릴 때 박찬희 선수의 권투경기를 보고 배웠잖아요. 박찬희 선수한테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던 오꾸마 쇼지라는 참 초라한 도전자였지. 지더라고. 그 잘 나가던 박찬희가. 그 다음번에 재도전에서는 어린이 손목 비틀듯이 두들겨 패고 다시 타이틀을 찾아올 줄 알았는데 두들겨 패다 패다가 나중에 체력이 달려서 13라운드에 주저앉더라고요. 그 다음번에 했는데 또 안 됐어요. 참 이거 손만 대서 집으면 끝날 것 같은 경기인데도 그것을 못 집어옵디다. 


우리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에요? 손만 대면은 툭 집어올 것 같은 임용고시. 우리 과에서 수석 합격씩이나 한 나 아니면 누가 되나 싶었지만 0.8점 차이로 약 올리듯이 떨어지죠? 이 기회에 배우셔야 될 것은 겸손이 아닌가 싶어요. 근데 그 겸손이라는 게 어떤 겸손이냐면, 아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로구나, 이런 겸손이 아니라, 이야기 들어보니까 공부 잘하세요. 근데 세상 모든 일이 내 실력 플러스 운이라는 게 따라주지 않으면, 운이라는 게 세상에서 크게 작용한다고요, 다음번 시험? 다음번 시험에도 운 없으면 또 떨어질 거예요. 0.8점 차이가 아니라 0.08점일 수도 있고 80점 차이일 수도 있어요. 오히려 더 짜증 나는 건 저번엔 0.8점 차이로 떨어졌는데 이번엔 20점 차이로 떨어진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나 공부 더 했는데. 악담하는 거 같죠? 악담이 아니고 무슨 얘긴지 한번 들어보세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 우리 인간은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노력을 하고 그다음 일은 사실은 하늘이 해준다는 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참 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시운이 나를 따라주고 운이 나를 따라주고 해서 풀려야 풀리는 거지, 지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인간이란, 정말 이 50억 인구 중에서 제일 잘난 인간 한 명 딱 뽑아서 선발대회 해가지고서 100차 예선 거쳐서 뽑은 그 제일 잘난 인간도 운이 이렇게 툭 자기 어깨 위에다가 운명의 여신이 손을 얹어줘야 자기가 할 수 있는 뭔가가 풀리는 거지 지 잘난 것만으로 가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럴수록 이제 종교에 귀의를 해서 신을 만나기도 하고. 뭐 자기 나름대로 논리나 세우기도 하고 그러는데 한번 이 경험을 했으면 제가 볼 땐 그래요, 마음이 좀 편해졌어야 되는데. 누구나 생각할 때 마음이 괴롭고 갑갑하고 짜증 날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볼 때는 마음이 더 편해지셨어야 되거든요. 그냥 픽 웃으면서 '나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지금도 잘난 건 맞는데, 플러스알파가 필요한 게 인간이란 이런 거구나'하고 생각하시면 편해지실 거예요.


그리고 좀 편하게 지난번 공부하는 것의 한 반만 하세요. 지난번에 분명히 붙을 만한 실력이 있는 거 0.8점 차이로 떨어졌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면 정신이 못 견뎌서 붕괴해 버려요. 아니 좀 재수 없어가지고 떨어진 시험이잖아요 상황을 보면. 그러면 뭐냐면 지난번 0.8점 차이로 커트라인까지 거의 다 가있었으면 지금은 비슷하게 기억 상기시키는 정도 공부 플러스 몇 가지 코스만 더 나가면 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럼 안전선에 들어간다는 얘긴데. 그럼 지난번의 공부의 반만 하세요. 나머지 시간은 자기 자신을 좀 즐겁게 보내고 친구들하고 놀고 그러면서 실렁실렁. 그렇게 해서 떨어지면 지금의 10배로 해도 떨어진다는 얘기고 당신은 이 시험하고 연이 안 닿는다는 뜻이니까 아하하하 웃고 딴 일 하시고요, 붙을 사람이면 반만 해도 붙을 거예요.


경쟁률? 요즘 뭐 임용고시의 그 살벌함? 글쎄 그 살벌한 게 과 수석하고 졸업하고 0.8점 차이로 떨어져 가지고서 눈 시뻘겋게 돼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데글데글하니까 살벌한 거 아니에요. 운이에요. 자 좀 편하게 생각하시죠. 우울증은 얼어 죽을 뭐 우울할 게. 다음에 시험 보면 붙겠구만. 고만 징징대고. 그게 사람이여.



@ 2005. 06. 08 


매거진의 이전글 잠 많은 여학생의 고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