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한쪽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는 카페이다. 그 카페는 2층짜리 카페인데 아래층은 유리를 통해 인도를 바라볼 수 있고, 위층은 가로수 나무들의 무성한 가지와 나뭇잎들을 멋지게 담아내는 카페이다. 나는 2층의 유리 쪽 구석 자리를 좋아해서 종종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카페 2층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꽤 낭만적인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읽고 있던 책은 ‘데이터 분석의 힘’이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의 책이었다.
건조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책에 푹 빠져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요란한 목소리에 집중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았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아직 날도 더운데 벌써 빨갛게 변한 나무가 있네!”
“오호호호! 그러게 말이야! 성격도 참 급한 나무네!”
1층에서 올라오자마자 두 명의 중년 아주머니 둘은 연신 호들갑이셨다. 뭐가 그리 놀랄 일일까. 궁금해져서 나도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직 바깥은 너무 더워서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길이가 짧은 옷들을 입고 다니고 있었고, 그것도 부족한지 한껏 인상을 구기며 더위를 이겨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머리 위로 아직 싱그러운 초록빛을 내뿜는 단풍나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앉은 구석 말고 반대쪽 구석에 벌써 빨갛게 변한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빨갛게 변한 단풍나무를 보고 감탄하기엔 내 나이가 아직 그리 많지도 않고, 문과적 감성도 없는 사람이라 난 창밖을 보며 이과적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식물이 변하는데 필요한 요소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낮의 길이’이다. 즉, 빛을 얼마나 받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너무 더워서 온도는 여름일지 몰라도 저 단풍나무는 아마 미세하게 변한 낮의 길이를 재빠르게 눈치챈 나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른 나무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찰나의 밤의 자리를 저 한 그루의 나무만 마음에 길게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먼저 색을 바꾼 단풍나무처럼, 따가운 인생에 누군가의 시원한 눈길 좀 더 머문 자리에 마음이 붉어지는게 사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