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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 Jul 10. 2018

천국에서 알바하게 됐습니다.

알바천국 천국의 알바 18기 최종 합격

  습관처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백수가 된 지 열흘, 게으른 몸뚱이지만 여전히 출근 준비하던 예전을 기억하고 있나보다. 또 밤새 퍼부었는지 꿉꿉한 바람이 밀려들어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아침은 뭘 먹지, 해야할 일이 있는데 뭐였더라, 비가 더 오려나,.. 억지로 다른 생각들을 떠올린다. 오늘은 지난 5일 봤던 천국의 알바 18기 최종면접의 결과 발표 날이다. 1차 서류 심사와 2차 온라인 미션 결과가 발표되는 날 그랬듯 합격 여부를 알려주는 문자가 오기 전까지는 온통 그 생각에만 매달려 있을 게 뻔했다. 1차와 2차 모두 오후 3시쯤 결과를 알려줬으니 이번에도 비슷하겠지, 그러면 한 오후 1시부터 초조하게 기다려야겠다, 쓸데없이 굳게 다짐해본다.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해야지, 화분에 물도 주고, 나한테 밥도 줘야겠다. 오늘 해야할 일들을 가만히 생각만 해보며 누워있었다. 핸드폰은 내 발치에 있었고, 지금이 몇 시쯤인지도 몰랐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 잠들 수도 있을 정도로 노곤한 상태였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헐레벌떡 화면을 보니 저장되지 않은 번호. 감이 딱 왔다. 좋은 예감이.

  전화기 너머의 상냥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내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천국의 알바입니다. 천국의 알바 18기에 최종 합격 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놀라고 감격한 목소리로 한번 되물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 애매하게 대답만 하고 말았다.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네, 네, 반복만 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게 앉아 뭘 해야할지 생각했다. 제일 먼저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설레발 치기. 아침잠에 빠져있는 언니를 흔들어 깨우고 합격 소식을 전했다. 언니가 귀찮아할 때까지 옆에서 호들갑을 떨다가 결국 쫓겨났다. 천국의 알바에 지원했단 걸 알고 응원해줬던 모든 지인들에게 한 명 한 명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지는 답장에 이모티콘 잔뜩 붙여 다시 답장을 보냈다. 이러는 내내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고 간혹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크게 터져나오기까지 했다.



  온 동네에 설레발을 다 떨고 칭찬과 축하도 받을만큼 다 받았으니, 이제 천국의 알바 결과가 나오기까지 미뤄뒀던 많은 일들을 처리할 차례였다. 발대식이 언제일지 몰라 잡지 못했던 약속을 잡고, 부모님과의 여행 일정도 조정하고, 학자금 대출 잔액을 어떻게 갚을지도 생각해봤다. 그러다보니 꿈같았던 기분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합격한 건 참 잘한 일이고 마음이 들뜨는 소식이지만 그 기분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 당장 눈 앞의 어지러운 거실을 청소하고, 쓰던 글을 마무리 하고, 오늘 만날 사람들을 만나야지.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잘 살아야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천국의 알바 활동을 위해 출국하는 순간이, 모든 활동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다가올 거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멋진 기회를 새로 만나게 될테다. 그 모든 순간에 내가 할 일은 항상 즐겁게, 나답게 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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