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만약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연락 주세요, 같이 해요 우리
네. 지금은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 같아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클래스101에서 공예 카테고리 전문 MD로 일했어요. 작년에 퇴사하며 그동안의 성과를 추려봤더니 4년 간 만났던 크리에이터가 1300명이 넘는 거예요. 또 기획한 온라인 클래스는 300개 가까이였어요. 어드민에서 찾은 숫자만으로 그랬으니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미팅, 중간에 여러 이유로 담당자 설정을 변경한 클래스까지 더하면 아마 훨씬 더 많을 거예요. 하나 더 자랑하고 싶은 건 그 클래스들이 모여 만들어낸 전체 매출액이 80억 원 이상이었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는 그렇게 큰 숫자가 아닐지 몰라도, 항상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뭘 이루고 있긴 한 건가' 하며 보냈던 4년이라 이렇게 숫자로 정리해 보니 '아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게 맞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면 공예라는 무대는 요즘 하는 말로 '찢은' 거 아닌가? 나 좀 전문성 있는데? 스스로를 추켜올리면서 '공예 전문 기획자'라고 자칭하기 시작했어요.
가능하죠. 저와 함께 한 작업이 크리에이터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게 될 때마다 큰 성취감, 그리고 비제대로 비전을 향해 달리고 있구나 하는 감각을 느꼈는데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래요.
어떤 작가님은 공예가를 접어야 하나 막막한 생각이 들던 차에 저로부터 클래스 제안을 받았고, 그 클래스가 대박이 나면서 작업실 월세 걱정을 덜고, 일이 너무 많아져 직원을 채용하셨어요. 어떤 분은 공방을 확장 이전하고, 어떤 분은 준비물 키트의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그 구성품 중 하나인 실을 대량으로 주문했다가 실 업계에 큰 손으로 소문이 났다고 해요. 공예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서 전업 작가로 먹고살기는 힘들 테니 직장을 구해야 하나 생각하던 분도 클래스가 잘 되면서 바로 공예 작가의 길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 하나만 더요! 제가 제일 직관적으로 딱 꽂혔던 일은, 어떤 분이 클래스가 너무 잘 되어서 수익이 왕창 늘자 여기서 돈을 더 벌면 세금을 왕창 내게 된다며 '이번 해에는 적당히 벌게 해 주세요, MD님'이라고 말했을 때였어요. 아... 나 크리에이터가 돈을 못 벌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벌어서 걱정하게 만들어드렸구나 싶더라고요. 어느 기획자가 이런 일을 쉽게 겪을 수 있겠어요, 그쵸.
아 네. 아니 글쎄 터프팅 브랜드 어피스오브애플 작가님이 아모레 성수로부터 단독 팝업을 제안받고 너무 멋지게 꾸려두셨지 뭐예요.
터프팅이 한창 유행하며 주가를 올릴 때에 터프팅보다 접근하기 쉬운 펀치니들을 이용해 터프팅 소품을 만들 수 있는 온라인 클래스를 기획했었고, 정말 대단히 잘 팔렸었거든요. 그 뒤로 클래스101에 소개된 작업 내용이 마치 포트폴리오처럼 작용해서 책 발간, 각종 인터뷰, 입점 등등 여러 제안을 받았다고 해요. 제안을 받아서 활동한 내용은 또 다음 제안으로 이어지고,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연결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여기 아모레 성수 단독 팝업! 너무 멋지지 않나요? 저 정말 큼지막하게 브랜드명 내걸린 현수막을 보는데 제가 다 뿌듯하고 행복하더라고요.
이렇게 클래스101에 온라인 클래스를 런칭하고 나서 여러 협업 제안과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었다는 작가님들이 정말 많아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도 벅차오른답니다.
맞습니다. 공예 MD 3년이면 핸드메이드 스마트스토어를 연다고... 여러모로 지지고 볶는 사이 저도 공예가가 되어버렸네요. '야야베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내걸고 뜨개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사실 브랜드 이름만 있는 수준이고 활동을 대단하게 많이 하진 않아요. 그래도 기쁘게 주소 남겨 봅니다. 알림 꾹 눌러주시면 언젠가는 예쁜 신제품으로 인사 올리겠어요.
사실 뜨개를 배운 것도 처음 공예 카테고리 담당이 되었을 때 내가 기획할 클래스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만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천부적인 소질과 재능을 발견해 가지고 작품도 창작하고 직접 온라인 클래스도 만들고 그랬네요. 아, 제 온라인 클래스도 구경하세요.
뜨개에 유난히 빠져버리긴 했지만, 그 외 다른 공예 분야도 클래스를 만들 때에 꼭 한 번씩 직접 배워봤어요. 이걸 처음 접하는 소비자의 마음은 어떨지, 뭐가 필요할지 느끼기 위해서요. 그리고 직접 온라인 클래스를 제작해 런칭하면서는 창작자의 마음을 알았죠. 힘든 점은 뭔지, 수지타산은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이렇다 보니 웬만한 공예 분야라면 작업 방식도 잘 이해하고 있고, 그걸 대중에게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수익을 내려면 어떻게 기획하면 될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요.
사랑했죠. 이런 말하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 퇴사하고 나서 환승연애2가 무지 유행할 때라 재미있게 봤는데요, 성해은 씨 서사를 보면서 엉엉 울었는데... 글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제 이전 연애가 아니라 클래스101과의 시간이더라고요... 나 정말 이 회사 사랑했구나 싶었어요. 퇴사하고 얼마 안 지나서는 마음이 하도 헛헛해서 물건을 잔뜩 사기도 하고 막 폭식하기도 했어요. 이거 전형적인 장기 연애 쫑난 사람이 하는 짓이잖아요.
아무튼 그렇게 사랑한 곳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진짜로 사랑했던 본질은 크리에이터, 그리고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들이었던 거 같습니다. 더 콕 집어보자면 '공예'라는 도메인까지요. 멋쟁이 공예가들을 잔뜩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시장 상황과 트렌드에 맞춘 기획으로 공예가들이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확 펼칠 수 있게 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공예가들에게 넉넉한 수익도 드리고 앞으로의 많은 기회들도 새롭게 연결해 드리고... 그러면서 공예 시장을 키우고 혁신하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질 때마다 그 사랑은 더 깊고 옹골차졌달까요.
고맙게도 클래스101 덕분에 제가 진정 사랑하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죠. 물론 그곳의 사내문화, 일하는 방식, 존경할만한 동료들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제가 클래스101에 머물렀던 건, 사랑해 마지않는 공예 크리에이터들을 만나 그들의 콘텐츠를 세상에 알리고 공예 시장을 일궈나가는 일을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속도로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곳에 있겠다 생각이 들자 퇴사도 생각하게 됐죠.
(제가 지금 이 말을 하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썼나요. 아이고.)
그 어디도 아닙니다. 그냥 바로 저예요. 호호
애매하네요. 많은 공예 작가님들이 제게 새로운 플랫폼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긴 했어요. 그게 진심이든 그냥 하는 말이든,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에서 공예 시장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죠. 사실 하도 많은 분들이 저에게 그런 요청을 주시니까 쓸데없이 호방해져서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원하신다면 만들어드리는 게 인지상정!' 하면서 여러 사업 모델을 그려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곧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다는 답을 내렸어요. 전 앞으로 공예가들이, 아니 단지 공예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시대를 지나 플랫폼을 더 영리하게 활용하면서 개별 브랜드로서의 역량을 키워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크리에이터 대상 서비스나 플랫폼도 그에 맞게 형태와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봐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는다면 플랫폼도 살아남기 어렵고, 크리에이터도 플랫폼으로부터의 구속(심하게는 착취)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테니까요.
문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아직 제가 명확히 그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지금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플랫폼과 서비스들도 원해서 그러고 있는 건 아닐 거잖아요. 처음부터 '크리에이터를 착취해서 수익을 내버리겠어'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짜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 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몰라서 정체되어 있는 것도 아닐 거예요.
'난 공예가들과 공예 시장을 끝장나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남들과 다른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저도 이미 시장에 있어왔던 실수와 패착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더라고요.
정말 사랑하는 일이고 정말 잘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만큼 신중하고 싶어요.
"가볍게 커뮤니티부터 시작해 봐"
이런 고민을 하던 제게 한 친구가 해준 말이었어요. 일단 뭔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공통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라는 거죠. 듣자마자 이건 당장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실은 여러 공예 작가님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대부분의 공예 작가들은 혼자서 작업하고 공방 안의 세상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 방향인지, 고민이 있을 때에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될지, 막막할 때 어떤 시도를 해보면 좋을지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대상도 없어요. 안 그래도 좁은 시장이라 서로 좋은 정보는 나누어 곱하고, 어려운 일은 나누어 덜어내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꽉 막혀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공예 시장 자체도 더 크게 확장할 기회를 잃고 경직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는 뭔가 바뀔 것만 같은 꿈틀거림이 느껴져요. 기존의 공예 작가들도 본인들에게 같은 일을 하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방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고, 좁고 한정적이던 공예 시장도 새로운 연령과 성격을 지닌 소비자·창작자의 유입으로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딱이다! 생각되는 이유예요. 공예가들이 모여 공감과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친구가 되고, 함께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낼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들기 딱 좋은 시기잖아요. 그래서 만들기로 했어요. 우선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공예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알게 될 거고, 그러면 제가 공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서비스나 플랫폼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힌트도 얻게 될 거라 생각해요.
그걸 되게 궁금해하시더라고요. 하긴 이름에 떡하니 붙어있는데 궁금할만해요.
사실 커뮤니티를 만들면 되겠다는 게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 아니면 정말 필요한 일이 맞는 건지 알아보고 싶어서 실험 차원의 모임을 두 번 가졌어요. 공예가 6분 정도를 모셔놓고 저희 집에서 가벼운 파티를 열었거든요.
모여서 맛있는 거 먹고 마시면서 그냥 놀아봤어요. 서로 선물도 교환하고 포춘쿠키도 까먹고... 처음 작가님들을 한 자리에 모을 때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막상 모여보니까 제가 따로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너무 재미나게 잘 노시더라고요. '공예'라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보니 그냥 모여있기만 해도 할 이야기가 쏟아졌고, 한 마디만 해도 웃음소리가 따라왔어요.
그렇게 작은 모임을 두 번 해보고 나서 확신했죠. 이거 된다! 공예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은 필요하다!라고요.
... 질문이 뭐였죠? 아 302 뜻. 사실 처음에는 다른 이름을 혼자 지어뒀는데 첫 모임에 오신 분들한테 기각당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우스운 이름이긴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분이 'OOO크래프터스클럽'이라고 짓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주셨는데 괜찮더라고요. OOO에 뭐가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다른 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첫 모임이 있었던 저희 집 호수를 갖다 붙였어요. 제가 302호 살거든요.
잘 모르겠네요 아직. 거창한 뭔가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가보려고요. 이 커뮤니티가 지금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 우선 그거 하나만 믿고 당장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다음 필요한 일, 그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겨나고 구체적인 목표나 방향성도 세우게 되지 싶어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그저 '공예'라는 주제로 모이고 싶은 이들을 모이게 하는 겁니다! 곧 꽤 규모 있는 네트워킹 파티도 계획하고 있어요.
첫 모임에 함께 했던 작가 한 분이 그런 말을 해주셨어요. '이렇게 공예 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건 지금 한국에서 베이님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라고. 너무 감사한 말이고, 진짜 그렇더라고요. 긴 시간 공예 전문 기획자로 일하면서 공예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와 명확한 문제 인식이 있었고, 또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작가들과의 신뢰와 네트워크를 쌓아온 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지금 한국에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다라... 이거 엄청나게 동기부여되는 사실이잖아요? 이 마음이 근거 없는 자만이 되지 않도록, 진짜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으쌰으쌰 잘 이어가 보겠습니다.
아, 만약 저보다 잘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꼭 연락 주세요. 같이 하자고요 우리.
[302크래프터스클럽]이라 이름 붙인 커뮤니티, 그리고 이를 시작점으로 해 펼쳐진 사업이나 서비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처럼 기록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는 이에게 벅찬 마음을 갖게 하는 몇몇 회사의 다큐멘터리가 그러했듯 전문 취재원을 붙이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니, 가상의 취재원이 날 따라다닌다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는 이 활동을 지켜보며 질문을 던지고 난 거기에 답한다. 그 내용을 정리해 때마다 공유한다. 부디 이 기록이 진짜 영상으로 남긴 레코드를 돌려보듯이 생생하게 다가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