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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 Feb 09. 2017

나의 독립출판 이야기 05

"내 인생 첫 사업, 계약서를 쓰다."

(4편에 이어)


  오늘은 잠시 예전으로 거슬러 가보려 한다. 독립출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내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계약서 쓰기.


계약 경험이 있는 이희정 작가가 계약서의 내용을 써주고, 사인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뭘 하든 구색 맞추기를 참 좋아한다. 공부를 할 땐 스스로 요약정리한 수첩을 과목별로 다 만들어야 속이 편했고, 게임에 캐릭터를 하나 만들면 '쪼렙'일 때부터 모든 장비를 다 갖춰야 할 맛이 났다. 그런 내가 나름 사업(!!)을 하는데, 거기다 사람을 2명이나(!!!!) 얻어 하는 일인데 계약서를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양식으로 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몰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틀을 만들었다. 어떤 내용을 담아야하는지도 몰라 삽화 작가에게 물어봤다. 그가 일전에 서명했던 계약서를 토대로 우리 프로젝트에 적합한 계약서 내용을 만들어줬다. 다음 글이 될 번외편에서 계약서의 세부사항을 올릴테니 관련된 계약을 하게된 초심자가 있다면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사실 이 글에 함께 올리려 했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계약서 파일이 없다. 아무래도 어지러운 방을 뒤져 프린트된 계약서를 찾아야할 모양이다).



  작가들을 만나 종이 위로 사인을 주고 받을 때,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내가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려는구나, 멋지게 해내야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렇게 부푼 마음을 갖는 것이 즐거워 구색 맞추기를 그토록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법마저도 잘 몰라 헤매면서, 내 인생 첫 사업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184일의 남미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른 게이트를 찾아 뛰어온 격이다. 표를 확인하고, 친철한 인사소리를 지나 자리에 앉았다. 오랜 비행 끝에 또다른 비행기로의 환승. 이번 비행도 나를 목표한 곳으로 무사히 데려다줄지, 도착한 곳에서 꿀같은 휴식을 맛볼 수 있을지, 궁금해 얼른 다음장을 넘겨보고 싶었다.



세 사람 모두 따로 본업이 있어 새벽에 만나 회의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달려준 두 사람에게 될 수 있으면 많은 금액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계약서를 쓸 때부터 지금까지, 두 작가에게 참 미안한 점이 하나 있다. 두 사람이 해준 몫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계약금으로 줬다. 어느 정도 금액이 적당한지를 몰라 두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조율해서 정한 금액이지만, 아마 알고 지내던 동생이 하는 프로젝트라 부러 높지 않은 수준을 말했을 것이다.

  "잘 돼서 두 분한테 쏠쏠한 돈벌이가 되면 좋겠어요."

  책이 잘 팔리면 추가정산을 해주겠다며 내가 덧붙였던 말이다. 결과적으로 추가정산은 꿈도 못 꾸게 됐지만, 그 때는 정말 대박이 나길 바랐고 또 어느 정도는 그러리라고 믿기도 했다. 내 책을 보고 세상이 깜짝 놀랄지도 몰라. 출판사에서 연락도 오고 1쇄, 2쇄, 3쇄,.. 계속 찍게 되지 않을까? 막 방송 출연 요청 오고 강연하게 될 수도 있어. 설레발이란 설레발은 다 치며 강연을 무슨 말로 시작하고 끝맺을지 수첩에 끄적여보기도 했다. 내 오랜 습관이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자라는 얄팍한 기대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늘 내게 큰 원동력이 되었다가, 끝에 가선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안 좋은 기억은 오래 가져가지 않는 성격이라 좌절하고, 다시 기대하고, 또 좌절하고, 다시 기대하는 우스운 짓을 반복해왔다. 아마 독립출판 이후로 또 다른 일을 벌여도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잔뜩 힘을 주고 달려가겠지. 내 단점이자 장점이려니, 별 생각 않으려 한다.


  작업 중 삽화 수와 원고 내용이 바뀌면서 계약 사항에 달라진 점이 생겼을 때 '계약변경합의서'를 쓰기도 했다. 검색을 해본 뒤 '계약변경합의서' 틀을 만들고, 작가들과 변경된 사항을 꼼꼼히 읽고 사인했다.

  개인이 소규모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계약서를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 계약서를 안 써도 별 문제는 없었을 거다. 그저 구색을 빠짐없이 맞추고 싶은 내 바람 때문에 계약서를 썼다. 다음에 정말 진지한 사업을 하게 된다면 계약서를 만들고 사인해봤던 이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될 거라고, 그러니 아주 쓸모없는 짓은 아니었다고 믿어야지.



  2016년 8월, 삼작가의 작업은 끝을 보이고 있었다. 슬슬 실물 책을 제작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할 때였다. 기획자인 나는 책을 홍보할 방법을 찾고,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공부하고, 여러 독립출판물 판매처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 즈음 일하던 곳을 그만두었다. 하루 8시간씩 일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버거웠다. 큰 뜻을 가지고 다니던 직장이 아니었기에 미련이 없었다.


  이상하게 매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작년 여름, 그 계절을 독립출판에만 푹 빠진 채 달려 지나고 있었다.


(다음 번외편에 계속)





  안녕하세요, 이마수막입니다. <나의 독립출판 이야기> 다음 편은 번외로 삽화와 손글씨 작업 장면을 생생히 만나 볼 수 있게 써 볼 생각이에요. 여행하며 제가 실제로 썼던 물건과 샀던 기념품들이 어떻게 삽화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나올 거예요! 손글씨, 편집작가의 땀과 열정이 담긴 작업 내용들도 가져올게요.

  그 다음 이어지는 6편부터는 실물 책과 굿즈 제작에 대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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