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움 Jan 30. 2024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이런 글, 쓰고 싶다

본 매거진은 여러 명의 작가들이 책을 읽다 만난 귀한 문장을 함께 나누는 협업 매거진입니다.



매주 화요일, 아이 수업이 있어 도서관에 간다. 큰 도서관이라 소장 도서가 많아 골라 보는 재미가 있는 점도 하나의 기쁨인데 아무 정보 없이 나만의 기호에 끌려 우연히 집어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때의 희열이란...! 가끔 얻어걸리는 이 뿌듯한 기쁨을 나는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통해 읽는 내내 느낄 있었다. 일단 제목부터 곱씹을수록 감탄스럽다.

 


계속 웃을 수 있다면,
벗어날 길은 있다!


위트와 재치, 웃음은 삶의 활력이자 충전이다. 갈등이 고조되고, 위기가 심화되고, 슬픔에 파묻혀 버린 순간에도... 심지어 고통의 언저리에서도 성찰이 담긴 유머는 통 안에 담궈진 우리를 끄집어내기도, 구렁에서 빠져나올 혜안을 주는 결정적인 안내판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치킨 먹을 생각에 들떠 포장 박스를 뜯었는데... Oh My God!!! 다리가 하나만 왔다. 전날 먹고 마셔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퉁퉁 부은 얼굴은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몰골이다. 그럼에도 해장은 절실했기에 재빨리 다녀올 심산으로 편의점으로 전력질주하는데 애매하게 연락이 끊겨버린 소개팅 남과 코너에서 마주친다. 절대 늦지 않아야 할 미팅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모든 세팅을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가방을 바꿔 메고 온 탓에 지갑이 없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점검으로 25층에서 힐을 신고 걸어 내려가야 한다...?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크나큰 불행은 아니지만, 기분을 잡치고, 거슬리고  쓰라리게 하는 자잘한 불행과 비운들이다.


‘선천적 재미주의자’이자 북 칼럼니스트인 저자 박사는 왜 이리되는 일이 없나 싶은 우리에게 '명언제조기의 시초'이자 '조롱전문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말 40개를 전한다. 허공으로 흩날려지는 그저 그런 위로가 아닌, 위트와 냉소가 듬뿍 담긴 한마디들이다.






# 비극을 견디는 방법

오스카 와일드에게 있어 조롱은 좀 더 심오한 힘이었다. 그가 비웃던 '사회'에 그 또한 속해있기 때문에, 그의 조롱은 자학개그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조롱했다. 그렇기에 그의 조롱이 인간적인 온기를 띨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바탕 웃음 끝에 성찰과 반성이 꼬리를 물고 따라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웃음의 힘을 믿는다. 웃음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하게 믿는다.

삶은 이상하다. 그토록 몰아붙이면서도 나아갈 길을 마련해 놓는다. 극소수를 제외한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이해한다. 아무리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다음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해가 뜨고, 어김없이 배가 고프고, 어김없이 납작한 하루가 펼쳐진다. 단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온 만큼 가야 한다. 무슨 힘으로? 비극을 조롱하면서, 그 힘으로. 그 미약하지만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으로, 우리는 비극에서 점차 멀어진다. 다음 비극을 만날 때까지.



# 세상에는 남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보다 안 좋은 일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남이 입방아에 오르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뒷얘기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내가 어떻게 했건 상관없이, 뒷얘기라는 건 나오고 흘러 다니고 퍼지게 마련이다.



# 사랑받고 싶다.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그들 또한 다들 하나의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사랑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어. 그 문장은 온갖 폭언과 까칠하고 질척한 말들에 깊이 묻혀있어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바닥에서 깊게 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사랑도 많이 받아본 사람이 많이 줄 수 있고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사랑이 충만한 사람의 태도는 여유롭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특별하게 받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애인이든 친구든 모든 관계는 부드럽게 오래간다. 느닷없이 교통사고처럼 닥치는 충돌, 사포처럼 신경을 쉴 새 없이 긁어대는 잔소리도 사라진다. 평생 사랑하며 살고 싶다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 사람은 행복하면 언제까지라도 착하게 살 수 있지만, 착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사람은 실제 행동에서 티가 난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저절로 여유가 샘솟는다. 금전적인 여유만은 아니다. 자신의 몫을 아껴 남을 도와줄 마음을 내는 여유가 과즙처럼 스며 나온다. 내가 행복했을 때, 나는 내가 행복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불행했을 때,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뭐든 움켜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사람은 착하다. 그러나 그 역이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 대화, 크고 단단한 오해를 빚는 일

대화가 서로를 완벽하게 파악하게 해 줄 거라는 착각, 말이 그 사람을 온전히 드러낼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한 번 파악하면 그 후로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신념, 그것들이 모여서 우리는 크고 단단한 오해를 빚는다. 그 오해를 굴리고 굴리며 친분이 더 돈독해진다고 착각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내가 아닌 나'가 있을까. 말에 매이지 않고, 오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 사는 사람에게 '나 아닌 나'들은 오랜 옛날 떠나온 강가의 돌무더기였다가, 그랬을 것이었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 사랑과 폭식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사랑과 폭식은 닮았다. 주체할 수 없고, 내 안에서 욕망이 이글이글 들끓는 게 느껴지고, 그 욕망을 걷잡을 수 없이 쏟아낸 쉬 후회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논다. 그만, 그만!이라고 머리는 외치는데, 손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사랑과 폭식에 휘둘리고 나면 부끄럽고, 자괴감도 들고, 스스로를 좀 미워하게도 된다.



# 얼굴보다 가면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가면이야말로 나다

오스카 와일드는 가면이야말로 자신을 잘 보여준다고, 맨얼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관리하지 않은 무방비한 얼굴에는 어떤 의지도 들어가지 않지만, 내 가면은 내가 내 취향과 기준을 반영하여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착한 척도 일생을 통해 계속된다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착하다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공들여 믿고 좋아하는 가치로 치장하는 것. '나는 이런 것을 귀중하다고 생각한다'며 문 앞에 내거는 것. 그러면서 나는 나를 만들어간다. 그렇다. 결국 나는 내가 만드는 것. 내가 만들어낸 나야말로 진정한 나다.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기내식과 함께 호주로 가는 비행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통찰과 위트가 공존하는 문장들이 수두룩한 책을 읽으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저자가 너무 부러워졌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