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간 곳_태국 (1)

2019, 최고의 여행

by 아름다움

2019년 12월 8일, 우리의 세 번째 해외여행지 태국행 비행기에 앉아 있었다. 아침 7시 비행기라 새벽 3시에 일어나 매서운 한파를 뚫고 공항 안으로 전력 질주 했다. 설렘과 기대에 부풀어 잠들지 못하는 행복이, 사랑이를 어르고 달래어 재운 지 4시간 만의 기상이었다. 육아 인생 통틀어 가장 오래 머무는 일정이라 아이들만큼 나도 들떠있었다. 더 두근거렸던 이유는 기존의 순도 99.9%의 휴양 여행만이 가능했던 우리에게 관광이 추가된 첫 번째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수영과 호캉스가 전부였던 우리는, 드디어 타국의 거리 곳곳을 거닐며 로컬시장의 길거리 음식을 아이들과 함께 맛보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꼭 챙겨야 했던 휴대용 유모차를 비닐포장까지 꼼꼼하게 마친 뒤, 현관에 고이 내버려 둔 채 출발했던, 6시간의 비행을 버티게 해 줄 소중한 동영상조차 잊어버린, 빈틈 투성인 출발이었지만, 정말 즐겁고 알찼던 여정이었다. 게다가 평생 잊지 못할, 환상적인 추억까지 선사해 준 만족도 120%의 여행이었던지라 돌아오는 날 아이들은 울었고, 나도 울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방콕 (1)

우리의 첫 번째 일정, 여기는 무조건 가야 해, 아이콘시암이다. 수많은 방콕의 쇼핑몰 중 2023년에도 여전히 핫한 아이콘시암이지만 2019년도에는 더 놀랍고 어마어마했다. 특히, 태국의 수상시장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쑥시암은 들어서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았다. 먹거리, 구경거리가 가득했기에 카메라 셔터가 쉴 틈이 없었다. 이 때는 아이들이 나의 사진 열정에 곧잘 따라와 주던 감사한 시기이다.

눈 돌아가게 신났던 아이콘시암



더 돌아보고 싶지만 배가 너무 고프다. 제일 가까운 곳으로 들어갔는데 성공적이었다. 팟타이와 볶음밥은 아이들도 싹싹 비웠고, 굴부침개는 해남 맛집 저리 가라였다. 감칠맛이 예술이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마지막에 주문한 이 타이 커피, 환상적이었다. 태국 여행을 통틀어 제일 맛있었던 커피.




환상적인 방콕의 야경을, 아이들과 그리고 맛난 칵테일까지 함께 하다니... 이 진귀한 첫 경험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장면 안에 진짜 우리 넷이 있었다. 이래서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했음에도, 남편은 행복이를, 나는 사랑이를 들춰 안고 매서운 서울의 강풍을 뚫고 전력질주 해야 했음에도 웃음이 새어 나왔나 보다. 여행은 나를 이렇게 여유롭고 너그럽고 행복하게 만든다.

아난타라 호텔의 루프탑 바, ZOOM




2019 방콕 여행에서 가장 럭셔리하고 고급진 한 끼, 비스코티에서의 점심이다. 시암 호텔에 위치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으로, 투숙을 안 해도 비스코티에서의 식사만을 위해 해외 각지에서 방문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분위기부터 맛, 퀄리티, 서비스, 인테리어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래서 그만큼 내야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2. 드디어 후아힌

로컬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왕실의 품격을 동시에 만나는 고급스러운 휴양지로 유명한 후아힌은 아쉽게도 직항이 없다. 방콕에서 벤을 타고 3시간 만에 도착한 후아힌은 이동시간만 제외하면 나에게는 최고의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우리가 있었던 12월 중순은 건기로 날씨마저 딱이었고 긴긴 이동에 힘들어하던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수영장으로 직진해 해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자쿠지까지 있어 물놀이에 최적화된 우리에게 딱인 인터컨티넨탈 호텔, 동생을 이렇게 예뻐했구나...




인터컨티넨탈 투숙객은 무료입장인 바나나바 워터정글, 5일 동안 무려 3번이나 갔다. 10대 관광명소로 선정된 핫플레이스로 탈 것도 많고 이용객이 많았음에도 수질 관리도 잘 되고 있었다. 이때는 체력이 남아돌았는지 아이들과 오전 내내 수영을 하고, 그 사이 남편과 번갈아가며 놀이기구까지 타고 왔었더랬다. (4년이 지난 지금, 선베드에 누워있는 게 제일 좋다.)





개인적으로 후아힌에서 가장 좋았던 곳, 이틀 연속으로 간 그곳, 나이트마켓이다. 해외의 로컬마트, 전통시장, 야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내게는 보물 같은 곳이었다. 활기찬 거리를 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배가 고파진 아이들로 우연히 들어간 곳이 맛집이었단 사실에 더욱 기분이 업 되었다.




아이들이 갑자기 피곤해해서 볶음밥과 팟타이로 허기만 채우고 가려고 했는데 팟타이를 먹는 순간 느낌이 왔다, 더 시켜야 한다고. 그때 새우 그릴 요리를 만났고, 해산물을 워낙 좋아하는 나는 물론,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이나 로컬식당을 전혀 선호하지 않았던 남편까지 이 타이거 새우들에 반해 그 다음날 재방문까지 했다. 결혼 10년 차에 발견한 그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타이거새우 큰 거 5마리에 2만원,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사로잡은 한 접시였다. 이후에도 우리의 먹부림은 계속되었는데 달콤하고 버터의 풍미가 엄청났던 국민 간식 로띠부터 망고찰밥, 망고주스 외 수많은 태국 맥주에 과자까지... 남편은 4kg, 나는 2kg가 불었다.

타이거새우 큰거 5마리에 2만원, 진짜 최고다.









3. 다시 방콕

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다시 방콕이다. 잊지 못할 그 사건이 발생한 저녁이기도 하다.

쇼핑몰에 들러 선물과 먹거리를 야무지게 사고 호텔 수영장에서 한참을 논 뒤, 아이들과 샤워실로 들어갔다. 둘째 사랑이의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기를 켜는데 옆에 있던 여자분이 그 드라이기가 작동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본인 자리로 와서 사용하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옆자리로 옮겨가는 중, 작동이 안 된다던 그 드라이기에서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타닥타닥 전선이 타는 소리가 나며 연기가 함께 불이 나기 시작했다. 몇 초만에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놀랄 틈도 없었다. 샤워부스 안에서 행복이 혼자 샤워 중이었기 때문이다. 옆의 그 여자분은 나에게 어서 나가자고 했고 "My first baby is in the shower booth." 하니, 본인이 첫째를 데리고 나가겠다며 어서 옷을 입으라고 한다. 맞다, 나는 지금 나체다. 락커는 불이 나고 있는 그 드라이기를 지나서 위치하고 있었는데 몇 초 사이 연기가 자욱해지며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옷 입기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사랑이를 안아 내 앞쪽을 커버하고 사랑이는 수건으로 덮어 밖으로 탈출했다. 머리카락과 수건에서는 물이 뚝뚝 흘렀고 첫째는 옆에 있던 여자분이 안아주고 계셨다. 진짜 고마웠던 은인이다. 호텔 직원분이 가운을 가져오기 전까지 몇몇 투숙객들이 오갔고 우리의 모습에 놀라 지나가던 길을 멈춰 도와주려다가도 내 상황을 인지하고는 예의 바르게 지나가기도 했다. 물론 주요 부위는 사랑이로 가려졌.. 을 것이다. 가운으로 내 몸과 사랑이까지 덮어지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직원분이 선물해 주신 코끼리 인형(가운데 사진), 동생을 사랑한 언니(오른쪽)




호텔 측에서 너무 죄송하다며 숙박권을 주고자 했는데, 우리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고 하니 저녁 식사권을 제공드리면 어떨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해산물 뷔페란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여섯 접시를 비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역시 아름다움다워."라고 말해주었다.





방콕 호텔 드라이기 화재 사건을 그린 행복이 작품








이 여행기를 4시간째 쓰고 있다. 기다려 주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예전 사진을 찾고 그때의 기록을 뒤져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마지막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다. 제목도 세 번이나 바꿔본 뒤, 결국 처음에 썼던 제목으로 돌아온다. 눈은 침침해지고 어깨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그런데 쓰고 싶다. 마음에 드는 단어와 만족스러운 문장이 나오면 뿌듯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나의 37번째 글은 2019년 태국 여행기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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