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말, 만족도 120%였던 태국여행에서 귀국하던 날, 뉴스는 온종일 그 소식뿐이었다. '중국발 우한폐렴'이라는 원인 불명의 폐렴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명칭부터 심상치 않긴 했지만, 몇 주가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신종 폐렴은 빠르게 희대의 역병이 되었고, 우리의 예상과 희망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걱정과 불안, 격량의 소용돌이 속에서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지난하고 괴로운 시간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대항하며 살아냈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건, 너무나 간절하고, 소중해진 바람이 되어있었다.
2023년은 왔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조금씩 가능해졌다. 여행을 워낙 좋아했던 만큼 간절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코로나 이후 첫 여행지는 아이들이 제일 다시 가고 싶은 그곳, 태국 후아힌으로 정했다. 그런데 뭔가 달라졌다. 힘들고 지쳤던 코로나 시절에도, 나름의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잘 견뎌왔다고 자평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남편의 권유였지만, 나도 여행이 필요했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에 설레지가 않았다. 그 사이 행복이, 사랑이는 번갈아가며 아팠고 아이들 간병 후에는 내 컨디션까지 악화되었다. 거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태국 정부의 입국심사 정책으로, 출국 이틀 전에는 입국 불가의 가능성까지 염두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태국여행 카페, 대사관 사이트, 입국 관련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변경되는 규정에 따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던 과정은 그나마 남아있던 여행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사라지게 만들었고, 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안 가는 게 낫겠다, 싶던 출국 24시간 전, 이 모든 문제들이 극적으로 해결되었다. 진짜 기 빨리는 일주일이었다.
그렇게, 출국을 했다.
방콕에서 벤을 타고 4시간을 달려 후아힌으로 가는 골목골목, 4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너무 행복해졌다. 작정하고 만든 휴양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도시 후아힌은 사그라든 아니 전멸되었던 나의 애정과 열의를 부활시키고 있었다.
#바나나바 워터정글
후아힌에 다시 온 주된 목적이자 특히 행복이에게는 전부였던 목표, 바나나바 워터정글이다. 우리가 홀리데이 인리조트를 선택한 이유도 딱 하나, 이 바나나바 워터정글을 매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땡볕의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놀았던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우리는 여기 있었고, 다섯 번째 워터파크 방문은 내게 체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둘째 사랑이를 꼬드겨 나와 그녀는 쇼핑몰로, 물놀이에 더 빠져버린 첫째 행복이는 아빠와 워터파크에 남기로 했다. 모두가 윈윈인 전략이었다.
첫째 행복이 사진이 별로 없다, 아빠와 계속 어트렉션을 타러 갔기 때문.
여유롭게 파도를 즐기는 사랑이 ㅋㅋㅋ 많이 컸다.
#나이트마켓
남편과 내가 가지고 있는 후아힌에 대한 좋은 기억 중 하나는 바로, 후아힌 야시장이다. 세 번째 방문에도 나이트마켓은 여전히 볼거리, 먹을거리, 구경거리를 가득 담고 있었다. 4년 전 감동했던 레스토랑도 그대로였고, 그 앞의 로띠 아저씨까지, 여전히 핫플이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로띠 사장님께 4년 전 사진을 보여 드리니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모든 걸음이 반갑고 달갑고 감회가 새로웠다.
#타마린드 마켓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2023 태국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 중 하나. 순도 100% 내 스타일이다. 공기부터 음식, 맛, 정취, 분위기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정말 너무 예쁘다. 개장 전이라 먼저 부스를 둘러본다.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테이블도 많고 후아힌 야시장에 비해 훨씬 깨끗했으며 음식 종류도 다양했던, 관광객들에게 최적화된 로컬마켓이다.
행복한 사유의 기쁨을 만끽한 후, 우리의 최종 선택이다. 오렌지 주스도 찐하고 맛있었는데 땡모반은 예술의 경지였다. 1순위였던 바비큐는 달콤, 짭짤하면서 매콤함까지 겸비했으며, 새우구이와 피자도 맛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망고빙수...! 개인적으로 망고빙수를 선호하지도 않을뿐더러, 배까지 너무 불러 딱 한 입만 할 계획이었으나 입에 닿는 순간 반해버렸다. 신선하고 달콤한 망고가 한가득인 데다 망고 아이스크림 부분이 특히 예술이었다. 부드럽고 기분 좋게 쫀득하고 꾸덕한 스타일로, 연유에 살짝 담가먹으면 천국을 맛볼 수 있다.
반드시 먹어야 할 망고빙수
#시카다 마켓
타마린드 옆 시카다 마켓으로 이동했는데 둘이 전혀 다른 분위기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 가방, 기념품이 천지다. 분위기가 정말 예술이었고 구경할 것도 많았지만 바로 이동해야 했다. 별의별 벌레가 너무너무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습하고 끈적해 벌레들이 들러붙기도 해서 아이들과 나는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홀리데이 인 후아힌 호텔 & 리조트 인피니트 풀
타마린드 마켓만큼 나를 사로잡은 그곳, 인피니트 풀이다. 사진으로는 이 완벽했던 뷰를 백분의 일도 담을 수 없었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기에,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셔터를 눌러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몇백 장의 사진들이 채워졌고, 다행스럽게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려고 한다.
지난 1월의 여행기를 쓴 메모를 보니,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적혀 있다. 이 태국 여행 준비의 90%는 남편이 다 했다. 나머지 10%는 내 짐 싸기였으니, 여행의 모든 예약과 일정 수행은 모두 그의 노력의 결과이자 업적에 해당된다.
아이들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에게도 감사하거나 미안한 마음이 생기면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남편이다. 사실, 제일 표현해야 할 사람인데,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제대로 말한 지 꽤 된 것 같다.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데, 무슨 감정인지 알듯 모를 듯, 하고 싶지가 않았다. 후아힌 여행을 되돌아보니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했던 여보에 대한 감은(感恩)을 오늘은 꼭 말해줘야겠다. 글쓰기의 순기능이다.
"뷔페에서 식빵이랑 잼만 왜 그리 먹느냐고 구박해서 미안해."
"화장실에 1시간씩 있는다고, 빨리 나오라고 닦달해서 미안했어."
"너무 지쳐서,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하다고 그냥 한 마디만 하면 됐을 텐데, 짜증내서 미안했어...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