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밀어붙인 나 자신, 칭찬해!

by 아름다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세 가지.

1. 행복이, 사랑이를 낳은 일

2. 엄마와 단 둘이 여행 간 일

3. 운전 배운 일





오늘은 그 두 번째에 대한 이야기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엄마와 나는 정반대의 성향, 활동반경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성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드라마 속 친정엄마계의 김혜자 님 스타일이며, 건강과 음식 및 식재료에 매우 '진심'이라 무항생제 고기, 방사유정란 달걀, 첨가물 없는 간장은 물론이거니와 영양제를 고를 때에도 합성부형제(이산화규소, 스테아린마그네슘 등)가 무첨가인 제품만 드신다.

집밥은 너무나 당연한 엄마의 업이자 소명이었고, 딸기를 직접 갈아 넣은 아이스크림, 머랭을 쳐서 폭신하고 달콤한 카스테라까지 손수 구워주시며 우리를 먹이고 키워내셨다. 현모양처의 표본, 아니 이 사자성어를 사람의 형태로 만든다면, 그게 바로 엄마가 되는 것이다.



싸돌아 다니기, 사람들 만나기, 여행 가기가 취미이자, 어딜 가나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나와 달리, 엄마는 잠자리 환경과 음식에 민감한 편이라 여행을 즐기시지 않는다. 나는 아빠, 엄마의 도움으로 해외에서도 살아보고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4개월 만에 복직한 딸을 위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손녀를 봐주신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행복이는 정말 예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늙어갔다. 사진을 보다 5년 사이 너무나 달라진 엄마의 주름과 마주한 날, 결심했다. 엄마가 싫다고 해도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이번 여행의 콘셉트, '100% 엄마 맞춤형 효도 관광'.

엄마는 역시 식사와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안 간다고 하셨지만 나는 강행했다. 여러 후보지 중, 짧은 비행시간도 주요 요소 중 하나였기에 최종 선택지는 홍콩이었다. 몇 년 전에 가본 적이 있어 아주 낯설지는 않은 나라라, 이번 효도여행 가이드 역할을 큰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을 듯 싶었다. 나의 효심을 하늘도 어여쁘게 여기셨는지, 숙소, 일정, 식당 예약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그 중심에는 홍콩 친구의 도움이 컸다.






2016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 드디어 출국이다.

엄마와 단둘이서 하는 첫 번째 여행, 설레고 또 설레고 그냥 다 좋다,라고 일기에 쓰여있다.

찍어두길 잘 했다. (7년 전 나야!), 인천공항에서의 아침, 엄마가 뭘 넣었길래 미역국이 감칠맛이 싹 돌고 맛있냐고




홍콩에서의 첫 식사는 관광객들의 무한 사랑을 받는 안전성이 보장된 곳, 호흥키로 선택했다.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이 강하지 않은, 어른들이 좋아했다는 추천메뉴로 만족스러운 한 끼를 해결했다. 엄마도 맛있었다며, 청경채 무침을 아주 좋아하셨다. 단지 완탕면은 미니 컵라면 사이즈로 양이 적은 편인 엄마에게도 살짝 아쉬운 양이었다.

홍콩에서의 만족스러운 첫 끼를 마치고 지하철 타러





엄마를 위한 첫 번째 일정으로 무얼 할까 검색하던 중, 보기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크리스털 케이블카 후기를 보고 옹핑행을 결정했다. 엄마와 함께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케이블카를 타며, 엄청난 높이에 놀라 소리도 지르고,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셔터를 눌러대고, 케빈에 함께 탑승한 흥이 많은 멤버들 덕분에 많이 웃기도 한 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짜릿해보고, 낯선 사람들과 아찔함을 공유하며 수줍게 웃을 수 있었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기를 바라보았다.

후덜덜했던 크리스털 케이블카




케이블카 하차 후 옹핑 빌리지에 도착했다. 오늘이 제일 젊고 예쁜 날, 엄마의 모습을 가득 담고 싶어 피사체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고 엄마도 흡족해하시는 듯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숙소는, 홍콩 친구의 추천으로 W 홍콩으로 예약했다. 부모님과의 여행에서는 최적의 이동거리가 우선순위가 되는데, W 홍콩은 AEL 구룡역이랑 연결되어 있어 2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버뷰에 룸컨디션도 훌륭했고, 만나는 직원분들마다 친절하셨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엄마가 꿀잠을 주무셨다는 거다. 이보다 더 뿌듯할 수 없었다.





W 홍콩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 76층에 위치한 야외 수영장이다. 탁 트인 유리벽을 통해 홍콩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탁월한 뷰로 유명하다. 엄마께 꼭 보여드리는 싶은 정취였다. 면적은 크지는 않았는데 분위기가 정말 예술이었다. 엄마도 처음에는 살짝 낯설어하셨지만 따뜻한 자쿠지에서 몸을 녹이면서 미소 짓고 계셨다.

소녀같이 활짝 웃는 엄마,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이번 홍콩 여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홍콩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다. 친구가 예약한 곳은 IFC 몰 3층에 위치한 Cuisine Cuisine으로, '럭셔리한 한 끼를 경험하고 싶다면 강력 추천하는 곳'이라는 후기가 많았다. 게다가 이곳은 홍콩 관광청이 인정하는 QTS 마크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맛이 보장되는 곳'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극찬을 읽고 나서인지 테이블 세팅이며 뷰가 더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단지, 사무치게 아쉬웠던 점은, 호텔 조식에 눈이 뒤집혀 정작 친구가 미리 주문해 둔 그 진수성찬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거다. 엄마도 홍콩 친구도 대식가가 아니라,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거였는데.... 남은 음식들을 두고 나오는 길, 나는 그날 아침 조식을 퍼먹던 나를 혼내주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 친구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자리를 비웠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그의 손에는 엄마를 위한 선물이 있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의 식사 대접도 황송할 정도로 고마운데 선물까지 챙겨주는 친구의 세심함에 감동받았던 날이다.



엄마는 영어를, 친구는 한국어를 못하니 중간에서 내가 번역을 했기에,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진 못했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느낌은 통했나 보다. 엄마는 나의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Really thank you."



Cuisine Cuisine in IFC Mall






가장 신경 썼던 레스토랑에 왔다. 베이징덕으로 정말 유명한 레이가든이라는 곳을 서울에서 미리 예약까지 했다. 여자 두 명이 먹기에 적합하다는 오리 반마리와 사이드를 주문했는데 처음에는 1인분이 서빙이 되는 줄 알았다.

호흥키에서의 음식 양에 놀랐던 엄마는 여기서도 놀랐다. 홍콩 인심 야박하다며 밑반찬 하나가 없다고...(ㅋㅋㅋ) 그렇지만, 밀전병에 껍질, 파 소스를 듬뿍 담가 싸 먹으니 양 따위는 생각 안나는 진미(珍味)였다. 추가로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인 Crispy Pork를 시켰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음식이 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 맛은 예술이었다. 바삭하면서 꼬소하고 머스터드 소스에 곁들이니 궁합이 정말 좋았다. 말이 적고 침착하고 조용한 엄마가

'그래도.. 맛은 있네.' 하셨으니 저녁도 얼추 합격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베이징덕으로 유명한 LEI GARDEN in Elements Mall



아, 엄마가 예상외로 만족스러워하셨던 음식은...? 바로 이 쿠스쿠스 샐러드였다.








귀국하던 밤, 엄마의 한 마디는 이번 여행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되기에 차고 넘쳤다.


엄마 맞춰주느라 너무 고생했어.
가이드해도 되겠네, 우리 딸.
엄마 정말 즐거웠어.



벌써 7년 전이다. 홍콩 여행 이후 둘째 사랑이를 출산하며 아이들과 여행을 주로 다니다 보니, 엄마와의 두 번째 여행은 여전히 버킷리스트에 머물러있다. 2024년에는 꼭 엄마와의 여행을 가고 싶다.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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