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일깨우는 목욕탕 체험 수기
새벽 5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출근 전 목욕탕에 가보기로 결심한 날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입장하는 나와 달리 운동까지 마치고 온 듯한 쌩쌩한 기운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30여 년만에 다시 목욕탕을 찾은 나는, 신발장에서 키를 뽑아 같은 번호의 락커를 찾아 탈의를 한 후 장내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에도 버벅댔었다.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주위를 둘러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던 중, 공중목욕탕 특유의 자욱한 연기를 동반한 냄새와 함께 넘치는 활력과 생기가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의 목욕탕 입문은 시작되었다.
목욕탕에 다닌 지 5년 차, 목욕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행위 중 하나가 되었다. 샤워기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뜨끈한 물이 어깨에 닿으면, 밤새 굳어 있던 몸이 쏴악 풀려온다. 이거지, 이 짜릿한 순간은 중독적이라, 귀찮아도 다음 날이면 목욕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목욕탕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각각의 이유와 사정, 필요가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도 물론 여러 가지 이유와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즐기고 있을터. 그중에 시간대별로 애정하는 영역이 다르게 존재하기까지 하는데, 저녁 반신욕 후의 그 나른한 노곤함과 새벽 목욕 후의 그 통쾌한 개운함이 정말 좋다. 더불어 가장 유익한 점은 생활력의 상승이다.
생활력(生活力)
1.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능력
2. 생명체가 살아서 자라는 힘
생활력, 삶을 살아가는데 요긴한 보석 같은 능력으로,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며, 생활력 상승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기도 한다.
살면서 몸을 깨끗하게 씻는 방법이나 순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 아니, 씻는 행위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엄마가 씻겨주던 어린 시절을 지나 국민학생 때 엄마를 따라서 공중목욕탕에는 간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엄마와 번갈아가며 서로의 등을 밀어준 정도였지, 효율적이면서 체계적으로 목욕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다.
본격적으로 목욕탕에 다니며, 몸을 씻는 행위에도 최적의 기술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목욕에서 파생된 다양한 생활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다. 귀 뒷부분, 발가락 사이사이를 때수건으로 닦기, 고개 숙여 머리 감기, 열탕에 몸을 담근 후 발뒤꿈치의 굳은살 개운하게 제거하기, 마지막에 찬물로 세수하기는 몸을 세정하는 행위 안에서 나에게 최적화된 방법이다.
목욕 후 머리를 말리면서 전신 거울로 몸을 보게 되는 일이 빈번해지자,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목욕만 하는 나와 달리, 헬스나 수영, 탁구, 줌바 등의 운동을 마치고 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운동의 중요성을 매일 듣게 된 것이다. 날씬한 몸매에만 집중하던 나는,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하고 활력 넘치는 그런 몸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온탕 안에서 옆 사람의 유무와 상관없이 스쿼트를 하거나 발차기를 하는 사람, '빨래 금지'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인간세탁기가 되어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 '자리 맡기 절대 금지'라는데 가방으로 본인 영역표시 하다 젊은 여인과 한 판하는 중년의 여인,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본인의 자리는 깨끗하게 치우고 나가는, 아름다운 뒷모습의 전형을 보여주시는 어르신, 등 밀어주신다며 마사지까지 해주시는 할머니 등 인간 군상의 축소판을 체험하는 공간, 바로 목욕탕이다.
가녀리면서 탄탄한 그 여자의 몸은 타고난 것만이 아닌, 엄청난 자기 관리와 절제의 과정이라는 사실도, 몸뚱이 하나도 거저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불변의 진리도, 나는 목욕탕에서 배웠다. 몸이 찌뿌둥할 때, 목욕 후 개운함으로 풀릴지 무리하지 않고 푹 쉬는 게 나을지를 선택하는 사소한 결정조차도 나의 몸과 컨디션을 한 번은 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나는 오늘도 목욕탕에 간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