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미워요.

내 몸을 바꿔버린, 시크릿

by 아름다움

13살 즈음이었다. 2차 성징의 발현으로 내 몸 구석구석이 형태적으로, 기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변모되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얄따랗던 허벅지 사이의 빈틈은 메워지기 시작했고, 가슴이 부풀어 올라왔으며, 털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엄마와 공중목욕탕에 가게 되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몸이 매우 당황스럽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내 몸의 그 어떤 부위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단, 체형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허벅지가 제일 꼴 보기 싫었는데, 탱탱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털렁거리는 물살에, 과식이라도 한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허벅지 주위로만 살이 덕지덕지 붙어가는 느낌이었다. 허벅지만이었냐, 그것도 아니었다. 종아리도 내가 원하는 두께보다 훨씬 두꺼웠고, 키도 더 컸으면, 얼굴형은 또 왜 이런지... 거울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곳 투성이었고, 이 미운 모습들로 이루어진 완성체가 내 몸인 듯 느껴졌다. 그럼 거울이라도 덜 보면 되었을 텐데 그것들을 확인해야 하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내 주변은 날씬쟁이들과 외모지상주의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리 살이 쪄도 다리만큼은 새다리인 그녀, 밤 10시에 라면, 쫄면과 떡볶이까지 흡입해도 다음 날이면 다 소비해 버리는 높은 대사를 자랑하는 그녀, 살이 조금만 쪄도 편도 40분이 넘는 등하교 길을 경보로 걷는 그녀, 얼굴에 뭐라도 하나 나면 절대 지나치지 않고 큰소리로 말해주는 그녀, 우리 얼굴을 그릴 때마다 가장 못난 부위들을 극대화해서 웃기다며 깔깔거리던 그녀 등, 타고나기를 말랐거나, 쪄도 들인 노력에 비해 쉽게 빠지거나, 찐 살은 그날그날 태워버리고 말거나, 상대의 약점은 최고의 개그 소재로 여기던, 그녀들이 내 주위에 포진해 있었다. 가뜩이나 친구 관계, Peer Pressure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던 10대 소녀는 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점(美點)이 참 많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던 허벅지는 사실, 상체가 매우 가녀린 체형이었기에 더 부각되었을 뿐이었다. 가녀린 팔뚝과 잘록한 허리, 흰 피부, 업되있던 가슴 라인은 내 몸이 가진 장점이었고 주변에서도 부러워했는데, 내가 갖지 못한 그런 몸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에는, 그런 칭찬이 들리지 않았다. 어리석었고 무지했고... 안쓰러울 뿐이다.






그러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쇼핑을 갔던 날, 같은 반이었던 스웨덴 친구가 "You look really gorgeous. I love your body shape, envy you."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다른 친구들도, 홈스테이 아주머니와 그녀의 지인들도, 심지어 상점 직원들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날씬하고 예쁘다고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한국에서보다 8kg 가까이 더 쪄 있던 상태라 처음에는 뭐지, 싶었다. 외국인들은 외모와 몸에 매우 관대한 기준과 시선을 가지고 있는건지, 영혼 없는 칭찬인데 내가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는건지, 아니면 그냥 인사 문화이자 에티켓인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거의 매일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내다 보니 그들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미워하고 홀대했던 내 몸의 장점과 진가를 8854km 떨어진 런던에서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던 나의 몸, 십 대 후반부터 시작된, 내 몸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몸을 부러워하며 살아왔던 삶에 서서히 변화가 일었다.






너무 밉게만 바라보고 구박해서 미안했어.

내가 나를 예뻐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어.

내가 가진 장점과 빛남은 보지 못하면서 누구를 칭찬할 수 있겠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나의 진가를 볼 수 있겠어.


내 몸에 편안해지자, 마침내 나는 어리석고 무지했던 지난 날의 내가 가여워졌다.



미워하면 더 미워지고 예뻐하면 더 예뻐지는 거야.









* Peer Pressure(또래 압력): 같은 연령의 친구들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나 지침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개인 간 상호작용 방식뿐만 아니라 가치관, 태도, 행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힘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