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 하루 200벌 버리다

단순하고 단정한 생활자

by 아름다움

'하늘 아래 같은 레드는 없다'

코랄 레드, 오렌지 레드, 토마토 레드, 체리 레드, 바이킹 레드, 러시안 레드, 레드벨벳, 서머피그... 색상, 톤은 물론이고 텍스쳐와 발림성의 미세한 차이로 온 우주를 통틀어 똑같은 레드 립스틱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장품을 좋아했던 나의 서랍에는 수십 개의 레드 립스틱들이 각기 다른 사유로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립스틱뿐이겠는가, 한 번도 바르지 않을 색들이 가득하지만 신상이기에, 한정판이기에, 예쁘기에, 사지 않을 이유가 없기에, 아이섀도 팔레트를 모았고, 면세점에 갈 때마다 뿌리지도 않는 향수와 바디 세트를 쟁여두곤 했다. 트렌드에 민감했고, 모임이 많았고, 주변에서 이쁘다고 하면 사야 했고, 치장하고 꾸미기까지 좋아했으니, 화장품부터 옷, 구두, 책에 이르기까지... 나는 맥시멀리스트가 될, 필요충분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의미도 기준도 없이, 그저 물욕 넘치던 그 시절이 지금은 까마득하다.

서른셋, 몇 가지 계기로 집과 사무실 책상에 켜켜이 쌓인 물건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할 무렵, 운명처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만났다. 미니멀리즘이란 용어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오는 그 불명확한 답답함과 버거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미니멀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커뮤니티에 가입하면서 명확해졌다. 마구잡이식 물건에 대한 소유는 더 이상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음을, 행복을 선사하지 않음을.



소비와 소유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정비해 나가며 전반적인 생활양식에도 변화가 일어나던 중, 우리 가족의 세 번째 보금자리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날, 나의 예상보다 붙박이장의 수용능력은 훨씬 작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은 진즉부터 옷장을 추가로 구매하자고 설득해 왔었고, 나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기에 내 옷을 정리하거나 남편의 주장대로 옷장을 하나 더 사야 하거나,를 결정해야 했다. 5분 정도 고민 후, 전자를 선택했다. 붙박이장의 수납공간에 내 옷들을 맞추기로.


그날, 200여 벌이 넘는 옷을 버렸다. 드림이나 판매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과감히 정리했다. 회사 다닐 때 매일 신던 힐과 샌들도 함께.






신기하게도, 마지막까지 주저했던, 거금을 들여 산 코트들이 이틀 정도 지나자 생각나지 않았다. 물건 비우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최근 2년 동안 입지 않은 옷과 신발은 정리 대상이 되었고, 하나를 사면 하나를 비우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갔다. 옷장이 단출해지자 뇌의 한쪽이 시원해지는, 묘하게 좋은 기분이 느껴졌다. 택도 안 띤 저 블라우스는 언제 입지, 언제 산지도 모르겠는 블랙 니트에 무슨 치마를 매치해야 돋보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분야도 점차 확장되었다. 더 이상 책을 서재의 장식품처럼 진열해두지 않는다. 대출해서 읽다가 소장가치가 있다면 구매한다. 식재료가 냉장고 야채칸 속에서 꽃을 피우거나 썩어서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하지 않는다.


지금 나의 파우치에 담긴 5개의 립스틱들,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남겨 두었다.







눈앞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물건, 온갖 잡동사니들을 깨끗이 치우고 정리함으로서 에너지를 빼앗거나 거슬리는 것들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들만 남겨둔다. 물건도, 시간도, 사람도.

기꺼이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건을 비우자 유의미한 자유로움을 얻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의 늪으로부터, 소비문화의 압력으로부터, 허영심으로부터.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