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학자 라탄 랄(Rattan Lal)의 강의를 듣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건강한 토양의 보존이지요. 토양을 건강히 잘 보존할 수록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토양이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뽑히고 있는 탄소를 공기 중으로부터 격리시켜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창고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무경운(no-tilling), 피복작물(cover crop), 멀칭(mulching), 혼농임업(agroforestry) 등을 통해 황폐화된 토양을 복원시키면서, 토양 내 유기물 함량을 높이고 공기 중 탄소를 토양이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전파하는 데에 가장 선봉의 역할을 하는 학자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의 라탄 랄(Rattan Lal) 입니다. 2020년 세계식량상을 수상한 라탄 랄은, 위와 같은 지속가능한 농업(특히 재생농업)에서 토양의 중요성을 널리 전파한 토양학자입니다. Google Scholar 기준으로 피인용 수가 12만회가 넘을 정도로, 라탄 랄의 토양연구들은 전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마침, 영국 노리치에 위치한 Norwich Institute for Sustainable Development(NISD)에서 저명한 토양학자 라탄 랄(Rattan Lal)을 연사로 초청하여 'Managing soils as the foundations for 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Q&A시간을 포함하여 1시간 30분여 진행된 길지 않은 세미나였지만,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의 강의를 온라인으로라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강의의 몇몇 내용들을 요약하여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리 삶의 토대, 토양
우선, 당연하게도 강의의 시작은 토양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시작됩니다. 토양은 지상 생물 25%의 거주지입니다. 토양의 건강은 토양 위에서 자라나는 식물과 동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그 식물과 동물을 섭취하는 인간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우리 주변을 둘러싼 환경의 건강, 더 나아가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을 받게 되겠지요. 즉, 토양은 우리 삶의 토대가 되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인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생태계, 지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
요즈음 국제사회가 느끼고 있는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기후 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당장의 인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인구 수가 약 9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050년에는 지금보다 더욱 큰 위기상황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식량 생산 역시 증가해야 하는데, 농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가 이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국제사회는 기후 변화라는 위기 속에서 약 9억 명 이상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이 식량이 누구도 소외하지 않고 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탄소 격리 창고의 역할, 토양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탄소. 기후변화는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열에너지의 방출을 가로 막아 발생하지요. 인간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이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활동입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대체연료를 사용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이지만, 또 다른 방법은 이미 대기 중으로 배출된 탄소들을 다른 공간에 가둬 두는 것 역시 탄소 저감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탄소를 대기 중으로부터 격리시켜 저장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토양입니다. 이미 토양은 대기 중의 탄소보다 2~3배 많은 탄소를 보관하고 있는 매우 거대한 탄소 저장소입니다 (참고로, 토양보다 바다에 더 많은 탄소가 저장될 수 있다고 하네요). 대표적인 토양 복원 이니셔티브인 '4per1000 initiative'에 따르면 매년 0.4%씩만 토양의 탄소 저장량을 늘린다면, 인간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토양 보존의 방법
이처럼, 토양은 다양한 생물들의 토대가 되면서 동시에 기휘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토양의 탄소 격리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한 방법으로 보존농업(Conservation Agriculture),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 혼농임업(Agroforestry) 등의 농법들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밭을 갈기 위해 토양을 뒤엎는 경운을 최소화하고 토지를 피복작물로 덮고 나무를 심는 등의 방법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토양 내 유기물들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법이며, 땅을 갈아엎을(경운) 때 토양에 격리되어 있던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토양 보존과 식량 생산의 중심, 농업
토양 보존과 식량 생산의 중심에는 농업이 있습니다. 지구의 대지 중 49%가 농경지 이고, 깨끗한 물의 70%가 농업 용수로 쓰이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의 30~35%가 농업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전 세계 인구 9명 중 1명은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고, 7명 중 2~3명은 영양실조 상황에 놓였습니다.
다시 말해, 인류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상황에 대응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증가할 인류를 위한 지속적인 식량 생산을 이루어 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농업이 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 한, 토양을 보존하는 방식의 농업을 통해 식량 생산까지 증가시켜야 하는 상황이지요. 지구의 토지는 제한적이고 이미 너무 많은 토지가 농경지로 전환되면서 훼손되었기 때문에, 식량 생산 증가를 위해 농경지를 늘리는 방법은 현실적이지 않은 방법입니다. 때문에, 제한된 토지 안에서 식량 생산을 극대화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토지 등 자연자원을 보존하는 방식으로요. 이를 위해선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한 sustainable eco-intesification의 달성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 토양(Soil)
환경보전을 위한 상징적인 회의였던 1992년 리우회의의 리우선언, 그리고 MDGs에서부터 SDGs까지, 국제사회에서 사회경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여러 결의들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토양(soil)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서 간과되어 있다고 라탄 랄은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의 토대가 되는 만큼 SDGs에서도 End poverty, End Hunger, Good Health, Clean Water, Renewable energy, Climate action, Life on land 등 여러 목표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만, 토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며,
기후위기, SDGs 등 사회경제적 발전 뿐만 아니라 환경 보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수없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라탄 랄이 토양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듯이,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의 해답은 토양과 같은 자연자원(Natural Resource)에 있습니다. 자연자원을 보전하지 않은 방식의 개발은 우리가 누리는 발전의 영화를 지속시켜 줄 수 없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도 단순히 생산량을 증대시키고 가치사슬을 개선하여 소득을 증대시키는, 단편적인 시각으로의 접근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환경과 생태계를 함께 고려한 방식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 지금입니다. 지속가능한 농업, 기후스마트농업 등 농업과 생태계를 함께 고려한 농업개발 접근에 대해서 앞으로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