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위한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약 8년 전, 저는 신입직원으로 국제개발NGO에서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다녀온 일주일 가량의 단기선교, 그리고 우간다에서의 3개월 간의 짧은 봉사활동을 경험하며 '국제개발'이라는 분야에서의 작은 꿈을 키우게 되었고 NGO에 입사하며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모금분야로 지원한 저는, 미디어모금을 하는 팀으로 첫 발령을 받게 됩니다. 국제개발이 무엇인지, 비영리마케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약 4년동안 12회 이상의 해외 출장을 다니며 미디어모금 컨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업무의 주요 파트너들은 메이저 방송사들과 연예기획사들이였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제가 미디어모금 분야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할 때 즈음, 빈곤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는 단어가 국내외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노르웨이의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Radi-Aid라는 캠페인을 통해 빈곤을 주제로 한 미디어모금 컨텐츠 제작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동영상(https://youtu.be/xbqA6o8_WC0)이 매우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빈곤포르노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역시 국제개발분야에서 확산됩니다.
당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는, 여러 혼란에 빠집니다. 제가 하는 일이 빈곤포르노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옳은 길인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진정 내가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일이 맞는지에 대한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잠시 잠깐의 고민이 아니라, 미디어모금 업무를 맡는 내내 결코 놓칠 수 없는 매우 무게감있는 고민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다른 누군가보다는 '잘 해보자' 였습니다. '잘 해보자'의 의미는, 글로 표현하기는 너무 어려운 부분이지만, 아무튼 빈곤포르노에 대한 비판을 인식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상대방에게 무례한 일이 되지 않도록,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현장의 모습이 어떠한 거짓으로 분장되지 않도록, 현장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며 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쉽지 않았고, 많은 실수들이 있었으며, 여전히 혼란에 빠져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3년 6개월이 지나고 저는 좀 더 본격적으로 개발현장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모금 업무와는 많이 벗어난 농촌개발 섹터에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습니다.
처음 빈곤포느로라는 단어를 접한지도 어언 8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빈곤포르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존재하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주시는 여러 분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깊게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에도 PIDA의 주체로 빈곤포르노에 대한 온라인 세미나가 열렸었구요. 여전히 문제인식을 가지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힘을 써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보고, 많이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많은 고민을 심겨주는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빈곤포르노가 문제라는 비판은 8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인권에 대한 인식, 모금 윤리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빈곤포르노에 대한 비판 역시 이전보다 깊이있고 세밀해 졌습니다. 하지만 그 대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누구도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모금하는 NGO들이 그 규모를 줄이는 각오를 하고서라도 빈곤포르노를 멈춰야 한다구요. 저도 동의하는 이야기이고, 이러한 주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3배의 차이도 아니라 적어도 수백배 이상 모금액수에서 차이가 난다면, 과연 NGO들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정확한 데이터는 없습니다만, 모금 현장에 있었다면 충분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수백배 수천배의 차이를. 메이저 NGO들의 유투브만 살펴보더라도, 국내 아동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례 컨텐츠와 다른 밝은(?) 분위기의 컨텐츠들과의 조회수 차이는 몇십배에 달합니다. 유투브는 많은 젊은 층들이 소비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어두운 분위기의 컨텐츠 업로드를 지양하고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이 주로 소비하시는 TV 플랫폼에서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 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충분한가에 대한 고민이 듭니다.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나마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있었다는 것, 엄연한 사실이고 다시 한번 그 노력들에 감사할 뿐 입니다. 하지만 잎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금 시장의 변화는 대안이 없다면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찾는 노력을 모금 컨텐츠를 생산하는 NGO들에게만 맡긴다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빠른 변화는 일어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국제개발NGO, 그리고 방송계에서도 빈곤포르노에 대한 고민들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많은 시도들과 변화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희망TV와 같은 방송프로그램들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감소했고, 반대로 다양한 연령층들이 이용하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투브 같은 미디어플랫폼에서는 어두운 분위기의 컨텐츠들보다는 젊은 세대들이 선호할 만한 다양한 컨텐츠들을 모금과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빈곤포르노와는 멀어지게 되면서요.
이러한 변화의 이유로는 빈곤포르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그 중 하나이겠지만, 솔직한 저의 생각으로는 어두운 분위기의 컨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로도 때문인 것이 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모금컨텐츠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희망TV 같은 모금방송들의 모금액수가 점차 줄어들고, TV 매체를 통해 송출하는 해외아동 컨텐츠의 모금액수가 줄어드는 등, 빈곤포르노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그것이 체감되기 시작했을 때, 다양한 컨셉의 모금컨텐츠들도 시도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시도의 모금컨텐츠들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모금컨텐츠 생산의 흐름도 바뀐다면, 그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움직임이 함께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렸던 Radi-Aid라는 캠페인도 매년 최악의 모금컨텐츠와 최고의 모금컨텐츠를 선정하는 어워드를 진행하기도 했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최고의 모금컨텐츠도 함께 선정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모금컨텐츠는 있을 수 없겠으나, 빈곤포르노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시도와 도전물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지지하는 활동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어워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해당 어워드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소개해 드렸던 월드비전 한국의 모금컨텐츠(https://www.worldvision.or.kr/campaign/2021/climate-change/21-forestmaker.asp)가 있습니다. 홈페이지 캠페인과 유투브 영상(https://youtu.be/X8a6r2ZppV4)을 통해 주민참여형 산림복원이라는 사업 컨텐츠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사업 컨텐츠에 집중하는 모금컨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꽤나 의미있는 도전의 컨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월 3만원 후원, 아이들 몇명에 대한 영양식' 과 같은 지나친 단순화로 우리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개발NGO가 어떤 활동을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그 안에서 지역사회 주민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로 인한 기대효과들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하며 모금을 유도하는 컨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컨텐츠들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빈곤프르노 컨텐츠들을 대체하기 위해선, 결국 컨텐츠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존재해야 합니다. 대중들의 반응이 없다면, 이러한 컨텐츠들은 실패한 시도와 도전으로 결론지어진 채 우리에게서 잊혀질 것 입니다. 때문에 좀 더 나은 컨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관심과 반응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빈곤포르노, 당장 멈출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과 유럽권에서는 일찌감치 빈곤포르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었지만, 여전히 서구에서도 빈곤포르노는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만큼 쉽게 변화하기 힘든 일이고 그만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모금컨텐츠, 의미있는 시도와 도전들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유도하고 응원하는 움직임들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저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며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라도 좋은 컨텐츠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미약하지만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