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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학자 J Apr 05. 2018

따뜻한 볕의 땅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살기 시작하다

9,023 km

서울로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의 거리다. 어렸을 때 내게 샌프란시스코란 이름은 그저 이국적인 해안 도시일 뿐이었다. 언덕의 도시, 금문교의 오렌지 빛, 수많은 테크 기업들의 고향, 바둑판처럼 가지런한 거리. 그것이 어릴 적의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존 케루악과 비트 세대, 캘리포니아 공화국, 위 베어 베어스의 곰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내가 그들처럼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San Francisco Bay Area)에 살게 되었다. 


5개 지역으로 구성된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안에 있는 버클리(Berkeley)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태평양의 바닷물이 캘리포니아 북쪽 땅 가운데를 깊숙이 파고든 곳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다. 바다 북쪽으로는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Napa)가 있고, 동쪽으로는 내가 살고 있는 버클리와 스테판 커리의 도시 오클랜드(Oakland)가, 남쪽으로는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산 호세(San Jose)가 있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인 버클리는 지하철을 타면 샌프란시스코 시내까지 20분이면 닿는 곳에 있어 실질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생활권 안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버클리에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즉, UC 버클리가 위치해 있다. 


UC 버클리의 풍경. 긴 나무들이 있고, 그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는 것이 이곳의 일상이다.

옮겨심기

나는 젊은 물리학자다. 나는 한국에서 학위를 받았고, 그 흔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도, 미국 사는 친척 하나 없는, 30년 동안 한국에 뿌리를 박고 있던 보통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면 두 가지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일명 '포닥'이라고 불리는 포스트닥터(postdoctor) 연구원으로서 대학이나 연구소의 정규직을 잡기 위해 학계에서 몇 년간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경력을 쌓는 것이 한 가지 길이고,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다른 한 가지 길이다. 학문에 뜻이 있어 포닥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 자리를 찾는 것이 한국에서 학위를 받은 박사들에게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한국에서만 포닥을 하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자리를 잡은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어쨌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 커리어를 위해서는 한국에 뿌리내리고 있던 것을 서울에서 9,023 km나 떨어진 곳으로 옮겨 심어야 했다.


UC 버클리 새더 타워(Sather Tower)에서 바라본 캠퍼스와 버클리 시내, 그리고 바다 건너 샌프란시스코. 나는 맑은 날 바다에 햇빛이 부딪혀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뿌리내리고 있던 곳을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를 떠나야 했고,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평범하게 취직했다면,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결혼을 했거나 또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으로 옮긴다는 것은 그런 모든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옮겨심기'라는 말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고 해서 베이 에어리어에 뿌리내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은 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매섭지 않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내 연구비와 비자가 허락하는 만큼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버클리는 내게 한국 밖에서의 첫 번째 도시이지만, 내가 뿌리내릴 마지막 도시는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기게 된 것은 내게 '옮겨심기'라기보다 일종의 '수경 재배'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UC 버클리의 정문, 새더 게이트 (Sather Gate) 앞.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행복한 편일 것이다.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하는 집세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비싸고,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으며, 내가 뒤에 놓고 온 것들을 자꾸 뒤돌아보게 되기도, 불투명한 미래 속에 절망하기도, 낯선 언어 속에서 길을 헤매더라도,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다. 그것은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학자의 일, 과연 그것이 내가 이 먼 곳까지 올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내가 하는 연구가 과연 얼마나 인류에 공헌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물론 나는 내 물리학 연구가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라지만, 내가 먼 땅까지 와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그저, 물리학자가 아닌 나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포스트닥터로 연구를 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가장 유력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서울로부터 9,023 km나 떨어진 이곳에 있다.


내가 해야만 하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생계를 위한 '현실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힘을 잃을 때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는 말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는 굉장히 많은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은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는 체념일 수 있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축소시키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말이 가진 힘은 내가 겪는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먼 땅의 일상 속에서 나는 숱한 어려움을 매일매일 겪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들을 겪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래도 이게 어디야." (그리고 나중에 내가 영향력을 가지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면 내 후배들은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


샌프란시스코가 내게 보여준 첫 모습. 파웰 (Powell) 역 앞의 풍경.

따뜻한 볕의 땅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곳을 "따뜻한 볕의 땅"이라고 부르고 싶다. 일교차가 조금 있기도 하고, 지난주와 이번 주의 날씨가 다를 때가 있긴 해도, 베이 에어리어는 대체로 따뜻한 편이고, 맑은 하늘이 일상인 곳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심각하게 나빠진 한국의 공기 오염을 생각하면, 내가 이곳에 와서 청옥처럼 푸른 하늘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이다. 물론 이곳을 지상낙원처럼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베이 에어리어에는 물론 그늘도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집세, 대마초 냄새나는 홈리스들, 이따금씩 들려오는 총기 사고, 빈부격차와 같은 것들 또한 이곳에 오자마자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의 나의 삶 또한 베이 에어리어의 볕처럼 마냥 따뜻한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한정된 비자 기간, 낮은 수입,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같은 것들이 내 삶의 그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중의적 표현으로서 "따뜻한 볕의 땅"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이곳의 볕에서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데에 신세를 진 사람들의 따뜻함을 생각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주었고, 어떤 분들은 직접 도와주기도 했다.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격려는 물론이다. 세상이 한 편의 시라면, 나는 이 곳의 따뜻한 볕이 그들이 내게 보여준 따뜻함의 은유라고 믿는다. 시는 그것을 읽으려는 의지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주의 깊음이 있어야지만,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내가 세상의 은유를 바라 볼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에만, 따뜻한 볕의 땅은 내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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