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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May 12. 2021

치유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농업을 공부하던 시절, 추천도서를 진열해둔 서가에는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정의의 길에는 관심이 없고, 비틀거리며 가는 것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기에 한번도 집어본 적 없는 책이지만 어쩐지 요즘 제가 사는 모습을 생각할때마다 그 제목이 떠오르는 것 아니겠어요.


 대학병원에서 제시한 솔루션이 더 '건강'하거나 '온전'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 같지 않았기에 자연치유라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치유는 더 '건강하고 온전'한 미래를 보장하느냐?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실천'하기가 녹록치 않다는데 있습니다.


 음식을 철저히 가려서 먹어야 하고, 해독과 정화를 위한 요법을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해야합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매일 지켜야 할 것을 실천하고 있는데 100점을 맞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완벽하게 성공하기가 힘듭니다.  눈을 뜨면 발암물질이 도처에 깔려있는 현대사회에서, 나쁜 생활습관에 젖어 있던 사람이 자연치유를 위한 몸을 만드는 것은, 닭이 황금알을 낳는 것보다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 귀찮은 짓'을 다 때려치우고 병원에 가서 잘라내고 지지고 녹여서 "암 없어졌다! 만세!"를 부르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치만 저는 어쩐지 제가 지나고 있는 과정이 '저에게 꼭 필요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 성공, 실패의 결과와 상관없이 제가 선택한 이 길 끝에 내가 깨달아야만 하는 '어떤 가르침'이 있는 것 같은 기분 때문입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현대의학은 틀렸고 자연치유만이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저에게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네, 저도 환장하겠습니다^^)


 아무튼간에 그 쉽지 않은 자연치유를 길을 걸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통 노력으로는 안되고 '노오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이 때로는 집요해집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집요함이 없으면 자연치유의 길을 걷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헌데 치유에 대해 말하는 많은 서적에서는 또 '진정한 치유를 얻으려면 집요함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하게 고수하는 믿음이나 강박은 오히려 이로울 것이 없고 해롭기까지 하다고요. 허허. 어쩌라는 것인지.


 건강하고 온전한 삶에 대해 통찰을 얻으신 분들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듯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내려놓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저는 또 갈길몰라 서성댑니다. 내가 암에서 나으려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 마음도 욕심이고 집착일까? 온전함에 가까워지려면 암에서 낫고 싶고,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도 내려놓아야 하는 건가? 내려놓으면 그 수많은 생활철칙을 어떻게 다 지켜내지?


 '포기'와 '내려놓음'은 다를텐데, 어떻게 다른 걸까? '집요함'과 '집중'은 어떻게 다른걸까? 이런 질문들로 머리속이 어지럽습니다. 그럴듯한 답을 찾은듯 하다가도 매일 마주하는 선택의 상황에서 내 선택의 동기가 집착이나 집요함인지 내맡김인지 묻게 됩니다. 답을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가 한달이 지났습니다. 깊은 안개 속에 들어와 있는것 같고, 종종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고 이렇게 잘 가고 있다고 당차게 이야기하고 싶으나, '비틀거리며 겨우 걸어가고 있다'는 게 요즘의 저를 설명해주는 정확한 말인 것 같네요. 내게 온 이 병이, 자연치유를 선택하도록 펼쳐진 상황들이, 이 안개속 같은  마음들이 내게 알려주고자 하는 게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정의의 길이 아닌 '치유의 길을 비틀거리며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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