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욕실에는 뜨신물이 나오지 않는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영덕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심혈을 기울여 머리를 감았다. 한톨의 각질도 남기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영덕에 머무는 3일 동안은 머리를 감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문제는 예기치 않게 여행이 길어지면서 생겼다.
몸 여기, 저기가 간지럽고 좀이 쑤셨다. 씻고 싶다는 신호였다. 선험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서는 따순 물로 씻을 방법이 없는 거지요?" 선험자는 방법이 다 있다고 했다. 이 세상에 안 될일은 없다는 듯 위엄있고 당당한 태도였으나, 양쪽 입꼬리가 빙그레 올라간 것이 어쩐지 미덥잖았다.
선험자가 가르쳐 준 곳에는 티피가 한 채 서 있었다. 그 안에는 솥단지 하나가 덩그러니.
솥단지 아래에는 간이 아궁이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니까 장작을 지펴 물을 데우고 그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는 것이로고... 끓는 물 안에서 천천히 죽어갔다는 개구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목욕시설의 야생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나는 슬금슬금 도전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자, 장작은 저기서 가져오면 되겠고, 화상을 대비한 찬물은 여기 받아두면 되겠군. 그런데 물은? 수도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아, 물을 날라야 하는구나... 큰 대야로 나르더라도 수십번은 오가야 할 것 같았다. 맥이 탁 빠졌다. 됐다 마, 안해.
날이 저물었다. 저녁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터줏대감 형님이 분주하다. 무얼 만드는 중이라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누군가 목욕물을 준비하고 있고 모두가 목욕을 고대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얼마 뒤 목욕탕이 개시됬다. 신사들의 배려로 여자들이 먼저 탕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가마솥탕은 2인1조가 필수다. 한 사람이 탕에 들어가면 다른 한 사람은 장작을 넣고 빼며 불조절을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개구리 꼴을 면할 수 없을테다. 막 안면을 튼 언니와 걱정반 기대반 티피로 향했다.
세상에.
밤의 그곳은 낮과는 달리 운치가 가득했다. 자욱한 연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무척 몽환적이었다. 그래, 한 겨울 날씨에 별빛 아래서, 장작불에 의지해 목욕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꿈 같기는 하였다.
물은 딱 좋게 따듯했다. 이따금씩 천막 안으로 불어오는 11월의 찬 공기는 노천탕 부럽지 않은 기분을 선사해줬다. 밖에는 깊은 산속 물 흐르는 소리와 당나귀의 부르짓는 울음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살다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호사를 누린다 싶을 때가 있는데, 이날의 목욕이 그러했다.
이 야생에서의 목욕은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했다. 수도꼭지 틀면 따듯한 물이 나오는 도심의 목욕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불편한 목욕이었다. 물을 끌어다 줄 사람이 필요했고, 장작불을 잘 지피는 사람도 필요했다. 매케한 연기를 빼 줄 티피 전문가(?)도 필요했으며, 탕에 들어가 있을때 불을 조절해 줄 짝궁도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탕안의 저 발판은 아까 누군가 추위속에 부지런히 움직여준 결과물이었다. 하물며 장작 하나도 제 몸 불사르는 희생이 없었더라면, 성사되기 어려운 목욕이었다. 목욕 한 번 하기 위해 여러 생명의 노고가 모였으니 어찌 호사스럽지 않았겠는가.
그 호사 때문인지,
내내 훈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