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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Mar 14. 2016

다가온 미래

첫 번째 지난주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60313212200125



김태은의 지난주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대개의 연락은 약속으로 이어지고, 결정이 서툰 내게 누군가를 우선순위에 두는 어떤 시간을 정하는 일은 여간 녹록지 않은 탓이다. 그러자 대부분의 관계는 배려를 위장한 수동의 그늘 뒤로 숨어들었고, 이타적이라는 평판 속에서 한 에고이스트는 아저씨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 어느 시점에 이르러 무거운 약속을 하려 한다. 매주 일정 분량의 글을 쓰는 일이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나, 취미든 직업으로 일정량의 글을 늘 쓰는 이에게는 감지하기조차 어려운 무게 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앞의 허들도 몇십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넘어질까 두려워 선뜻 넘어서지 못하는 필자에게는 수십 번 주먹을 쥐었다 놓는 다짐을 요구하는 일이었음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밝힌다.


 「김태은의 지난주」는 한 주의 세상사를 필자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전문 기자처럼 사실관계에 대한 고급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수많은 저널리스트나 이름난 자유기고가처럼 빼어난 통찰과 글솜씨를 뽐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한도 없는 마라톤의 출발 총성을 스스로 울리고 달려가는 이유는 문력을 단련시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1인 미디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가치의 발견과 나름의 지위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축하겠다는 개인적인 목표에 기인한다.     

    

 최초의 거창한 다짐이 저조한 조회수에 무기력해지지 않고, 졸고가 야기한 공방 속에 주저앉지 않기를, 매주 일요일 밤 업로드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할 것이다.





다가온 미래 _ 양가감정의 인식과 대응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역사적인 첫 대국을 시작하는 시점(2016년 3월 9일)에서 필자의 이성은 이기적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이세돌 9단이 이기는 것보다는 인류사의 큰 변곡점을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를 직접 목도하고 싶었던 욕망과 호기심 탓이다. 그런데 이 조바심이 이세돌 9단이 연거푸 패배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술의 거대한 발전 앞에, 한 빼어난 인간이 겪는 전에 없던 좌절감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복기하며 떨리던 그의 손이 미래의 우리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라는 양가감정이 비단 필자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염원하며 두려움의 실체를 외면하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도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호기심의 욕망이 충족되기를 바랐던 목소리들이 그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양가감정은 그 자체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나, 언제까지나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부여하는 혼란 속에서 머무를 수는 없으며, 적절한 수습책의 등장을 종용한다.     

 

 우선 기술의 발전이라는 큰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스마트폰의 출시에 높은 관심을 두는 것, 더 편리하고 성능 좋은 새 스마트폰의 공개 행사가 유명 록 밴드의 공연처럼 열리는 것은 이미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최신 기술뿐 아닌, 일상 속에서 구현되는 과학기술은 대체로 인간 생활에 있어 효율성을 충족시키거나 게으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인공지능 기술도 그 연장 선상일 뿐이다. 인간이 수행하기에 여러모로 번거로운 것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놀랄 것은 없다. 이는 지금까지의 방식과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나름의 특수성을 지닌다. 항간에 농을 섞어 ‘계산기에도 산수를 지고, 포크레인에 비해서도 땅 파는 능력이 훨씬 떨어지는 것이 인간이니, 이 패배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일견 수긍을 야기하는 이와 같은 논거도 스스로의 전원까지 조절할 수 있을 존재를 그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시적 실소의 대상으로 국한함이 옳다. 결국, 인공지능은 그 존재의 특수성을 참작하여 대응하기를 요구하는 실체임이 자명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전형적이게도 오늘의 우리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특히 모국어를 공유하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국가 경제의 대부분이 대기업의 자본과 논리로 운용되는 이 나라에서, 지금 대기업에 의해 스마트폰이 만들어지듯, 훗날 그들에 의해 생산된 인공지능의 세상을 상정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음은 물론, 세상 전반의 구동 논리가 더욱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존재에 의해 이루어질 것은 명징해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미래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을 다룰 소수의 권력자를 경계하자!”는 외침은 공허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토양은 바로 오늘부터 닦아나가야만 한다. 그 수단은 경제민주화라는 거대한 담론이어도 좋고, 노조가입이라는 민중의 실천이어도 좋다.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움직임이 당장의 소득격차 완화에 국한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실천이 미래사회에 대한 대응도 포괄하는 것임은 이미 알파고가 충분히 증명해 보였다.





어렵기 때문에 한다는 것     


 이세돌 9단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증명하는 기념비적 홈런의 피홈런 투수가 될지도 모르는 도전을 받아들였다. 더구나 최초의 흥미조차 패를 거듭할수록 좌절로 전이되는 가운데에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의 대국을 성찰하는 성숙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지만, 그럴수록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알파고에 맞게 대응했고, 이 글을 쓰는 당일 네 번째 대국에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4국에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공략했다는 평이 나온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단지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도전해야 할 이유를 인지하고 응대해낸 것이다. 이는 이세돌 9단이 패배가 이어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해냈다’기 보다는 오히려 패배가 이어지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네 번째 대국 승리 후 밝게 웃는 이세돌 9단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313181940996


 한발 더 나아가, 오늘 매주 글을 적어 올리겠다는 비장한 다짐을 한 필자 자신에게 이세돌 9단의 ‘어렵기 때문에 한다’는 정신을 이입한다. 이 염치없음은 결국 ‘어렵지만 해야 한다’는 노력의 종용만으로는 이 과업을 이룰 수 없음을 잘 아는 탓이다. 그렇다. 어렵기 때문에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좋아하는 케네디 대통령 연설문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장황하기만 했던 「김태은의 지난주」 중 ‘첫 번째 지난주’ 편을 마감한다.        

“We choose to go to the Moon in this decade and do other things, not because they are easy, but because they are hard.”
“우리는 10년 이내에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쉬운 과제여서가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John F. Kennedy 라이스대학 연설 중 (1962년 6월 12일)


달 탐사 계획을 선언하는 케네디 대통령 http://www.rsvlts.com/2012/09/12/jfks-moon-speech-50-years-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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