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열아홉 번째 지난주




불안의 시작


지난주, 정부가 내린 어떤 결정은 숱한 논의를 양산했다. 더욱이 특정 지역이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며, 논란은 증폭되었다. 대개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논쟁은 기존에 사고하던 방식, 곁에 있던 사람, 공유하던 이념의 틀 속에서 피아를 식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는 하였다. 이번에도 적지 않은 의견과 분노는 이전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작 중요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의 타당성 여부는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분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의해 야기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이 지지를 얻을만한 장면들이 있었다. 혹시 일련의 사태가 무척이나 미숙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들켜버린 것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이것이 냉정하게 논의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심정적 공감으로 형성된 불안에 의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아니 많이 달라진다.








불안 하나 _ 급격한 진행 과정


지난 5일 대정부 질문에서 사드 배치 시기와 지역이 결론 나지 않았다고 밝혔던 국방부는 3일 후 한미 공동으로 사드 배치를 공식화했다.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이 이 와중에 결정을 달리했다는 그 어떠한 납득할만한 명분은 없었다. 도리어, 5일 만인 13일, 부지 발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사안의 속도는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논의는 사드 자체에 대한 타당성에 맞춰지기보다는, 정부의 조치에 대한 성토로 변모했다. 그리고 대구공항 이전과 같은 오래된 당근으로 사태를 무마하고자 하는 시도에,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개돼지’ 발언까지 겹치며, 폄하당하는 민중의 분노로 초점은 완전히 옮겨갔다. 정작 ‘중헌 것’이 논의될 시간은 짧았거나, 아예 없었다. 그저 불안만이 남았다. ¹






불안 둘 _ 눈치 보기식 대응

‘사안의 원만한 해결을 바란다는 것’은 기실 ‘조용히 넘어가는’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성주군민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바라는 ‘조용히 잘 넘어가기’를 들켜버림으로써,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었다. 이는 국방부 장관의 "사드 레이더 앞에서 제일 먼저 전자파 시험하겠다"는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² 성주군민에게 있어 단 몇 시간이나, 며칠 동안 전자파나 소음을 견뎌낼 수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했던 미래의 생활이 무너질 지경에 놓였다는 생각에 불안이 증폭한 것이다. 진실로 국방부 장관이 성주군민의 어려움을 체험하겠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주군으로 귀농한 뒤, 사드 레이더 인근에서 참외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방법만이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2016071303314_0.jpg * 13일 국방부가 사드 지역으로 경북 성주를 확정했다고 발표 한 가운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질의 응답시간을 갖고 있다.


이후에도 반발이 커질 때마다 상응하는 조치를 하나씩 더 내어놓을 뿐이었다. 분노한 군민을 마주할 아무런 준비 없이 내려갔다가, 그저 차에 갇혀있다 돌아온 국무총리의 행보는 이를 증명한다. 더 과학적이고 선명한 단서들로 지역의 분노를 경감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간데없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술수의 강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일련의 과정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제 사태의 ‘더 중헌 것’을 또 한 번 저만치 밀어내며 불안을 가중시킨 것이 누구인지는, 그야말로 누구나 알만한 지경이 되었다.







불안 셋 _ 설득 아닌 설득


가장 본질적인 이슈는 ‘사드가 정말 우리나라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정부가 깊이 고민했다는 정황을 전하고, 국민 상당수가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면 될 일이다. 물론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드의 경북 성주군 배치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다음 날인 1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회의에서 사드 성주 배치의 당위성에 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본 기사 (허핑턴포스트, 7월 16일 자, “이 사진은 박근혜가 왜 비겁한 대통령인지를 드러낸다”) ³ 가 지적하듯, 국민을 상대로 설명하는 것이라고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째서 이토록 뜨거운 현안에 대해 기자회견이나 대국민 담화가 아닌,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의 회의를 노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일까? 정부는 세월호 때의 과오를 벌써 잊은 것일까? 대응의 시기를 놓치면, 눈물을 흘리거나 애먼 것을 해체해야 함을……. 설득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는 것이라면, 또 한 번 중요한 시간을 적당한 조치로 넘기려다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설득은 불안의 증폭에 기여했다.


PYH2016071405130001300_P2.jpg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관련해 관련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뉴저먼 시네마를 이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6~1982) 감독이 연출한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li: Fear Eats The Soul, Angst Essen Seele Auf, 1974)》의 제목은 ‘불안이 영혼을 먹어 버렸다 (Fear Eats the Soul)’는 아랍 속담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영화는 이루어지기 힘든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리며, 고조되는 불안에 잠식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그저 흔한, 연인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감독은 사회적 소수자에 속하는 남녀 주인공을 통해, 서독 사회의 오래된 편견을 꼬집는다. 사회가 던진 편견의 시선에 영혼을 불안으로 잠식당한 이 커플은, 짧은 사랑할 시간마저 갈등으로 흘려보내고 만다.


성주군민을 위시한 우리 국민의 사드에 대한 불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까지 이 사안이 진행되는 과정,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 분노에 대응하는 모습 모두가 불안을 야기하고 더 증폭시킴에 더없이 적절했음을 상기한다. 성주군민만이 아닌, 그토록 많았을 플러스와 마이너스 지표들을 다각도로 따져, 정말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었노라고 전달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일제히 불안에 잠식당했다. 그것이 설령 아무리 옳은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서툰 모습을 보여준다면, 설득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도 이미 집권 4년 차의 중반에 이르렀고, 국정운영의 맥을 같이하는 지난 정권의 5년과 연속 선상에 있음을 따져보면, 어째서 아직도 우리가 초보운전자의 차에 탄 동승자의 불안을 느껴야 하느냐라는 자조 섞인 한탄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당장 성주군의 할머니들은 눈앞의 불안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시작일는지 모른다.


NISI20160714_0011920235_web.jpg *** 고령박씨 집성촌인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원1리 주민들이 14일 사드 배치에 반발해 마을회관 거실에 걸려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형 걸개 사진을 떼내고 있다.





참고


¹

- the 300, 박소연 기자, 2016년 7월 13일 자, “사드 '쉬쉬' 2년→5일 만의 부지 발표…'안보 님비' 자초”

- the300.mt.co.kr/newsView.html?no=2016071310107621338&M300


²

- 조선일보, 안준호, 박상훈 기자, 2016년 7월 13일 자, “한민구 국방장관 "사드 레이더 앞서 제일 먼저 전자파 시험하겠다"”

- 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3/2016071303385.html


³

- 허핑턴포스트, 김수빈 기자, 7월 16일 자, “이 사진은 박근혜가 왜 비겁한 대통령인지를 드러낸다”

- huffingtonpost.kr/subin-kim/story_b_11024306.html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2016년 7월 13일 자, "<사드 배치> "결사반대"… 성주군민 5천 명 궐기대회(종합)"

- yonhapnews.co.kr/bulletin/2016/07/13/0200000000AKR20160713077851053.HTML


*

- 조선일보, 안준호, 박상훈 기자, 2016년 7월 13일 자, “한민구 국방장관 "사드 레이더 앞서 제일 먼저 전자파 시험하겠다"”

- 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3/2016071303385.html


**

- 연합뉴스, 강건택 강병철 기자, 2016년 7월 14일 자, “朴대통령, 오전 10시 30분 NSC 주재… 사드 후속대책 점검”

- yonhapnews.co.kr/bulletin/2016/07/14/0200000000AKR20160714029600001.HTML


***

- 뉴시스, 김진호 기자, 2016년 7월 14일 자, “"사드가 웬 말"···뿔난 성주 주민들, 박 대통령 사진에 '화풀이'”
- 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714_0014220744&cID=10810&pID=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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