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묻지 않다

스물다섯 번째 지난주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캐나다의 철학자 앤드류 포터는 그의 저서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서 대중과 언론의 진정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정치가 악순환의 굴레 속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정치권에서 ‘위선’을 가장 큰 악덕으로 만들었으며, 진정성에 대한 욕구가 정치인들로 하여금 되레 허위로 진정성을 꾸며내게 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유권자가 진정성 있는 정치인을 바랄수록, 정치인은 이미지 연출에만 신경 쓴다고 그는 지적한다. ¹ 저명한 철학자의 견해에 수긍하면서도,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인류에의 희망과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오래된 확대해석으로, 지레 두려움이 밀려온다.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이는 지난주, 진정성에 관해 질문을 던져온 한 정치인 탓이다. 그는 요즘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등장하고는 한다. 그날도 그랬다.









10년의 시간


"자꾸 창문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10년이 흘렀다. ‘자꾸 창문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쉼 없이 생산을 쥐어짠 경영진의 압박에도, 군소리 없이 기타를 만들어 세계 기타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하기에 이른 회사가 있었다. 경영진은 그런 노동자들을 10년 전인 2007년 정리해고한다. 바로 기타 제조업체 콜텍의 이야기이다. 같은 해 4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하고, 7월에는 계룡시에 있는 콜텍 악기를 위장폐업하였으며, 남아있던 67명 전원을 정리해고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노동자들이 해고 무효를 주장하며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벌이고 있는 싸움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7년 콜텍 사 측이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밝힌 사유는 '회사 측이 정리해고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 측의 주장과 달리 2006년 8월에 작성된 (주)콜트악기의 신용분석 보고서에서는 콜트악기의 신용등급을 ‘우수’하다고 평가해놓고 있었다. 또한, 한창 정리해고로 노사 간의 갈등이 극심하던 당시 임원진에 성과급 300%가 지급되기도 했다. 당시 회사 경영의 위기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2007년 노동자들을 해고할 당시, 대표이사 박영호는 한국 부자 순위 120위, 확인된 재산만 1,191억 원이었다. ² ³ ⁴


2015071301_01.jpg * 인천시 갈산동에 위치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의 모습



해고의 시간으로부터 6년 여가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콜트악기 측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사 측에 해직 노동자들을 원직 복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기타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을 다시 해고했다. 복직 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이 돌아갈 공장을 폐업해 일할 곳이 없어졌다는 이유였다. 다시 2년이 지난 2014년, 대법원은 콜텍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무효소송에 대해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인정될 때만 할 수 있도록 그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판결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손쉽게 정리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오랜 시간 부당함에 맞서 싸운 노동자의 이름,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사연을 추리고 또 추리자면 이 정도이다. 그리고 2015년, 당시 여당의 당대표직을 수행하던 한 사람이 등장한다. ² ³ ⁴


"콜트악기·콜텍, 발레오 공조 코리아 등은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 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


15936_30630_468.jpg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5년 9월 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강성 노조가 기업 문 닫게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모습



믿고 싶다.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정부·여당이 노동법을 강행하려던 시점에서 내뱉은 한 마디의 시간으로부터 1년도 채 되지 않아,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동일인물은 사죄를 하겠다며 나타났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주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강경노조 탓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던 자신의 발언을 공식으로 사과했다. 그는 덧붙여, "콜트악기와 콜텍의 폐업이 노조 때문이라는 잘못된 사실을 발언해, 두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거리에서 수많은 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사과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이는 지난 16일, 서울남부지법이 김 전 대표에게 공개 장소에서 콜트악기 노조에 유감(사과)을 표명하기로 한다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지만, 적어도 그 진정성만큼은 믿고 싶다. 앞서 주지하였듯,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인류에의 희망과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오래된 확대해석 탓이다. 그렇다. ‘믿을 만하다’ 가 아닌, ‘믿고 싶다’는 제 바람이다. 김 전 대표가 사죄의 발언을 한, 국회 기자회견장의 이름은 정론관(正論官)이다.


2016082600111731757_1.jpg ***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26일 오전 국회에서 콜트악기 노조와 관련한 발언 사과 회견을 하는 모습







진정성을 묻지 않다.


수용의 첫 단계가 의구심이 되는 관계라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가! 대저, 그 누가 타인의 진정성을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랴! 결국, 허상과도 같은 진정성이라는 존재는 질문의 대상이 되기에도 적절치 않으리라……. 그럼에도 졸고를 빌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사죄에 ‘진정성’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표현을 들이댄 것은 그간의 행적과는 어긋나는 근래의 모습들 때문이다. 이처럼 귀납적인 방식으로 하나하나 보정해나가는 것이 당최 가능이나 한가 싶을 정도로, 이전과는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의 진정성에는 의심의 시선 따위를 애써 거두기로 한다. 그것이 앞서 언급한 사유에 더해, "진심 어린 사과에 우선 감사의 말을 전한다"는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의 답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리어 김 전 대표의 진정성과 똑같은 질량으로 그를 응원하려 한다. 물론 응원은 가볍지만, 한 표는 무거우리라는 사족을 굳이 덧붙이며…….


IE001768481_STD.jpg **** 2014년 10월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차를 타고 떠나려하자, 한 세월호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제정을 간청하는 모습






참고

¹

- 앤드류 포터, 노시내 역,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마티, 2016


²

- 뉴스타파, 정재홍 작가, 2015년 7월 13일 자, “[목격자들] 콜트콜텍 해고, 3000일의 기록”

- newstapa.org/27432


³

- 경향신문, 송경동 시인, 2015년 4월 23일, “[기고]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3000일”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4232057465&code=990304


- 오마이뉴스, 안건모 기자, 2016년 7월 4일 자,“3431일, 아직 콜트콜텍엔 4명의 해고노동자가 있다”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23242&PAGE_CD
=ET001&BLCK_NO=1&CMPT_CD=T0016


- 오마이뉴스, 이경태 기자, 2016년 8월 26일 자, “327일 만에 사과한 김무성 "오보 확인 없이 발언해"”

- 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238743&isPc=true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포커스뉴스, 보도 김도형 기자, 사진 강진형 기자, 2016년 8월 26일 자, "김무성 "콜트·콜텍 잘못된 발언 노동자에 큰 상처" 공식 사과"

- focus.kr/view.php?key=2016082600111731757


*

- 뉴스타파, 정재홍 작가, 2015년 7월 13일 자, “[목격자들] 콜트콜텍 해고, 3000일의 기록”

- newstapa.org/27432


**

- 고발뉴스, 김미란 기자, 사진 뉴시스, 2015년 9월 3일 자,“김무성, 연일 ‘反노동’ 발언… 강성 노조가 기업 문 닫게 했다?”

- 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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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보도 하성태 기자, 사진 이희훈 기자, 2016년 8월 26일 자, “김무성 '개그' 사진, 같은 사람인가”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38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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