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없다.

스물여섯 번째 지난주




‘민생’이라는 치트키


쉽게 갈 수 있는데, 어렵게 가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완성 이전에 과정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기도 한다. 반복적 검사에서 전(全) 과정을 거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특정 단계를 건너뛰는 일종의 술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치트키’(cheat key : 임의대로 게임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명령어 ¹, 일종의 속임수를 이름)라는 용어는 이상의 의미를 포괄한다. 다만, 주지할 사항은 ‘치트키’는 ‘정석(定石)’과는 반의(反意)의 관계에 놓인다는 것이다. 필요하지만, 진짜가 아닌 것, 실체에서는 융통될 수 없도록 고안된 것, 그리고 이상의 사항이 상호 간에 합의된 명령어가 바로 ‘치트키’인 것이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다. 언중의 요구에 의한 신조어의 등장은 이 명제에 대한 가장 표면적 증례가 된다. ‘치트키’ 또한, 이 명제와 사례 속에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미 우리는 수많은 치트키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름을 떠올려본다. 이에,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정치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민생’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면, 너무 엄격, 진지, 근엄한 것인가? 실체 없이 ‘민생’이니, ‘국민’이니 하는 구호만이 난무하는 치트키 정국의 모습은 지난주만 해도 다양하게 드러났다.








장면 하나 _ 설명이 없다.


현 정권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불친절이다. 지난달 16일 이루어진 개각 또한 어떤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개각인지에 대한 정보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임명된 장관 후보자의 면면 뒤에는 부적합으로 의심할만한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옹호하는 쪽과 의혹을 들추어 부적합의 근거로 내세우려는 쪽은 지루한 충돌을 반복했다. 충돌의 일면은 고성과 욕설로 전해지고, 오래된 정치혐오에는 다시금 불이 지펴졌다. 마침 인사검증 담당자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설명 없이 단행된 개각과 설명해줄 사람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 그리하여 의심 가능한 요소들은 다툼의 고성에 묻혀버린 익숙한 전개가 또 반복된 것이다. 그렇게 사랑한다던 국민은 이렇게 의혹이 많은 후보자가 장관직을 수행하기에 적절한지가 너무나도 궁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아무런 설명이 없다.


2016090201308_0.jpg * 9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조윤선 후보자





장면 둘 _ 중간이 없다.


지난주 8월 31일, 20대 국회는 파행으로 시작했다. 바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에 여당인 새누리당이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며 파행을 일으킨 것이다. 이 파행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에 이어 국회의장실의 점거로까지 이어지며, 힘들게 합의한 추경예산 안의 통과도 뒷전으로 미루게 했다. 중립적 위치에서의 국회의장이 소신을 피력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짧지 않은 경력의 정치인이 해당 발언을 통해 분란을 예상치 못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짧은 퇴장 정도의 반발이 아닌,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면서까지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간 여당의 모습도 심히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항상 ‘민생’을 외치는 국회에서도 논의가 가능한 영역인 중간에 발을 딛는 것이, 기싸움에서 밀리는 것으로 인식되는 탓인지, 좀처럼 그 시작조차 수월하지가 않았다.


NISI20160902_0012135797_web.jpg **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결의안'을 발표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정 의장을 항의 방문해 면담하는 모습




장면 셋 _ 수장이 없다.


지난해 10월, 한 명의 기업인으로부터 시작된 게이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달한 지점은 바로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집무실이 있는 집과,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는 거대 언론사의 대립 양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 싸움이 시작 단계일 뿐이라며, 팝콘을 들고 뉴스 앞에 앉는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나라의 난제들을 본다. 높아야 할 수치는 낮고, 낮아야 할 수치는 높으며, 강물은 제빛을 잃었다. 이 와중에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다는 식으로 제 민정수석을 감싸기 급급한 청와대와, 어떻게든 진흙탕을 만들어 놓겠다는 한 언론사의 대결 양상은 지난주로 막을 내릴 것 같지만은 않다. 만일 진정한 수장이 있다면, 숱한 의혹의 당사자를 품에 안은 채, 언론사가 제 지위 이상으로 걸어 들어오는 청탁과 시비에 힘겨루기만 하고 있을까? 의혹은 실체의 규명으로 해소하고, 부패한 언론사와는 다툼이 아닌 사실관계를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수장이 있기는 한가?


NISI20160902_0012135801_web.jpg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8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박수환 게이트’에 연루된 유력 언론인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밝히고 있는 모습








결국, 국민은 없다.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정치가 있다. 또한, 정치가 있는 곳에 다툼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세력 간의 기싸움에 정작 그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음을 한탄하지 않을 길이 없다. 결국, 형편에 따라 볼모로 잡았다가, 이내 허상으로 전이되는 ‘국민’이라는 이름의 무상함 속에서 고사성어 ‘와각상쟁(蝸角相爭)’을 떠올린다. ‘와각상쟁’은 명분 없는 싸움이나 별 성과가 없는 전쟁을 비유한다. ² 달팽이의 뿔 위에서 다투는 동안, 달팽이의 제집이 무너지고 있음을 대체 알고나 있는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국민들은 지난한 여름을 이제야 빠져나오려 하고 있다. 하지만 가을이 온다 하여 마땅히 제 서정(抒情)을 둘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唐) 나라 시인인 백낙천(白樂天)은 자신이 지은 시 <대주(對酒>의 한 구절에 ‘와각상쟁’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 바 있다.


蝸牛角相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번쩍이는 사이에 붙어있는 이 몸이거늘


3338309_kKz.jpg ****






참고

¹

- 중앙일보, 이지영 기자, 2016년 6월 29일 자, “어그로·캐리·현피… 게임용어, 사전에 오르다 "

- news.joins.com/article/20234695


²

- 동아일보, 김원중 교수, 2012년 7월 9일 자,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71> 와각지쟁(蝸角之爭)”

- 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955/3/70070000000955
/20120708/47621571/1#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KBS 뉴스, 박태서 기자, 2016년 9월 1일 자, “청-조선일보 갈등 숨고르기… 봉합? 3차전?”

- news.kbs.co.kr/news/view.do?ncd=3338309


*

- 조선일보, 금원섭 기자, 2016년 9월 2일 자, "野, 조윤선 '부적격' 청문보고서 단독 채택 "의혹 대한 소명 불충분""

- 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2/2016090201384.html


**

- 뉴시스, 전신 기자, 2016년 9월 3일 자, “[금주 뉴시스 포토③] 정세균 국회의장에 항의하는 정진석”

- newsis.com/pict_detail/view.html?cID=1&pID=1&page=1&s_skin=&s_date
=&e_date=&s_k=&pict_id=NISI20160902_0012135797


***

- 뉴시스, 김진아 기자, 2016년 9월 3일 자, “[금주 뉴시스 포토②]'박수환 게이트 연루 언론인' 추가 폭로 기자회견”

- newsis.com/pict_detail/view.html?cID=1&pID=1&page=1&s_skin=&s_date=&e_date
=&s_k=&pict_id=NISI20160902_001213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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