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지난주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을 통해 소위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과학적 논증을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을 펼치고, 인격화된 신을 숭배하는 종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책은 전개된다. 설령 절대자가 있다고 하여도, 그 존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계공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비유한다. 시계공이 나름대로 고쳐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가, 가끔의 요행으로 시계를 작동하게 할 때도 있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이처럼 과학자에게 있어, ‘진화론’과 대비되는 지점에서의 ‘창조론’은 과학적 실체가 없는 ‘설(說)’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과학자의 시선에서만 공허하게 비치는 것일까? ‘진화’와의 대응이 아닌 경우에 있어서도, ‘창조’를 전면에 내세우는 용례에 대해 반복적인 질문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 어휘가 자체로 지닌 ‘좋은 말’의 느낌 이면에, 막상 구체적인 실체가 결여되어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 ¹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인류가 대상의 생김을 구분하고자 쏟은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잘 팔리는 형태로 닮아감은 그나마 합리적 차원에서 수용 가능하다. 하지만, 소시민의 처지 탓인지, 적지 않는 금액을 들여 왜 다른 나라나 도시에서 실컷 사용한 수식어를 끌어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설마 국가브랜드 디자인이 표절의 결과물일까?’라는 의구심을 품어야 하는 작금의 상황 자체에 분노가 일어남은 어쩔 수 없다. 우선 양쪽의 견해를 다 들어보기로 한다. 디자인에 대한 논쟁의 요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의혹을 제기한 쪽의 입장이다.
"크리에이티브라는 이름이 국가명 앞에 온 것, 빨간색과 파란색을 쓴 것. 이것은 무조건 카피, 명백한 표절이다."
-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 손혜원 의원 ²
다음은 디자인을 이행한 측의 입장이다.
“‘크리에이티브 프랑스’의 색상이 짙은 파란색과 빨강색이라면 우린 태극의 빨강색과 파란색을 재해석해 보다 현대적이고 친숙한 느낌이 있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가장 중요하게는 글자의 폰트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거기서 유사하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한 건 ‘레귤러 볼드’라고 볼 수 있고 프랑스는 폰트도 다르지만 글자 폭을 더 가늘게 보이게 하는 조형적 원리를 표현했다.”
“크리에이티브 다음에 오는 단어를 바꾸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프랑스와 달리, 우린 크리에이티브와 코리아 사이에 다양한 이미지와 단어를 표현하는 구조라 전개하는 방법도 다르다.”
- 국가브랜드 개발추진단장 장동련 교수 ³
디자인에 있어 닮음을 판단하는 정량적 기준은 없다. 단지 서로가 내세우는 각자의 주장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 있어, 최대한 유의미한 내용만 추렸음에도, ‘디자인한 측’의 주장을 더 길게 인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말이 필요했음을 역설한다. 일차적으로 ‘보이는’ 수준보다, 국가브랜드를 디자인한 측이 훨씬 더 섬세하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다. 그야말로 ‘국가브랜드’이다. 유사한 사례가 외국에 존재한다면, 그 차이가 또렷하게 읽혀야 한다. 타인은 우리의 기대만큼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우리나라의 브랜드를 바라봄에 있어, 그것을 ‘재해석’하고, ‘조형적 원리’를 발견하며, ‘전개 방식’을 구분하리라는 기대는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쳤다. 심지어 여타의 국가와 도시가 흔히 사용하는 수식어를 채택한 가운데, 이토록 전문적인 부연이 필요한 디자인이라면, 표절 여부를 떠나서도 그 자체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좋은 말들이 있다. 이번 이슈에서 부각된 ‘창조’를 비롯하여, ‘지속가능’, ‘재생’, ‘상생’, ‘공동체’ 등이 흔한 주인공이다.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그 자체가 지닌 좋은 이미지로 어떤 경우에나 통용될만한 거리로 여겨진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런 단어들이 지니는 부가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적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저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어버리면, 핵심적이기보다는 논란이 적은 ‘좋은 말’의 선택지에 손이 가는 일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어휘를 추출할 때, 늘 들리던 단어가 반복해서 들려오는 이유이다. 여기에 ‘참여’의 함정이 있다.
‘참여’ 또한 참으로 ‘좋은 말’이다. 밀실에서 야합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내세운 뒤 당사자의 의향을 담아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꾸준히 권장됐다. 그런데 ‘참여’가 제도 자체로 굳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소위 전문가 그룹과의 경계에서 조율의 문제가 발생했다. 다소 그릇된 판단일지언정, 다수인 대중이 ‘참여’한 사항에 대한 존중을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부상한 것이다. 이번 국가브랜드를 정하는 일에서도 이 지점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현재까지 35억이 투입되었는데, 브랜드 개발 예산은 1억 2400만 원, 디자인 관련 비용은 불과 2천60만 원이 책정된 가운데, 나머지 비용 전부가 국민 참여 공모와 홍보에 쓰였다 한다. ⁴ ‘브랜딩’이라고 하는 것이 전문 영역으로 자리 잡은 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특히 그것이 세계만방에 우리를 전면에서 알릴 ‘국가브랜드’를 정하는 일이라면, 일반 국민이 쉽게 포착할 수 없는 가치를 발견하여 제안할 수 있는 전문가의 영역이 더 크게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국민이 선정한 것이다’라는 가장 떳떳하게 달아날 수 있는 뒷문을 열어두고, ‘참여’를 책임회피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창조 創造 [명사]
1.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2. 신(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3. 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 따위를 이룩함.
우리가 창조적이라기에, 정녕 우리가 창조적인가를 되묻는다. 국가브랜드 홍보 웹사이트 http://creative-korea.kr에 대표 Icon으로 소개되는 있는 것은 총 15개이다. ‘한글’, ‘한복’, ‘한식’ 등 흔히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둘리만큼이나 꾸준하게 역임하고 있는 대상이 우선 나열된다. ‘창조’라는 어휘가 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전통적 수단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왜곡된 현실을 마주한다. 한편, 반복적 대상화를 타개할만한, 신선한 요소도 발견이 되기는 한다. ‘ICT기술’, ‘전통 미용’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공기업도 아닌 몇몇 민간 대기업의 기술을 국가 정체성 그 자체로 상정하는 천진한 정경유착은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 미용’의 설명에 이르자면 국가브랜드 개발추진단의 노고가 전해져 올 지경이다. 또한, ‘한글’ 등과 같은 위계로 ‘DDP’가 진열된 상황을 보고 있자면, 대체 국가브랜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싶어 진다. 그리고 ‘한강’이나 ‘제주도’와 같은 자연환경이 어째서 ‘창조적’인 것과 연계성을 지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상의 Icon들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Icon 하나하나의 적절성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의 국가가 스스로 ‘창조적’이라고 내세우는 일은 그 자체로 어떤 지향이라고 읽어줄 수도 있는 일 아닌가?’라며, 일단 한발 뒤로 물러난다.
도시의 차원으로 좁혀서 따져보자. 지역과 창조성에 관한 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누적한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토론토대 교수가 '창조도시'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개방성∙관용성∙다양성’이다. 이들 요건의 핵심은 ‘창조적 인재’에 관한 것이다. '창조적 인재'는, 개방되어 있고 관용과 다양성이 있는 도시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 차원으로 확대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우리의 창조적 인재가 이 땅에 머물고, 외부의 창조적 인재가 몰려들면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작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내세운 우리의 사람에 대한 처우는 어떠한가? 또한, 정작 이 땅에 있는 인재들의 마음은 어떠한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2015 세계 인재 보고서'(IMD World Talent Report 2015)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3.98로 조사 대상 61개국 중 44번째였다.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인재가 17번째로 많은 국가라는 의미다. 창조적인 사람 없이, 창조적인 국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⁵
다시 최초 언급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눈먼 시계공이 ‘아차!’하여 ‘Dynamic Korea’를 ‘Creative Korea’로 바꾸는 일을 저질렀으나, 길게 보자면 ‘창조적 진화’의 과정은 아닐까?’라는 기대마저 무상하다. 마지막 문단을 희망으로 덧칠하려는 이 시도가 ‘Creative Korea’를 만드는 과정이었겠구나 싶다.
명저(名著)를 비논리에 끌어들이는 작용보다 훨씬 그럴듯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하던 우리가, 입시교육으로 학창 시절을 그저 흘려보낸 우리가, 세계 제일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가, 그런 우리가 그다지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되기가 힘들 것임을, 결국 우리를 형용하는 수식어로서 'Creative'가 어울리지 않음을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생김의 비슷함을 빌미로, 밖에다가 그것 좀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하여,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창조 없는 창조의 메아리가 구슬프다. ⁶
참고
¹
- 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이용철 역, 사이언스북스, 2004
- 위키백과 <눈먼 시계공>, ko.wikipedia.org/wiki/눈먼_시계공
- 네이버 캐스트, 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1&contents_id=621
²
- 미디어스, 전혁수 기자, 2016년 7월 6일 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창조나라망신'?”
- 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196
³
- 경향신문, 주영재 기자, 7월 6일 자, “국가브랜드 추진단장 “CREATIVE KOREA가 표절? 폰트와 전개 방식 달라"”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61721001&code=960100
⁴
- 노컷뉴스, 김중호 기자, 2016년 7월 7일 자, “표절 논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예산 68억 쏟았다”
- nocutnews.co.kr/news/4619589
⁵
- 리처드 플로리다, 《신 창조계급,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이길태 역, 북콘서트, 2011
- 동아닷컴, 부형권, 장원재 기자, 2016년 1월 16일 자, “[토요기획]美서 이공계 박사 학위 한국인 60% “미국에 남겠다””
- news.donga.com/Main/3/all/20160116/75929326/1
⁶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 지성사, 1983, 중 시(詩)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구절 인용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서울경제, 최수문 기자, 2016년 7월 4일 자, “새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로…역대 정부 '창의성' 아울러”
- sedaily.com/NewsView/1KYQI98KLD/GH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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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2016년 7월 “문체부 "국가브랜드 'CREATIVE KOREA' 표절 아니다"”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yonhapnews.co.kr/bulletin/2016/07/06/0200000000AKR20160706113900005.HTML?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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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ative-korea.kr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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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닷컴, 부형권, 장원재 기자, 2016년 1월 16일 자, “[토요기획]美서 이공계 박사 학위 한국인 60% “미국에 남겠다””
- news.donga.com/Main/3/all/20160116/759293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