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것들의 한류

서른세 번째 지난주




온갖 것들의 침범


삶은 침범의 연속이다. 끼어들지 않았다면 시작부터 없었을 생들은 버젓이 침범을 반복하고, 또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다 그렇지 뭐…….’ 짧은 푸념들이 술안주로 우적거릴 때, 교차하던 시선들은 바쁘게 제 할 일을 하고, 손들은 분주히 잡는다거나 잡히었다. 이렇듯 소임으로 독해 가능한 침범이야 양자(兩者)의 이해 위에 있으므로 나름의 타당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지난주, 아니 정확히는 지난주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방적인 침범이 소위 ‘우리의 문화’라는 것을 주물럭거리는 참상을 보다 못해, 이곳에 뱉는다. 역겨움이 튀지는 않을까 죄송한 마음이다.








만만한 문화


미르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브랜드화하는 '신(新) 한류'를 창출하고 세계적으로 '코리아 프리미엄(Korea Premium)'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¹


‘전통문화’, ‘브랜드화’, ‘신한류’, ‘세계적’, ‘프리미엄’. 이 단어들의 무게 같은 것은 그 사용 이전에 측량된 바가 없을 것임을 단언한다.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했다는 수백억 원의 가치를 절하하는 것이 아닌, 망상 수준의 개념어들이 공존하기 힘들거나, 그럴 수 없음을 감지한 탓이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음 직도 싶다. 바로 ‘신한류’로 언급된 우리의 문화가 그것이다. 그것은 근 수년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리하여 본 재단도 이 성공적인 한류의 흐름에 편승하거나 힘을 실어주겠다는 취지를 내세운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PYH2015102709630001300_P2.jpg * 재단법인 미르 김형수 이사장을 비롯한 출연기업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위치한 '재단법인 미르 출범식'에서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곳이야말로 발화가 시작되기에 최적의 지점인 것이다. 그곳에는 모두가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대상과 좋은 취지와 멋진 단어들이 있다. 기대기 좋은 곳에 안착하는 오래된 수법은 우리가 판단 없이 물려받은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기에, 반감이랄 것이 설 자리는 좁거나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좋은 게 좋은 것”으로 표현되는 사태들 중, 다소 큰 단면인 것이다.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혹여 의혹된 바가 있어도 ‘좋은 일 하는데, 다른 소리를 내지 말라’는 반응이 나온다. 본 사안도 일찍이 찾아온 정부를 향한 레임덕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한참을 더 묻혔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건 파헤쳐진 덕분으로, 그들이 문화라는 것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음은 역설적 소득이 되었다. 자본을 깔아 무대를 세우고, 인종이 섞여 K-POP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가운데, 손뼉 치는 사람의 가운데에 선 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기만 하면, 프리미엄 코리아가 된다는 이 간편함 속에, 한류니 문화라는 것은 인스턴트 라면보다 우습다. 묻고 싶다. 문화가 그렇게 만만한가?






한류는 우리의 끝이 아니다.


지난주, 이 땅의 문화라는 것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영상이 여론의 입방아에 올랐다. 제목은 <아라리요 평창>이라고 한다. 작명은 기본에 충실했다고 판단이 된다. 제목만 들어도 내용과 대상이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그 질은 미흡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그것을 보았다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화가 나 있었다. 흥이 났다는 사람들도 보았다. 타인의 흥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고속버스 안에서 술을 나누고 춤을 추는 어르신의 취향도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평창으로 가보자.


2016101917122854291_1.jpg ** <아라리요 평창>의 한 장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우리 대중문화라는 것의 어떤 한계를 보았다는 더 큰 벽의 존재에 답답해진다. 이 영상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근래 이 나라의 TV에 등장하는 갖가지 요소가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에 먹방으로 대표되는 개그맨, 그리고 중독성 있는 댄스 리듬까지……. 차라리 너무 사실적이어서 고통스럽다. 그저 우리의 대중문화 그 자체를 넣었기에, 만든 이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음 직도 하다. 문체부 역시 이 영상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홍보 영상이 아니다" ² 라며 편리하게 비껴갔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공식적’ 여부에 있지 않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중문화를 빌릴 때의 수준에 있다. 힘들여 쌓아 올린 한류의 성과는 분명 박수칠 일이지만, 한류는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다. 편리하게 기대고, 그저 몇몇 성공을 복사해서 붙여놓는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된다면, 짧았던 K-르네상스와 가수 싸이가 영생(永生)의 길을 걷기만을 바라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 제발, <강남 스타일>을 좀 놓아주자.









어디에선가 한류를 팔고 있을 그분에게 °


어느 때고 시절이 한가했겠느냐마는, 부득이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더 뒤숭숭한 것은 연일 터져 나오는 여러 뉴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천한 필부(匹夫)인 저도 이런저런 말을 거들 수 있겠으나, 확고한 의지로 수사를 진두지휘하실 것으로 믿고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근래에 벌어진 일들 중 유독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 너무 쉽게 소비되거나 오용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심지어 세간에는 가까운 어떤 이가 자신의 잇속을 채울 구실로 문화라는 것을 이용하여, 재단을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겠지요. 아차! 이 건은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 한계성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이루어 온 ‘한류’라는 성과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이 성과에 그저 가볍게 올라타는 모습은 무임승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공짜 싫어하시지 않으셨던가요? 성공한 것을 답습하면 또 성공하기가 수월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쉽게 성공한’으로 기억되고 싶으신 건지요? 듣기에는 창조를 좋아하신다면서, 민간의 것은 어째서 재창조를 안 하는 것인지……. 대체, 그 어렵다는 칼군무와 쪽대본으로 힘들게 차려놓은 한류라는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서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아차! 살림살이 얘기***는 오늘 논할 것이 아니기에 이만 접겠습니다. 제가 닿지 않을 편지임을 알고 너무 경박하게 군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평안을 기원합니다.


GYH2016013100010004400_P2.jpg *** 올초, 국회예산정책처는 2016년 확정예산 기준 연말 국가채무는 644조9천억원으로 올 한 해 동안 49조8천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 마지막 문단의 ‘어디에선가 한류를 팔고 있을 그분에게’는 최근 이화여대 학생들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에게 쓴 공개편지 “어디에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시의성을 지닌 의미 있는 글의 제목을 졸고에 함부로 가져다 쓴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참고

¹

- 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2015년 10월 27일 자, “재계, 문화재단 '미르' 설립…"新한류 확산"”

- yonhapnews.co.kr/bulletin/2015/10/27/0200000000AKR20151027099100003.HTML


²

- 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10월 18일 자, “엉성한 '아라리요 평창' 뮤비… 문체부 "공식 홍보영상 아냐"”

- yonhapnews.co.kr/bulletin/2016/10/18/0200000000AKR20161018181700005.HTML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한겨레신문, 류이근, 방준호 기자, 2016년 10월 6일 자, “[단독] 미르·K와 '동업' 플레이그라운드, 차은택 놀이터였나”

-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2014년 8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상명아트센터에서 열린 융복합 공연 '하루(One Day)'를 관람하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차은택 공연 총연출자. 이 공연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청와대사진

- media.daum.net/m/channel/view/media/20161006182609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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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2015년 10월 27일 자, “재계, 문화재단 '미르' 설립…"新한류 확산"”

- yonhapnews.co.kr/bulletin/2015/10/27/0200000000AKR201510270991000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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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2016년 10월 19일 자, “'아라리요 평창' MV 전말…2억 7000만 원 행방은?”

- asiae.co.kr/news/view.htm?idxno=201610191712285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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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이상원, 박초롱 기자, 2016년 1월 31일 자, “한국 국가채무 OECD에선 '우등생'이라지만 증가속도 우려”

- yonhapnews.co.kr/bulletin/2016/01/29/0200000000AKR20160129176500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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