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서른네 번째 지난주




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알 리가 없다.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역사를 뒤져 유사한 사태를 찾지 못할 바는 아니나, 대부분 100년 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이는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품은 기억에는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말이 안 나온다. 그냥 웃다가 울다가 한다. 겨우 내뱉는 욕지거리도 이 신묘한 지경에 잘 맞는지 모르겠다. 둘러보면, 어안이 벙벙한 얼굴들뿐이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국가의 최고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껍데기였다니……. 정녕 이것이 무엇인가? 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2012년 12월 19일 새누리당 당사


이 직전의 판이 너무 싱거웠다. 패했던 쪽에서는 나름 칼을 갈아왔고,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으나 힘을 모아 단일 대오를 구축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해볼 만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강했다. 특히 이 후보는 막강한 팬덤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지지자들은 그 후보가 부모의 장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고 여긴 듯했다. 그리고 분명 비극적이었던 양친의 죽음에 많은 유권자가 일종의 부채의식을 안고 있었다. 상당수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온 “불쌍해서”라는 지지의 변이 이를 집약했다. 그것은 “한 번은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나름의 당위로 이뤄지며, 결국 그를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주 꼭두각시였음이 드러난 바로 그였다.


IE001531498_STD.jpg *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축하 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대통령이 된 것부터가 잘못일까? 반대로 따져보아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높은 확률로 이 형언할 수조차 없는 사태의 발생 가능성이 작아졌을 것이니,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논하였듯 그의 권력은 그 자체로 비롯한 것이라기보다는, 강력한 부모세대의 기억에 의탁한 것이기에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특히 인형을 조정한 자와의 깊은 인연을 상기하자면, 단지 이 비극을 유권자의 오판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1975년 5월 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중앙교회


귤이 회수(淮水)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서구에 연원을 둔 종교인데 우리에게 이와 같은 기도의 방식이 전해진 바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마치 접신한 듯 흔들어대는 몸과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그저 바라보기에도 무서울 따름이다. 1975년 5월 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중앙교회에서 열린 대한구국선교단의 구국 기도회에는 ‘교파를 초월한 신도 1,000여 명과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 근혜 양'이 참석했다’고 전한다. 지난주 KBS에 의해 영상이 공개되며 대한구국선교단의 총재와 현 통수권자 간의 관계가 그저 설이 아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이 시작된다. 물론 이 기도회 이전에 한 통의 편지가 회자된다. 그것에는 “꿈에 돌아가신 육 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국모 감이니 잘 도와주라고 지시하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¹ ²


캡처.JPG ** 최태민 총재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첫 공개석상 자료


공대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 대통령이 다분히 비과학적인 인물과 교류의 끈을 끊지 않고 있었음은 기이한 바이기는 하나, 개인적 취미로 한정하기로 한다. 차라리 주목할 지점은 최씨가 대통령 일가와 관계를 맺으며 이득을 취하는 방식에 있다. 그것은 높은 사람과 알고 지낸다는 의기양양함 이상의 금전적 실익이나 이권을 동반했으리라는 합리적 추정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이 짭짤한 관계는 손쉬운 대물림의 대상이 되었고 자신의 ‘아비투스(habitus)’를 가장 온전히 물려받은 자녀에게 동일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물에 들어온 고기는 그대로 있으니 바통만 넘기면 그만이었다. 사건 당사자 간의 인연이 본격화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주 드러난 비극의 연원일까? 대통령의 딸이 영적인 것에 빠져, 영악한 사이비 종교인에게 정신을 기대지만 않았더라도 없었을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의 힘으로는 그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려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까? 능력 있는 무속인만 만나면 누구든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역행한다.





1961년 5월 16일 청와대 응접실


깊은 밤이었다. 밤새 한강과 남산 아래에서 대치하던 군인들이 청와대 응접실에 앉은 시간은 오전 9시로 전해진다. 모두가 아는 결과대로 이듬해인 1962년 3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무려 18년간 대통령직에 스스로 눌러앉은 한 군인이 권력을 손에 넣던 시기이자 시간이었다. 총을 앞세워 획득한 권력에는 당위성이 필요했다. 마침 먹고사는 문제라는 제1의 천명은 차관에 의존한 양적 성장과 정경유착으로 수행한 개발독재를 미화했다. ³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시간이 있다. 1972년 10월 17일이다. 어느 정도의 당위성을 확보했다고 여긴 정권은 영속적인 통치를 위해 유신을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절대 1인 권력의 시대가 되자, 그토록 엄청난 권력을 지닌 지도자의 자녀 앞에서도 사람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권력에 부역하면 살고, 아니하면 죽는다는 단순한 논리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원칙은 명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일찌감치 영애님으로 불린 딸은 굳이 힘들여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배양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남이 써준 원고를 또박또박 잘 읽고, 공주님처럼 웃으며, 상냥하게 인사를 잘하면 그만이었다. 많은 책을 읽을 필요도, 변화하는 사회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설령 통치자의 자녀가 매우 총명하고 뛰어난 인물일지언정, 절대 그렇게 성장할 수 없는 구조와 환경 속에 놓였던 것이다. 사리에 어두운 공주님의 주변에는 하이에나가 들러붙었고, 결국 이로부터 비롯된 모든 비극이 지난주에야 만천하에 드러났다.


5.16_Coup_Park_Chung-hee.jpg *** 5·16 군사쿠데타 직후, 5월 16일 오전 8~9시 경 중앙청 앞에서 박정희와 이낙선 소령, 박종규 소령


그 끝에는 또 당신이다. 당신이 죽은 날로부터 무려 37년이 지났으나, 당신의 환영은 딸에 기대어 오늘에까지 이어졌다. 죽은 사람에게 비탄을 호소하여 무엇하겠나……. 마침 그 끝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이제 눈감으시라.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면…….


55년이었다. 무려 55년이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유한 권력의 암흑이 드리운 시간이었다. 이제 이것이 걷히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마치 해방과 같은 기쁨을 누려도 좋을지 모른다. 그런데 혹시, 이것이 끝이 아니라면? 한 명의 대통령이 무인(巫人)에 놀아난 단일 정권의 비극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교하게 설계한 허상의 권력이 계속될 수 있다면? 그저 지금의 대통령은 쓰임이 다 하여 용도폐기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찌 되는 것인가? 그럴듯한 음모를 조장할 생각은 없다. 친숙한 단어를 사용해 본다. 뉴스에서 보던 ‘친박’과 ‘비박’ 간의 권력 싸움을 떠올려보자. 그간 그 다툼은 새누리당 내에서만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확전되어 장외에서 벌어지게 되었다면?


정치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지만, 정치인은 아닌 사람이나 집단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과 그렇지 않은 정권이 들어섰을 때의 수지타산을 진즉에 마친 상태일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익과 부합하는 미래의 정치 세력과 친하게 지내려 할 것이다. 그것이 굳이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이름자를 달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그들이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여 나라가 망하거나, 민주주의가 괴멸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어떠한 부분에서는 성과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헬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요인과 현상들은 높은 확률로 그들의 관심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단지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해관계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가면 그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의 자리는 언제나 있고, 거기에도 늘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그와 같은 소수의 집단에 이득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당장의 분노 이후에도, 냉정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이유이다. 사는 것이 참 피곤하다.


KakaoTalk_20161030_191854759.jpg ****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 집회 모습





참고

¹

-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자, 2016년 10월 27일 자, “최태민의 대한구국선교단, 주류 교단 목사 다수 참여”

- 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6852


²

- KBS 멀티미디어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10월 28일 자 게시물

- facebook.com/kbsmultimedia/videos/1591527371156708/


³

- 위키피디아, “5·16 군사 정변” 항목 중

- ko.wikipedia.org/wiki/5·16_군사_정변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2016년 10월 25일 자 “브리핑실 나서는 박 대통령”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61025183000013&from=search


*

- 오마이뉴스, 안홍기 기자, 유성호 사진 기자, 2012년 12월 20일 자,“"MB와의 차별화, '박근혜 당선=정권교체' 인식"”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16292&PAGE_
CD=ET000&BLCK_NO=1&CMPT_CD=T0000


**

- KBS 멀티미디어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10월 28일 자 게시물 화면 캡처

- facebook.com/kbsmultimedia/videos/1591527371156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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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 “5·16 군사 정변” 항목 중

- ko.wikipedia.org/wiki/5·16_군사_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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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촬영,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 집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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