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그 적들

서른여덟 번째 지난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큰 이름에 기댄다. 철학자 칼 포퍼 경(Sir Karl Raimund Popper, 1902~1994)은 그의 너무나도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 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열린 사회는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이며, 진리의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이다.
열린 사회는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장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¹


오래된 책을 다시 열어젖힘은 명저가 지닌 힘에 비롯함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광장에서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 책 속의 그것과 겹쳐 보여서이다. 특히 우리의 적들은 칼 포퍼가 적시한 열린 사회에 대립되는 적의 모습 이외에도, 우리 사회와 관련된 중차대한 과실을 저질렀다. 이제 그 겹쳐 보인 층위를 한 겹 한 겹 열어보자.









정보화 사회와 그 적들


광장에 선다. 집회를 신고하고 무대를 설치하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있으나, 예전처럼 뚜렷한 주체는 없다. 그저 답답함과 참담함을 느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다. 이것을 굳이 ‘공동체의 힘’이라고 과대 포장하지는 않더라도, 이미 장난감처럼 인터넷을 가지고 노는 세대가 SNS에서 약속 시각과 장소를 정해 모여든 바는 명징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고도화된 정보화 사회가 있다.


반면, 광장의 외침이 -분명히- 닿았을 그곳의 사람들은 이 같은 사회적 배경을 악용했다는 혐의가 있다. 현 정부의 수장과 그의 오랜 동반자들은 적당히 정보를 쥐고 있는 한 두 사람의 입을 막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던 시절의 작용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이는 정보를 다루는 국가기관을 활용하여 댓글을 작성케 했던 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현 국면에서는 극우성향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공유하며 뉴미디어정책실의 활동과 관련지었다는 보도도 들려온다. ² 이들은 공들여 구축해놓은 정보화 사회의 자산을 사적 이익을 감추고 갈등을 조장하는 데 이용하였다. 문제는 이와 같은 활동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 대립을 심화시켰다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편을 갈라 다투는 동안 안정적인 지지율을 누리며 이를 향유하였다. 대체 이 죄목은 어찌 물을 것인가?


* 극우성향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공유한 단톡방 이미지





창조사회와 그 적들


정부가 좋아하던 표현에 대하여 따져본다. 바로 ‘창조’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국가 브랜드를 Creative Korea로 명명하며,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창업을 희망하는 다양한 벤처ㆍ스타트업 기업 몰려들었다. 정부의 지원도 있고 하니, 특히 꿈 많은 젊은이들이 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한다. ³


** 정부가 창조경제 정책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온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가동 1년 반 만에 위기를 맞이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모습


하지만 이 작은 희망들은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파탄이 났다. 높은 확률로 최순실의 존재는커녕 그 이름도 몰랐을 사람들은 이제 ‘창조’라는 말의 허울만을 내세운 창조사회의 적들에 의해 그 꿈마저 불법의 이름하에 저당 잡혔다. 시련은 있게 마련이고 잘 이겨내는 수밖에는 없다는 어느 정당의 전 대표와 같은 인식이 아니라면, 이들의 꿈을 유린한 죄는 따져 묻는 것이 타당하나, 또 어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미래 사회와 그 적들


통계치는 하나의 미래를 가리킨다. 바로 노인들의 나라다. 결혼과 출산의 감소 속에 이혼과 비혼은 늘고 있다. 점점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의 수가 더 많아지는 모습은 이제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물론 그런 시대에는 기술의 발전을 빌어 그에 걸맞은 삶의 방식이 나타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 대비하는가? 그리고 누가 하는가?


이제 와서 오랜 시간 동안 지적된 일을 온전히 현 정부의 과오라는 지적이 타당할 리 없다. 그럼에도 한정된 물리적 시간 동안, 제 잇속을 챙기기에 바빴던 자들이 미래 사회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그려 놓았으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산만 하면, 아이는 국가가 키워주겠다는 선진국의 모습은 이 정권에서 그 닮은 것 하나 보지 못했다. 도리어 역행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 주요 보육 예산을 전액 삭감한 내용을 담은 기사



하필이면 가장 급변의 시간에 그리고 다가올 중차대한 문제를 앞둔 결정적인 위기의 시간에 미래사회의 적들이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 이 엄청난 직무유기는 형벌로 벌할 수도 없다. 대체 이 엄청난 죄는 또 누구에게 따져 물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와 그 적들


모든 것 유전하며,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⁴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나오는 위 문장은 권력의 허망함을 되새기게 한다. 마침 명저의 초판이 출간된 지 71년이 되는 무려 2016년에 우리는 참 기이한 적과 맞서 싸우고 있다. 이 적들의 명백한 죄목은 ‘헌법 유린’과 ‘국정농단’ 정도로 포괄할 수 있다. 물론 이에 관련된 사항만에라도 적합한 형벌이 매겨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법적 처벌의 너머에도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부가적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들의 꿈은 흐려지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가장 급변하였으며, 다가올 문제에 대비해야 할 중차대한 시간에 한국사회의 적들은 너는 대통령하고 나는 비서실장을 하겠다며, 소꿉놀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만큼은 가짜 돈이 아닌 진짜 세금으로 야무지게 나눠 먹으며 흘려보낸, 이 시간의 미필적 고의는 대체 어떻게 따져 물어야 한단 말인가!


너희들 때문이라도 우리는 많이 바쁘게 생겼다. 제발 좀 빨리 비켜라.







참고

¹

- 이한구,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읽기』, 세창미디어, 2015


²

- JTBC 뉴스룸, 이서준 기자, 2016년 11월 7일 자, “[단독] 최씨 사단 '청와대 뉴미디어실' 카톡…'극우 글' 보고”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50591&pDate=20161107


³

- 슬로우 뉴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2016년 11월 23일 자, “[2030 세상보기] 보통 사람들의 고통”

- hankookilbo.com/m/v/7a09074644ce4476bf008cf14111f8ac


-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Ⅰ』, 이한구 옮김, 민음사, 2006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임타잔 님 다음 블로그 중 “'박근혜 정부' 또는 '박정희 2기 정권' 그 선택의 몫”

- 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NHmB&articleno
=14234&categoryId=109&regdt=20130207164241


*

- JTBC 뉴스룸, 이서준 기자, 2016년 11월 7일 자, “[단독] 최씨 사단 '청와대 뉴미디어실' 카톡…'극우 글' 보고”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50591&pDate=20161107


**

- 한국일보, 임소형 기자, 2016년 11월 15일 자, “‘최순실 불똥’ 창조경제혁신센터 어떻게 되나”

- hankookilbo.com/v/cab6b313f2e44433983f237dde0f49c6


***

- 허핑턴포스트, 이유주현, 김지훈, 황준범 기자, 2014년 11월 7일 자, “누리과정 0원, 초등돌봄 0원, 고교무상교육 0원”

- huffingtonpost.kr/2014/11/07/story_n_61184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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