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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Dec 11. 2016

필요한 영화 _ 영화 <판도라> 리뷰

마흔 번째 지난주




웃픈 시절에 영화를 본다는 것


 웃프다. 그렇다. 어느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다들 별꼴을 다 보며 사는 탓이다. 우리가 고생이 많다. 그런데 그 숱한 별꼴들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어, 정작 챙겨보던 것들의 지위를 뒤집어 놓았다. 그 전복(顚覆)에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뉴스’다.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가장 큰 타격은 영화의 몫이 되고 말았다. 주말 집회로 인한 물리적 시간 부족이라는 한계에 더하여, 도무지 한가롭게 스크린을 바라볼 수가 없는 답답한 마음들의 존재를 짐작한다. 그럼에도 여기 한 편의 볼 필요가 충분한 영화 한 편이 지난주에 개봉했다. 감상을 나눈다.



※ 마흔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판도라>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제하였으나, 영화와 관련된 사전 정보를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한 영화


 <판도라>는 안전하게 전개된다. 안전하지 않음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실체를 조명함에도, 일반 관객의 예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안전하게 머문다. 이른바 한국형 재난 영화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무능한 정부와 소시민 영웅 간의 대립적 구도’가 영화 <판도라>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되는 탓이다. 이 때문에 영화 <판도라>는 예상되는 비판의 지점들 앞에 쉽게 노출된다. 비판의 지점과 타당성을 짚어 본다.





1. 무능한 정부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방식


 진행 중인 참사를 마치 다 종결된 양, 현상을 진단하는 재료로 가져다 쓰는 것에 깊은 양해를 구하며, 질문 하나를 던진다. ‘원전사고와 세월호는 얼마만큼 다른가?’ 얼핏 방사능 노출 등 그 피해가 막중할 원전사고와, - 일부의 주장처럼 - 구조만 잘했더라도 비극의 정도를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세월호의 경우는 상이한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인지는 단지 비극의 규모가 아닌, 기저에 이미 참사를 향한 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로 모여야 한다. 이에, 영화 <터널> 리뷰글에서도 인용한 사향을 다시 전한다.


명백히, 세월호의 침몰은 하나의 교통사고가 아니다. 교통재난 전문가인 아베 세이지 일본 간사이대학 교수(사회안전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월호의 침몰은 “조직 사고(Organizational Accident)”이다. ¹ 시스템의 오류가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신호등의 일시적 오류로 인한 교통사고가 아닌, 신호등과 연결된 모든 관계망이 각기 어긋나, 거대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조직 사고”인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을 야기한 "조직 사고"의 양상은 원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도사리고 있다. 차라리 원전의 경우가 훨씬 가시적이다. 세계 1위의 원전 밀집도라는 불명예의 주변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노후 원전에 대한 반복적인 재승인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아래에는 활성단층이 지나가는 이 위태로운 이야기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원전의 비극을 가정하여 영화를 만드는 작동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또다시 정부의 무능으로 연결되는 ‘늘 보던’ 대립각에서 첫 번째 비판은 고개를 든다. 사태의 유사성이 반드시 전개의 닮음을 잉태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적 차원의 참사에, 무능한 정부를 대입함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유의미하다 할지라도, 클리셰(Cliche)처럼 자리 잡은 공식을 가져다 사용함은 다소 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평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 영화 <판도라> 스틸컷




2. 가족을 엮어 눈물을 소환하는 방식


 건드리면, 툭 하고 눈물이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각기 다를 수도 있으나, 보편의 지점 또한 존재한다. 가족, 그 중에서도 나이 든 부모, 먼저 간 사람의 존재와 같은 것에는 별도의 눈물샘이 있는 것인지, 미웠던 기억과도 무관하게 그 떨어짐을 막기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작용이 사람마다 큰 편차를 보인다 할지라도, 자본은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것은 상업 영화를 통해 쉽게 드러나고는 한다.


* 영화 <판도라> 스틸컷


 원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형을 추억하며 살아가는 가족은 나이 든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있는 형수, 그리고 원전에서 일하는 주인공으로 구성된다. 주인공의 연인도 원전에서 근무하기에, 이 가족과 원전을 따로 두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원전의 붕괴는 곧 이 가족의 붕괴로 직결된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아픔이 두드러지며 슬픔이 쌓여가고, 관객석에서는 훌쩍거림이 들려온다. 신파가 그 자체로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가 보여주는 문제에 공감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이 또한 쉬운 길을 걷었음에 대한 아쉬움에 있다. 거대한 비극과 슬픔이라는 직선도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걸어 그 풍경에 구별이 없다. 입에서 입으로 '지금껏 보아오던 재난영화에, 소재만 원전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이 돌면, 이토록 영화가 소외된 웃픈 시절에 <판도라>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길이 줄어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탓이다. 왜일까? 이상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분명 필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영화


 풀지 않은 매듭은 묶여있다. 묶인 매듭을 지금 풀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풀어야 한다. 공동의 결정을 지금 내리지 않으면, 다음 사람들이 내려야 한다. 부조리에 맞선 싸움을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싸워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그 해결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웃기에는 슬프고, 울기에는 허무한 이상한 정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풀어야 할 매듭을, 내려야 할 결정을, 싸워야 할 기회를 허비했다. 이 흘려보냄이 안타까운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영화 <판도라>는 그 지점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우리에게는 이 싸움 이후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음을 <판도라>가 시의적절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는 필요하다. 이것이 반공을 부르짖던, 그때 그 사람들이 반공영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던 것과 그 작용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할지라도, 이 생각을 거둘 뜻은 없다. 뉴스만 보더라도 그 소식들에도 계급이 있어, 어떤 소식은 짧고 굵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반면, 어떤 소식은 그 자체로 배경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우리 곁에 있는 이 익숙한 문제를 누군가는 더 알아듣기 쉬운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전달할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다소 안전해 보이리만큼 익숙한 전개를 꼬집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다수의 대중에게 접근하기에 더 적합한 방식일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차라리 좋은 전략인 것이다. 분명,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중요한 가치들은 있음이다. 그리하여, 이 한 편의 영화 <판도라>는 만들 필요와 볼 필요를 모두 충족한다. 한 편의 영화로 잠시나마 마음의 혼란함을 내려놓으시는 것도 좋겠다.


*** 지난 해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인 고리1호기의 폐로가 결정되었으나, 올해 5호기와 6호기의 건설이 결정되었다. 사진은 고리원전 전경.



참고

¹

 - 한겨레 21, 박상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위원, 제1057호, “세월호는 ‘조직 사고’다”

 - 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9328.html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영화 <판도라> 포스터

 - news.joins.com/article/20878414


*

 - 스타뉴스, 김미화 기자, 2016년 12월 7일 자, “원전재난 '판도라'의 상자 열렸다..연말 관객 사로잡을까”

 - star.mt.co.kr/stview.php?no=2016120617220828870


**

 -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2016년 11월 9일 자,  “김남길 주연 ‘판도라’, 지진과 원전사고·무능력한 정부까지…시국 예견한 문제작 될까 (종합)”

 - starseoultv.com/news/articleView.html?idxno=433411


***

 - 퓨처에코 86호, 박관희 기자, 2016년 10월 26일 승인, 특집 기획 “노후원전, 폐쇄와 계속운전의 딜레마”

 - ecofuturenetwork.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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