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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Dec 25. 2016

2016년 올해의 영화

마흔두 번째 지난주




게으른 취미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게으름을 들킴이 싫어서였을 게다. 기실 영화감상은 게으른 취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활자만, 소리만, 장면만 주지 않는다. 다 준다. 단 한 끼 식사에 드는 삯으로 편안한 자리에 앉기만 하면, 이야기를 통째로 준다. 나는 객석에 앉아 눈만 껌뻑이고 있으면, 그것이 곧 취미가 되는 작동이라니……. 그래서 이것을 사랑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면,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에 에너지를 덜 들이려는 사람이에요.”라고 고백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천성의 게으름은 점점 더 영화와 놀아나기를 즐겼으며, 몇 해 전부터는 아예 한 해 동안 본 영화의 이름자를 늘여 놓고는 신이 나서 줄을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가관이다. 이런 가관이 없다.


 미시사의 시대를 빌어 취미를 공유하는 일의 타당함에 동조하면서도, 이런 낙서까지 공고함의 오글거림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처럼 무의미한 순위를 나누고자 하는 배경에는 지난 41편의 <지난주> 중 영화와 관련된 글에 많은 사랑을 주신 바를 변명으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지금껏 그 어떤 <지난주>를 작성하던 때 보다 들떠 있다. 후훗.



국내 개봉일이 2016년에 해당하는 작품 중, 필자가 감상한 41개 작품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근거한 것임을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위부터 역순으로 보여드리는 가운데, 3위부터는 짧은 리뷰를 담았습니다.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영화 평가 어플 '왓챠'의 필자 관련 사항









10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감상일 _ 10월 8일

한 줄 평 _ 인생은 고(苦)이다 - 고타마 싯다르타


영화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9

캐롤 (Carol)


감상일 _ 2월 6일

한 줄 평 _ 조물주는 인간 수컷을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영화 <캐롤> 포스터






8

미씽: 사라진 여자 (MISSING)


감상일 _ 12월 3일

한 줄 평 _ 가득 차 있으나 넘치지 않는다.
                 '한국 여성 영화'에서 불필요한 수식어를 걷어낼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수작!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포스터






7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감상일 _ 6월 6일

한 줄 평 _ 시종일관 읊조리다가 어느 순간 쓱 베어서는 뭉클하게 밀고 들어온다. 그러더니 계속 남아 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 포스터






6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SULLY)


감상일 _ 9월 22일

한 줄 평 _ 어떤 장면을 영화화해야겠다는 의식 자체만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묵직함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5

빅쇼트 (The Big Short)


감상일 _ 2월 11일

한 줄 평 _ 충무로가 권력을 등장시켜 사이다나 들이키는 동안,
                 할리우드는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비웃고, 심지어는 뉘우친다.


영화 <빅쇼트> 포스터






4

트럼보 (Trumbo)


감상일 _ 4월 13일

한 줄 평 _ 가장 예술적이며 대중적인 매체가 야만의 시간을 건너는 결정적 순간!
                 부산시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께 간곡히 이 영화를 권함.


영화 <트럼보> 포스터






3

라라랜드 (La La Land)


감상일 _ 12월 13일

한 줄 평 _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 


영화 <라라랜드> 포스터

 

 꿈을 좇음에, 좌절하거나 성취하는 온갖 질곡의 가장 극적인 배경은 단연 할리우드다. 늘어선 차량의 행렬은 좁디좁은 성공의 관문을 향해 일제히 도열해 있다. 형형색색의 색채와 화려한 춤사위는 그 고통의 과정을 건강하게 견뎌내려는 몸부림만 같다. 그런 와중에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나누는 일도 할리우드의 것이나, 이는 비단 할리우드만의 작용은 아니다. 그리하여 <라라랜드>는 장소적 특수성과 군상의 보편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로 인해 너무 넓어진 세계관을 좁히는 시도는 ‘영화에 대한 헌사’로 귀결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할리우드식 영화산업과 그 톱니바퀴에 매달린 꿈들에의 헌사’쯤 되겠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결국에는 꿈을 이루는 주인공의 모습조차, 그리고 지극히 ‘영화에서처럼’ 쓸쓸하게 다가온 이별마저, 오로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이 영화가 이토록 사랑받고 있음은 무언가를 직접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그 마음을 사랑하는 작용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2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감상일 _ 2월 25일

한 줄 평 _ 펜으로 긁어 벽을 쓰러뜨리는 건조함을 빈틈없이 스크린에 담아낸 고밀도의 수작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영화는 공간보다는 주로 시간의 제약 하에 놓인다. 100여 분의 시간 동안 이야기를 전개하는 가운데,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추리고, 비중과 흥미에 따라 얼개를 맞추어나가는 일은 엄청난 지적 노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얼마나 유연하고 밀도 있게 스크린에 담아내었냐에 따라 연출자의 역량이 측정되고는 한다. 그야말로 ‘말이 쉽지’, 상영시간 내내 호흡을 유지하며, 그 어떠한 시간에도 치우침이 없이 균질하게 밀도를 분포시키는 가운데, 관객을 몰입시키는 작용이 수월할 리 만무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그 어려운 것을 가장 또렷하게 해낸다. 여기서 ‘또렷하다’는 표현은 소재 자체의 건조함과도 연관한다. 그저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나 어울릴법한 소재를 스크린에 올리겠다는 의도 앞에 놓였을 자극과 유혹들을 짐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에 대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집중과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일관된 거리의 유지는 일상의 영웅들을 슈퍼맨으로 만들지 않고도, 웅장한 울림을 전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펜으로 긁어 벽을 쓰러뜨리는 기자들의 노력을 빈틈없이 스크린에 담아낸 고밀도의 수작을 만난 기쁨에 한동안 행복했음을 떠올린다.








1

아노말리사 (Anomalisa)


감상일 _ 4월 1일

한 줄 평 _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실종된 시대에 찰리 카우프만의 존재는 찬란한 축복이다!


영화 <아노말리사> 포스터


 타인이 달리 타인이겠나? 자주 인용하는 속담인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한’ 것이 인간일 터라, 타인은 자신에 의해 규정되고, 분류된다. 이 정도면 양반이라 할 수 있을 만치, 대부분의 타인은 아예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타인이 타인이 아닌 유일한 작용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특징으로 규정되지 않고, 속성으로 묶이지 않으며, 결코 잊힐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의 작동은 거의 모든 영화에 등장하지만, 이 우주적 사태만을 조명한 영화의 존재는 알지 못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 영화 <아노말리사> 촬영 장면


 사건이 아닌 인간을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우선 그것은 흔하지 않다. 두 가지 이유를 짐작한다. 만들기에 어렵고, 돈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꾸준히 그것을 시도하는 영화인이 있다. 바로 ‘찰리 카우프만’이다. 단순히 타인의 삶을 엿보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 감정의 작용과 그 변화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리고 이번 작품 <아노말리사>에서는 이를 ‘현대인’과 ‘사랑’으로 한정시켜 더욱 스스로를 옥죄인다. 그런데 단지 소재의 선택과 이야기의 전개만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방법과 과정조차 단연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섬세한 방식을 택했다. 3년간의 제작 기간 동안 1,261개의 얼굴과 1,000개가 넘는 의상과 소품 인형으로 11만 8,089개의 프레임을 이어 붙이는 스톱모션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한다. ¹ 스크린 속에서 그 눈빛들이 아련해질 때마다, 표정만으로 대사를 할 때마다, 몸짓만으로 사랑을 보여줄 때는 특히, 그 어떤 명배우의 명연기보다도 더 몸이 떨려왔다. 세상의 온갖 섬세가 제 몫인 양, 최초의 단면들이 스크린에 수 놓인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만나고 싶다면, 단연 <아노말리사>를 권한다.


*** 영화 <아노말리사> 스틸컷









게으른, 하지만 가장 정돈된 취미


 영화 감상이라는 취미의 게으름에 관한 견해를 유지하면서도, 41편의 작품들이 허락한 고민과 보여준 세상과 펼쳐 보인 섬세에 감사한다. 비록 - 특히, 기대가 컸기에 - 아쉬운 작품들도 몇몇 있었으나, 아쉬움의 연유를 따지는 것조차 모두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감상과 타인의 그것을 나란히 두고 볼 경우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어느덧 장점이 되었다. 어찌 보면, 영화야말로 대중화된 가장 보편의 장르이자, 잘 정돈된 취미 거리이기에 가능한 작용일 것이다. 새해에도 열심히 볼 것이다. 게으르지 않게! 부지런히!


 세상에의 시선을 넓혀준, 41편 작품 모두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

¹

 - 뉴스1스타, 유수경 기자, 2016년 3월 31일 자, “'아노말리사', 가장 인간적인 애니메이션”

 - news1.kr/articles/?2618316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포스터 출처 (일괄 “네이버 영화”(이하 출처 표기), 배치는 무작위)


*

 - 왓챠 2016년 평가 사항

 - https://watcha.net/users/nbemKzjqRqAI/reports/2016


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4856


비밀은 없다 (The Truth Beneath)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5802


곡성(哭聲, THE WAILING)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1051


아가씨 (The Handmaiden)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3519


사울의 아들 (Saul fia, Son of Saul)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9437


크로닉 (Chronic)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9528


서프러제트 (Suffragette)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2131


이레셔널 맨 (Irrational Man)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5434


주토피아 (Zootopia)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0850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0376


우리들 (THE WORLD OF US)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6504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6508


캐롤 (Carol)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962


미씽: 사라진 여자 (MISSING)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2625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6078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SULLY)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495


빅쇼트 (The Big Short)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6842


트럼보 (Trumbo)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0983


라라랜드 (La La Land)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4963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9072


아노말리사 (Anomalisa)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541



아노말리사 관련 이미지

**

 - 감자의 3류 비평, 감자2014, 2016년 3월 21일 작성, “찰리 카우프만과 듀크 존슨이 던지는 사랑에 관한 독특하고 심오한 고찰 - 아노말리사(Anomalisa)

 - gamja-blog.tistory.com/584


***

 - 뉴스1스타, 유수경 기자, 2016년 3월 31일 자, “'아노말리사', 가장 인간적인 애니메이션”

 - news1.kr/articles/?2618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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