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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Jan 22. 2017

질문 없던 7년_설 영화추천 <7년-그들이 없는 언론>

마흔여섯 번째 지난주




어떤 영화의 시작


 세상은 그리 간편하지 않다. 그래서 이 분류는 순전히 이해를 돕고자 함임을 먼저 밝힌다. 착함과 나쁨을 구별 지음에 관한 것이다. 기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를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는 일이겠다. 다만 어떤 행위의 선함과 악함을 구분하는 일은 차라리 좀 더 수월할 지다. 쉽게 접근해본다. 특정한 상황을 가정하여, 누군가가 꺼림칙한 행위를 한다고 상정해보자. 그자가 명민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그것이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들키지 말아야 할 최후의 연결 고리를 끊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똑똑한 나쁜 놈 - 에라 모르겠다 - 이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세상의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이후로도 무려 7년이나 이어진 투쟁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 마흔여섯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는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 대한 리뷰 글이자 추천 글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스포일러에 대한 부담이 적으나, 영화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권한다는 것


 그 장소를 ‘영화관’이라고 부르건, ‘극장’이라고 부르건, 우리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하나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영화가 관객 각자에게 차지하는 총천연색 의미를 모두 들여다볼 수는 없겠으나, 일반적으로 묶을 수 있는 가장 큰 얼개는 ‘문화생활’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라는 문화생활이 주는 효용이라는 방향으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큰 화면과 웅장한 소리가 부여하는 비일상적 쾌감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래서 소위 ‘볼만했다’로 언급되는 평가의 잣대는 ‘볼만 할 것’이라는 기대치를 앞세우며, 무시 못 할 영화관으로의 유인 동기로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이 지극히 보편적인 관람자의 입장에 마주 서서, 소위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것을 권할 때의 머뭇거림이 있다.   


 라틴어 도쿠멘툼(dŏcŭméntum), 즉 ‘교훈’ 혹은 ‘기록’이라는 의미를 그 어원으로 삼는다는 "Documentary"가 대중에게 알려진 시기는 1930년이라 한다.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영화이론가였던 영국의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1898-1972)은 허구적인 극영화와 구분되는 사실적인 기록영화를 '다큐멘터리'라고 명명한다. 오늘날까지도 '보이지 않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현상과 사실에 창조적으로 접근해서 실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그리어슨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는 유효하다. 즉, 다큐멘터리는 기록의 단순한 재구성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 이 둘을 모두 추구하는 장르인 것이다. ¹ 이와 같은 사실을 공유한 채, 머뭇거림을 너머 추천을 시도한다. 





거친 것은 거칠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19명의 언론인이 해고됐다.
그 사이 언론인들은 ‘기레기’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전하며 시작한다. 그 시작부터 ‘기레기’를 논하며, 이 영화의 거친 전개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국한해 보더라도, 이 영화의 예술적 성취는 미미하다. - 이 글은 추천사가 맞다 - 차라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애써 예뻐 보이려 스크린을 다듬지 않으며, 울분은 울분 그대로, 좌절은 좌절하는 모습 그대로, 그렇게 거친 것은 거칠게, 서걱거리며 관객에게 다가간다. 담담하려는 가장의 모습, 예전 취재하던 자료화면, 후배들이 한참 취재하러 나갈 시간에 집회나 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이 영화 특유의 ‘일상 속에 강요된 비일상적 비장미’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다가도, 질문하고, 소리치고, 차 앞에 드러누우며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현장의 메케함 마저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YTN 해직 언론인에 대한 대법원 최종 선고가 있던 날, 다른 공판 관련인의 절규가 메아리쳐 오디오를 공유하던 순간에 있다. 애써 웃어 보이려다, 눈물을 흘리고만 노종면 해직 기자의 모습 뒤로 울려 퍼진…….  그 눈물의 의미는 알 길이 없으나, 빌려온다 하여 전혀 무관할 수 없었던 절규는 이 영화가 마주했던 지난 7년의 거친 시간을 모두 담고 있었다.


* 2015년 10월 서울 상암동 YTN 해직 7년 행사에서 상영된 영화 <7년-그들이 없던 시간> 중, YTN 해직 언론인에 대한 대법원 최종 선고 이후 노종면 앵커의 모습





이상했던 시간의 퍼즐을 맞춰주는 영화


 무언가 이상했다. 그것이 단지 느낌의 수준이건, 미약한 정보나마 접한 바가 있어 이에 기반했건 간에, ‘잘못하고 있다’는 차원 이전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징후들은 현 정부 내내 끊임없이 부양했다. 그렇게 부유하던 징후들은 지난해 가을, 징후를 넘는 증거들이 발견되며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야 입에 담기에는 부끄럽고, 되뇌기에는 치욕스러운 한 시절의 농단을 알아버렸다. 이 거대한 전체는 부분에도 닮음을 선사했다. 그중 언론, 아니 그저 TV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전해진 더없이 이상한 일들의 이유가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퍼즐 조각이 맞춰진 것이다. 굳이 몰라도 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이 온통 엉망진창이었음을…. 그 엉망진창을 더 엉망으로 전달받은 시간에 대해, 이 한 편의 영화가 알려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오보와 사장이라는 자의 기이한 행적, 그리고 사라진 질문들……. 사라진 질문들…….


** 정유신 YTN 기자(해고 뒤 복직, 맨 오른쪽)가 지난해 10월 서울 상암동 YTN 해직 7년 행사에서 김진혁 교수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쏟고 있다.









질문도 함께 사라진 시간, 7년.


 우리는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강의장에서도, 발표회에서도, 회의실에서도…. 우리는 습관처럼 침묵한다. 그 연원을 찾는 기나긴 여정은 뒤로하고, 그럼에도 질문해야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생각한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그 생각을 종용해온다. 그런데 이 생각을 누구보다 먼저 했던 자들이 있었다. 질문할 것 같은 언론인의 입을 미리 닫아버리려는 계책을 일찌감치 실행에 옮긴 자들이 있었다. 그러자 몇몇의 기자들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질문도 사라졌다. 무려 7년이었다. 그 결과,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었다는 기이한 정보에도 질문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주장에도 입을 닫았으며, 지근거리에서 마주한 범죄 용의자 앞에서도 그 누구도 손들지 않았다.


*** 세월호 사고 당일, YTN의 오보 화면

 

**** ‘태블릿PC 흔들기’ 시작한 MBC 보도(12/7)


*****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기자들에게는 수첩과 펜의 반입만이 허용되었다.



 물론 그들이 없던 언론에서도, 꿋꿋이 팽목항을 지키고, 결정적 증거를 수집하며, 세계를 누비며 범죄자를 옥죄인 언론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19명의 해직 언론인도 함께했더라면, 그들의 질문도 함께 외쳐졌다면, 이 치욕의 시절이 훨씬 더 짧았으리라 단언한다. 7년. 이 시간은 해직 언론인의 투쟁의 시간이자, 오늘의 기이한 현실이 조금씩 만들어지던 시간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질문도 사라졌고, 아무도 묻지 않는 권력은 미친 듯 질주했다. 그 미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회복하는 방법이 있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저 이미 그들이 줄곧 외쳐오던…….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명절에 봐야 할 영화가 어디 따로 정해져 있겠나? 시국을 빌미로 어른들을 모시고 갈 수도 있겠다. 기실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스크린 수가 아쉽다. 설 연휴 기간, 몇몇 독립 극장에서의 상영 계획은 확인했으나, 멀티플렉스에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부디, 문화적으로 부역한 시간을 갚는 것이라 생각하고, 좀 틀어 주십사 간곡히 부탁드린다.







참고

¹

 - 오마이스타, 김성수(onomatos), 2004년 7월 13일 자, “참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가벼움”

 - 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197733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네이버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6526


*, **

 - 미디어오늘 스페셜, 김도연 기자, 2016년 3월 27일 자, “해직 언론인 다룬 다큐 외압? “이슈되지 않을까 걱정””

 - special.mediatoday.co.kr/mbc/?p=2171


***

 - 티스토리, Tick Talk님의 블로그

 - YTN 뉴스특보, 2014년 4월 16일

 - madewe.tistory.com/entry/%E2%96%B6%EB%8F%99%EC%98%81%EC%83%81-%ED%8C%BD%EB%AA%A9%ED%95%AD-%EC%A7%84%EB%8F%84-%ED%95%9C%EA%B5%AD%EB%B3%91%EC%9B%90-%EC%95%88%EC%82%B0-%EB%8B%A8%EC%9B%90%EA%B3%A0-%ED%95%99%EC%83%9D-338%EB%AA%85-%EC%A0%84%EC%9B%90%EA%B5%AC%EC%A1%B0-%EC%B9%A8%EB%AA%B0-%EC%82%AC%EA%B3%A0


****

 - 오마이뉴스, 이봉우 기자, 2017년 1월 20일 자, “끝까지 '태블릿PC 흔들기'... 대통령 호위무사 자처한 MBC”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1898


*****

 - 오마이뉴스, [게릴라칼럼] 하성태, 2017년 1월 2일 자, “신년간담회 향한 조국 교수의 일갈 "피의자 박근혜, 변희재 수준"”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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