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번째 지난주
아마도 의심이 들기 시작한 때가 영원을 종용받았을 즈음이라 여긴다. "그런 것은 없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했던 - 혹은 그렇게 여기고 싶었던 - 눈빛에 반(反)하고 싶지 않았던 욕망은 듣고 싶은 기표(記標)만을 뱉었다. 기의(記意)가 있을 리 만무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남의 나라에서, 전하고픈 말들의 갈증만이 내 입속에서 우물거릴 때, 외적 형태마저 못 갖춘 슬픈 기의들……. 그런데 지난주, 어떤 말이 기표도 없이 기의도 없이 흩날렸다 한다. 이 계절의 진눈깨비 마냥……. 기표도 기의도 없는 허망함만이 잠시 흩날리다가는 사라져 갔다 한다.
기표(記標)
> 시니피앙 「명사」『언어』
소쉬르의 기호 이론에서,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외적(外的) 형식을 이르는 말. 말이 소리와 그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로 성립된다고 할 때, 소리를 이른다. ≒기표 04(記標)ㆍ능기 01(能記).
기의(記意)
> 시니피에 「명사」『언어』
소쉬르의 기호 이론에서, 말에 있어서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를 이르는 말. ≒기의02(記意)ㆍ소기10(所記).
¹
이미 손뼉은 모여 있다.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최소한의 기표마저 상실된 음소거의 말들과 함께, 그가 10년 만에 완전히 돌아왔다. 딱히 국내의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직을 능히 수행할 만한 어떤 가능성도 보여 주지 못했던 그가, 기표조차 개의치 않고도 그저 사랑한다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관심을 받는다. 공항의 낯선 공기가 전파를 타고 전해져 왔다.
사태는 가장 가까운 증례를 요구한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여도 답이 정해진 사람들의 선택만이 완고했던 지난 2012년을 떠올린다. 아버지를 회상하며, 뜻 모를 부채의식을 탕감하고자 하는 예정된 선택은 그저 말을 한다는 행위에 열광할 뿐, 듣지 않아도 이미 사모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드디어 천한 것들을 알현하러 오신 우리 공주님을 대하는 태도는, 세계를 지도하시다가 이제 우리의 귀인이 되기 위해 나타나신 그를 대하는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그리하여 가장 슬픈 지경은, 앞선 선택의 명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배경에 의탁한 맹목적 지지가 이루어지는 풍경에 있다. 기표조차 상실한 말들을 덮은 환호가 공항으로부터 메아리를 칠 때, 어떤 시간이 한참이나 더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길함에 몸서리를 쳤다. 추워서였으면 했다.
지난주의 누군가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등장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등장부터 줄곧 하나의 구호를 외쳤다. ‘새 정치’. 그의 지속적인 외침은 그의 신념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새 정치]라고 발음되는 기표 속의 기의를 뚜렷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국문법에 따르자면, 관형사는 뒤의 말과 띄어 써야 한다는데, 노랫말처럼 자꾸 기표만을 읊어대는 통에, ‘새정치’라고 써도 무방할 지경이 되었다. 아니, 어차피 그 의미는 아직도 좀처럼 모르겠으니, ‘새정치’면 어떻고 ‘쇠 정치’ 면 어떤가? ‘새 정취’라고 할까? 당사자나 지지자 일반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물 상자를 열었는데 그것이 텅 비어있었을 때의 마음을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찌 기분만 나쁘고 말겠는가! 상자를 발로 차 버리지 않겠느냔 말이다…….
지난주에 바다 건너 등장한 이도 같은 맥락의 말을 뱉었다. 그것은 기표 상으로 [정치 교체]로 들렸다. 그런데 이는 마치 정치인이 아니던 사람이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새 정치’가 되는 양 외쳤던 앞선 어떤 이의 허망한 기표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의 말들의 수준에 개탄하면서도, 또다시 반복되는 정량화할 수 없는 그럴듯한 말들이 지니는 부정할 수 없는 위력에 한탄했다. 투표소에서 도장을 찍을 때까지만 효력이 있는 말들을 어쩜 그리 잘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진보니 보수니 다 싫다는 사람 모여라!’고 외치며, 동시에 기존의 것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말들이 지닌 당장의 효력과 지속 불가능성을 동시에 바라다본다. 기표마저 필요 없다는 사람들을 헤치고, 겨우 귀 기울여 들어본 기의들마저 여전히 절망을 요구해왔다. 날이 차다.
어떤 삶은 약속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태도는 듣는 이에게 약속에의 이행 여부를 점검할 부담을 주지 않음과 동시에, 당사자 본인에게도 지킬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어찌 보면 효율과 합리의 소산이라 할 만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서도 마치 어떤 약속을 한 것만 같은 인상을 부여한다는 지점에 있다. ‘진보적인 보수주의자’라는 발언을 떠올려 보자. 익숙한 기표가 알듯 모를 듯한 기의를 함의하며, 당장 정치 혐오자들에게는 총애를, 먼 미래에는 실제로 그가 진보적이건 보수적이건 모두 달아날 기회의 문을 열어둔다. 그가 습관처럼 뱉는다는 ‘기회’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기회’가 없으니, 당장은 좋은 때를 기다려 보자는 말처럼 들리지만, 역(逆)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좋은 ‘기회’가 없었다고 빠져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말은 기표와 기의 이전에 태도의 소산 일지다. ‘기름 장어’라는 별명처럼, 그 어떤 확신도 주지 않은 채 빠져나갈 수 있는 말들의 내뱉음이 쉬운 사람을 두고, 삶의 태도와 방식을 의심함이 부당한 처사일까? 내일은 내일의 변명이 준비된 것일까? 그마저도 아니라면,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고 적당히 지지자를 규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당신이 빠져나간 자리에 기표도 기의도 사라진 말들의 허물 앞에서, 우리가 마주할 허무를 떠올려본다. 그런 우리에게는 밀리고 밀린 숱한 과제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정을 농단하는 대통령이 필요 없는 것처럼, 허망함만을 남기고 사라질 대통령 또한 필요 없다. ‘필요 없다’함은 쓸모의 문제일진대, 이미 그가 자신의 쓸모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겨울이 깊다.
참고
¹
- 국립국어원
- ‘시니피앙’ _ stdweb2.korean.go.kr/search/View.jsp
- ‘시니피에’ _stdweb2.korean.go.kr/search/View.jsp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2017년 1월 12일 자, “어린이 안은 반기문”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0112337900013&from=search
*
-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2017년 1월 12일 자, “손 흔드는 반기문”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0112375400013&from=search
**
- 연합뉴스 TV, 2012년 21월 20일 자 대선 특보, “[현장 연결] 박근혜 후보, 광화문 대국민 메시지” 중 화면 캡처
- yonhapnewstv.co.kr/MYH20121220000100038/
***
- 시사IN, 김은지 기자, 2012년 12월 31일 자, “‘올해의 인물’ 안철수, 앞으로 더 빛날 존재감”
- 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5206
****
-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2017년 1월 13일 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귀국 메시지 '정권교체 아닌 정치교체' 무슨 뜻?”
- YTN 뉴스 화면 캡처
- 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1130397g
*****
- 중앙일보 페이스북 계정, 2017년 1월 14일 자, "[반기문 고향 방문] '촛불집회 참석할 계획 있느냐'는 질문에…"
- 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313950755315124&id=155192444524300
******
- 오마이뉴스, 하성태, 게릴라 칼럼, 2017년 1월 13일 자, “반기문, 왜 '기름 장어' 붙었는지 알겠다”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9327&dable=3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