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Apr 16. 2017

사랑이면 좋겠어요 _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리뷰

쉰여덟 번째 지난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하다. 모든 일이…. 이 모든 일이 산수책의 문제들처럼 답이 똑똑 떨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이 낭만의 계절은 초등학교 때까지만 이었던가…. 이후로는 답이 없는 문제들이 더 많았다. 비단 이것이 나의 부족한 수학 능력 탓만은 아닐 지다. 인류의 무수한 노력에도 우리는 아직 정답이 아닌, 미지의 세계에 둘러싸여 사는 때문이겠다. 부득불 미지는 다양한 견해를 파생하고, 상이함으로 인한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때, 어떤 관용구가 불쑥 개입한다. 이 말은 우선 다름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내,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자, 모든 이견은 숨을 죽이고 그 어떤 논쟁도 식어버린 채, 한 곳으로 시선이 모인다. 바로 누군가의 이 외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위험하다. 지난 모든 사태를 불식시키려는 태도 때문이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담고 있는 서사가 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낸다 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전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새로운 주장 간의 거리를 듣는 이가 얼마나 가깝게 인식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지난주>, 한 편의 영화가 한없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쳐왔다. 관객은 영화가 험난한 현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무마하고 지나가려는지, 진짜 본질을 이야기하려는지 궁금해하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마침 영화가 내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뒷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었다. 무려 “사랑”이었다.



※ 쉰여덟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스포일러를 배제하였습니다. 감상 전에 읽으셔도 좋습니다. 아직 개봉 전인 작품을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국가적 재정 파탄과 이민자의 유입 그리고 격화된 충돌 양상은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펼쳐진다. 이민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고, 그리스의 호시절을 견인했거나 누린 세대는 약한 이들을 손쉽게 적으로 간주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는 관용과 베풂의 태도를 거침없이 주장한다. 회사에서는 서릿발 같은 감원이 이어지고, 전통적인 가정은 붕괴의 일로를 맞이한다. 누군가가 옳다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기에도 이미 너무 혼란해져 버린 그리스의 오늘이 카메라를 통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토록 엄중한 지경을 배경으로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이었다. 폐허 속에서도 한 떨기 꽃은 피어난다고 했던가…. 그리스의 사랑은 그렇게 대비의 이미지로 던져졌다.


 어떤 영화는 위로한다. 그전에 위로하려 든다. 어쩔 수 없이, 위로받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이 있을 수 있다. 감상은 각자의 몫이니 논외로 한다. 문제는 위로하는 방식에 있다. 그저 “다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다. 작은 희망의 근거라도 첨부해야 한다. 마침,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사랑”으로 위로하려 하면서도, 나름의 이유를 든다.


*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우리는 각자 다른 얼굴이지만, 사랑에 빠질 때만은 같은 모습이다.” 


 J.K. 시몬스는 세바스찬역을 연기하며 영화의 내레이션도 담당한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정말이지 영화에서만큼은 그리스의 혼란으로 갑작스럽게 만난 ‘각자 다른 얼굴들’이 사랑을 통해 적어도 그 미소만큼은 닮아간다. 그리스 여대생 다프네는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도와주고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아는 시리아 청년 파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회사와 가정 모두에서 위기에 처해 약에 의존하는 그리스인 지오르고는 차갑지만 인간적 매력을 지닌 스웨덴 상사 엘리제를 만나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우연히 마트 앞에서, 독일에서 온 세바스찬을 만난 그리스인 마리아는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았을 사랑에 당황해하면서도 점점 이끌려간다. 이처럼 이들은 분명히 다른 모습이지만, 사랑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며 결국에는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랑의 힘에 대한 진단과 활용에 있어 영화는 무난하게 이를 담아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임을 역설한다.


**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면 괜찮을까?


 쉬운 가치가 있다. 기대기 쉬운 명제들이 있다. 부모를 대상으로 한 효심, 윗사람에 대한 공경과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문제로 삼는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치들이 있다. 이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쉽다는 것이다. 효심이, 공경이 그 자체로 쉽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태도에의 선택지 중 이들을 고르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감히 “사랑”도 이 범주에 넣어둘 만하다고 주장한다. 사랑하지 않는 모든 자에게 유죄 선고를 내린 노희경에 이의를 제기함이다.


 물론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가 총체적 난국에서 자아를 찾는 방식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단초로 사랑을 끌어들임이나, 심지어는 기존의 가치들이 붕괴된 틈을 모두 사랑으로 메우려는 편리한 태도들을 나는 경계한다. 쉽게 갔다는 혐의를 지우기가 힘든 탓이다. 맛없는 빵에 맛있는 잼을 간단히 펴 발라 맛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실체인 빵이 더 맛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리뷰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줘서 좋았다고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낭만적이다. 너무 낭만적이기만 세상은 너무 거대한 거짓말만 같아서, 나는 믿지 않으련다. 하지만 ‘사랑 만능주의’만을 꼬집다가는 이 영화를 두고 한 마디도 진전된 논의가 가능할 수 없겠다. 그래서 질문의 방향을 틀어본다. 각자 다를 수 있는 “사랑”의 영향력에 대한 인지를 차치한다면, 대체 이 영화는 왜 "사랑"을 끌어들이는가? 어째서 "사랑"이어야만 했던가?


***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사실 영화는 답변하고 있다. 그 답변의 근거는 그리스로 향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판 제목 <나의 사랑, 그리스>도 간신히 나쁜 제목의 혐의에서 벗어난다. 낭만과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그리스 신화가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커플인 에로스와 프시케를 내세운다. 온갖 역경을 겪어낸 이 둘은 결국 사랑을 이룬다. 영화는 세바스찬의 목소리를 빌려 반복적으로 신화적 배경을 역설한다. 신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는데, 에로스는 연인 간의 사랑을, 아가페는 부모 자식의 사랑을, 필리아는 우정을 상징한다. ¹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에로스를 중심으로 이 모든 사랑의 국면을 소상히 짚어나간다. 그리스라는 국경을 벗어난 사랑에 대한 성찰은 그리스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며, 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영화가 “사랑”을 내세움은 그 만능에 기대기 위함이었다기보다는, 이 위기에 오래된 그리스다움 중에서도 사랑의 가치가 복기할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가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의 곤란한 지경임에도 사랑은 의미를 지닐 수 없는가? 그리고 그리스 신화까지 가져와야 하는 사랑이라면…, 무너진 일상과 생활에서는 비빌 언덕을 잃은 사랑이라면, 이것이 과연 위로가 될까?


 위로만치 어려운 것이 없다. 그저 “역시 사랑이다!”는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사랑이면 좋겠어요


 사랑은 보편적인 가치이다. 특히 사랑은 고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휘한다. 그리고 영화 속 대사처럼,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굳이 그리스에 국한하여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리스적인 것은 그리스적인 것이고, 마침 영화의 배경으로 좋았을 게다.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자가 고뇌에 빠져야 하는 순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유리한 배경이 존재한다는 입지 그 자체 말이다. 배경 덕에 쉽게 끼워진 단추를 기준으로 천을 덧대어 옷을 짓기는 수월하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 기적과 같이 나에게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영화에서는 멋들어진 이성이 꿈처럼 다가오지만, 우리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감히 사랑 따위를 꿈꿀 수가 없다. 이것이 필자가 지닌 사랑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의 발로임을 부정하지도 않겠지만, 사랑은커녕 일상의 행복 앞에서도 일제히 움츠린 지경에서 난데없이 펼쳐진 사랑의 향연 앞에 나는 좀 갸웃거렸다. 나도 다 사랑이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겠다.


****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참고


¹

 -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문화칼럼, <유진모의 무비&철학>, “‘나의 사랑, 그리스’,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이란?”

 - mediaf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6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네이버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7896  


*, **, ***, ****

 - IMDb, Photo Gallery <Enas Allos Kosmos (2015)>

 - imdb.com/title/tt3909336/mediaindex?ref_=tt_pv_mi_sm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슬로운'은 없다. _ 영화 <미스 슬로운>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