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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Apr 30. 2017

이름을 찾는 영화들 _ 연휴 영화 추천

예순 번째 지난주




이름과 발견, 그리고 영화


 재론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름’에 관해 논하자면 언필칭 김춘수의 <꽃>만이 명명백백한 지위를 점한 탓이다. 어찌하겠나, 그 시가 본질을 꿰뚫고서는 가부좌를 틀어 앉아 물러날 생각이 없는데…. 좋다. 받기로 한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존재가 꽃이 되는 작용의 근거는 단지 호명(呼名)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름을 부른다는 행위는 대상을 기표(記標)로써 단순히 발음(發音)하였음이 아니라, 존재를 발견(發見)하였음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밥을 먹고, 일하며, 심지어 살아가거나 사랑함은 모두 존재를 발견하거나 발견당하고픈 욕망에 근거하는지도 모르겠다. 욕망을 카메라에 담아 스크린에 투사하는 매체인 영화는 진즉부터 그 사실을 알아채고, 끊임없이 이름을 찾아 호명하고, 발견하였다가는 또 뜨겁기도 하였다. 긴 연휴의 시작이다. 분명 말미가 조금은 더 날 것이다. 마침 이름을 찾는 영화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같이 봤음 직하여, 하나씩 그 이름자를 불러본다.


※ 예순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특별시민>, <파운더>, <언노운 걸>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글은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추천을 목적으로 작성되어, 스포일러는 배제하였습니다. 부담 없이 읽으셔도 좋습니다.









서울시장의 이름을 찾는 <특별시민>


 영화 <특별시민>이 찾는 이름은 서울시장의 이름이다. 그것이 최민식이 분한 변종구이건 라미란이 연기한 양진주이건, 영화는 그 이름의 주인공이 정해지면 결말이 날 구조다.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할 이 전개에 긴장을 불어넣는 시도의 투입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처럼 약속된 틀을 제시하고 시작되었음에도 그 여정이 제법 너저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회라는 테두리 내에서 정치라는 행위의 장을 펼쳐놓았을 때, 일반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가려진 세계에서 벌어질 법한 온갖 사태가 일제히 진열되는 탓이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이미지


 영화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려진 세계의 뒤편을 비추는 일은 동의나 지지의 차원 이전에, 영화라는 장르의 소명 중 하나로 으레 그렇게 작동해 왔다. 그럼에도 <특별시민>에서 보여주는 사건들은 소위 음모론의 영역에서 한 번쯤은 언급되었을 법한 모든 종류의 사태가 등장함에 따라, 서울시장이라는 이름을 쫓는 인물 내면에의 탐구보다는 사건 그 자체를 중심에 놓고 만다. 이와 같은 감상의 지점에서, 심은경이 맡은 박경을 주목한다. 광고회사 출신인 박경은 우연히 변종구 캠프에 발탁된 이후, 기존의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메시지가 분명한 선거 광고를 제작한다. 영화 <특별시민>도 박경의 광고처럼, 빼고 덜어내는 힘을 발휘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음은 어쩔 수 없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이미지


 그리하여 가장 아픈 사실은 이 영화를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의 연휴에 관람해야 할 가장 유의미한 근거가 시의성(時宜性)이라는 사실이다. 뉴스보다 피곤하리만치 다양한 긴장의 나열은 무려 대선이라는 엄중한 선택을 앞둔 우리에게 흥미로운 상상력의 자극제 역할만큼은 능히 해낸다. 흥미 자체에만 주목하자면, 부족함은 전혀 없다. 소위 “볼만한”의 잣대에서 저평가받을 작품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 이제는 주름까지 연기하는 경지에 이른 최민식의 표정들을 곱씹어 보는 일은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이루어짐이 합당하다고 단언한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이미지


 노파심에 사설을 거든다. 마지막으로 주의했음 직한 사항이 있어서다. 혹시라도 “정치인은 다 똑같잖아!”, “무언가 구린 것들을 뒤에 틀어쥐고 있을 거야!”라는 신념을 지닌 분들, 그러니까 뉴스와 영화를 분리해서 볼 자신이 없는 분께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굳이 스트레스만 더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세계 최고 프랜차이즈 업체의 이름을 찾는 <파운더>


 원하는 것을 얻는, 아니 차지하려는 적극성에는 개인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일상의 영역에서는 그다지 유의미한 차이의 정도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훗날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할라치면, 그 열정과 끈기가 남달라야 할 것이다. 1954년 미국에 바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직감한 모양이다. 이토록 새로운 레스토랑은 더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확신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신념대로 움직였고, 결국 오늘날 당신이 있는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황금색의 아치를 두른 햄버거 가게를 선사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맥도날드’ 이야기이다.


영화 <파운더> 스틸 이미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은 늘 필요하고, 도움의 과정에서 일방의 적극성에 따라 일은 더 수월하게 진전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배경의 이름이 ‘자본주의’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아니, 어쩌면 더 구체적이 된다. 서로의 욕망을 더 잘 구현하는 쪽이 금액으로 환산된 이름의 지분을 더 가져가는 구조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레이 크록은 끈기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확신을 올곧게 밀어붙인다. 그리고 숫자들을 대입하는 과정에서 예정된 충돌이 발생한다. 모든 전개는 실화에 근거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알려진들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이미 우리에게 맥도날드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이라, 특별히 그 이름을 불러서 존재가 부각되기에는 이미 인지의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지점에서 추천에의 명분을 확보할까?


영화 <파운더> 스틸 이미지


 연휴가 긴 것 같지만, 금세 우리는 일터로 향할 것이다. 습관처럼 하던 일을 이어가겠지만, 누군가는 일이 아닌, 이름을 차지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또 그럴만한 욕망과 끈기에 대한 확신으로 이름을 찾아다닐 것이다. 우리 또한 영화 속 인물만치 돋보이는 의지와 자기 확신을 지니고 있지는 않겠으나, 분명 뺏고 뺏기는 이름의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마침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만든 이’와 ‘성장시킨 이’ 간의 긴장을 담고 있다. 그리고 <파운더>는 질문을 던진다.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누가 차지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기쁘거나 슬픈가? 혹은 불편하거나 통쾌한가? 좋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나는 일은 굉장한 축복이다.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파운더>는 충분히 권할만하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파운더>를 감상한 이후 당신이 맥도날드로 가고 싶은지, 여타의 햄버거 가게로 가고 싶은지는 제법 그럴듯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죽은 소녀의 이름을 찾는 <언노운 걸>


 어떤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박혀서 서걱거리는 통에 좀처럼 그 무슨 일도 손에 잡을 수 없음은 물론, 인생의 행방마저 틀어놓기도 한다. 예삿일이 아니다. 마음에 짐 진 바라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마침 병원 진료시간이 한 시간이 더 지난 때에 울린 초인종 소리를 외면한 의사는 다음 날 시신이 되어 돌아온 소녀를 위해, 그의 이름을 찾아 나선다. 보통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주인공은 대개 범인을 쫓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노운 걸>의 주인공인 의사 제니는 죽은 소녀의 이름을 쫓는다. 묘비에라도 남겨야 가족이 와서 찾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영화 <언노운 걸> 스틸 이미지


 서울시장을 바라거나 세계 제일의 프랜차이즈를 꿈꾸지는 않는 우리에게는 이름을 찾을 일이 없을까? 영화 <언노운 걸>은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갑자기 관입하는 ‘이름 찾기’, 즉 ‘존재의 발견’이라는 숙제가 얼마든지, 그 누구에게든 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건 좋은 연구소로의 이직을 앞둔 의사에게 그날 밤의 초인종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남의 일’이라는 시선으로는 다소 기이해 보일 정도로, 제니의 소녀 이름 찾기는 포기를 모른다. 그 과정에서 제니 개인의 수치심이나 부채의식은 병원이 자리한 마을, 즉 공동체와 마주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노운 걸>을 관람해야만 할 명분이 구축된다.


영화 <언노운 걸> 스틸 이미지


 비록 작은 세계일지라도 이전까지 각자의 세계에서 안전하게 존재하던 경계에, 어떤 사소함이 금을 내고, 또 누군가가 그사이를 지나다니려 하면, 공동체는 처음 쓰는 근육처럼 당황스럽게 수축한다. 이 같은 최초의 접근과 음습함을 들추려는 시도는 굳이 직접적으로 사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공동체에도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가 밝히고 싶었고, 들어 올리고 싶었으며, 찾고 싶은 이름과 존재들, 그리고 그 발견을 불편해하거나 방해하던 시도들이 영화 <언노운 걸>의 모습들과 멀게나마 대구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주히 홀로 이름을 찾아가는 제니의 모습을 통해, 선한 인간의 선한 의지가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이 연휴 때 단 한 편의 영화를 볼 시간만이 있다면, 단연 <언노운 걸>을 권한다. 우리에게도 찾아야 할 많은 이름이 있고, 이는 오롯이 공동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축제로 떠나는 여행


 발견당하면 좋다. 누군가가 갑자기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그 사람뿐만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데, 그토록 기쁜 일은 먼저 해도 좋지 않겠나!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호명하여 세상에서 또렷한 존재로 새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다. 마침 우리는 영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도 빼어나지만, 더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발견의 근육을 단련하고 싶다면, 연휴 기간에 열리는 영화의 축제를 권해본다.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는 확인해본바, 아직 예매 가능한 작품들이 있다. (4월 30일 18시 현재) 이름을 찾아 존재를 발견하는 영화의 세계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연휴를 맞아 전주로의 여행을 권해본다. 아무쪼록 즐거운 연휴가 되시길!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www.jiff.or.kr/index.asp?mode=hide





이미지 출처


<특별시민> 

- 네이버 영화, <특별시민>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6485


<파운더> 관련 이미지

- 네이버 영화, <파운더>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7976


<언노운 걸> 관련 이미지

- 네이버 영화, <언노운 걸>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0372


<전주국제영화제>

-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공지사항, 2017년 3월 2일 자,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공개!”

- jiff.or.kr/community/notice_view.asp?BD_IDX=1500&PAGE=3&SCH_GUBUN=all&SCH_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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