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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Jun 04. 2017

당신은 누군가의 제인입니까? _영화 <꿈의 제인> 리뷰

예순다섯 번째 지난주




꿈에 관한 단상


 꼭 쥐고 있다가 가장 마지막 순간에,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위안이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지만, 달아날 곳이 없는 슬픔의 한복판에 선 사람이 내 입을 바라다볼 적에는 최후이자, 나름 최선의 발언으로 내뱉어진다. 


“다 꿈일지 모른다….”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배가 기울 적에, 심지어는 유난히 일어나기 힘든 아침에도 그 생각을 하였다. 꿈처럼 깨어나기만 하면, 이 고난이 다 끝나 있기를 바람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개봉한 한 편의 영화는 나와는 반대의 작동으로 꿈을 꾸었다. 그러니까 힘든 현실을 꿈에 담아 손쉽게 내던짐이 아닌, 꿈에서나마 이 고난이 위로받기를 바라며, 그 꿈같은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얼마나 포근하게 살아왔으면, 순간의 고통을 꿈처럼 흘려버리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것인가! 어떤 이들은 잠시 꾸는 꿈속에서만이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을……. 영화 <꿈의 제인>은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만은 없는 타인, 이른바 소수자라 불리는 외면당한 사람들의 꿈속으로 우리를 이끌며 다가왔다.



※ 예순다섯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꿈의 제인>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 <꿈의 제인> 리뷰 글로서,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영화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읽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꿈의 제인>을 감상하는 세 가지 시선


 반가운 영화다. 그리고 고마운 영화다. <꿈의 제인>은 쉽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쉽게 갈 수도 있었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병렬식으로 나열하고, 으레 찾아오는 영화적 순간들에 잔잔한 배경음악과 회상 신을 희뿌옇게 삽입하면, 그 자체로 영화적 구색을 갖출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꿈의 제인>은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도리어 더 고민했다. 쉽게 답을 주는가 싶더니 이내 달아나고 또 너무 멀리 가나 했더니 이내 다가와 있다. 마치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형상이 다르게 보이는 홀로그램을 보이는 것만 같았다. 따라서 <꿈의 제인>은 하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곧, 구분이 필요하겠다.






첫 번째 시선 _ 두 가지 별개의 이야기


 <꿈의 제인>을 바라보는 시선 중 첫 번째는 제인(구교환 분) 팸에서의 이야기와 병욱(이석형 분) 팸 이야기를 분리하여 바라봄이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두 가지 이야기는 뚝 하고 잘리기도 하는 탓이다. 출연진은 대부분 중복되지만, 제인 팸에서 분명히 함께 생활했던 이들이 병욱 팸에도 등장했을 때, 마치 처음 본 사람들처럼 서로를 대하는 표정과 분위기는 이 같은 감상법을 취한 사람들이 충분히 근거로 내세울 만한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이 같은 관람 태도를 견지하려 하지 않는 한, 러닝타임이 진행될수록 두 사건 간의 연계를 따져보지 않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분명 가능은 한, 첫 번째 시선을 따라 <꿈의 제인>을 쫓아가 본다.


*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제인 팸과 병욱 팸


 두 사건을 분리하면 그 성격이 상이함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모든 등장인물이 사회의 주류로부터 이탈한 혹은 밀려난 존재들이라는 공통분모 이외에는 살아가는 모습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제인 팸은 각자의 슬픔을 다독이며 서로를 위하며 살아간다. 이는 팸을 이끄는 제인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를테면, 업소에서 미러볼을 떼 와서는 집에서 함께 춤을 추거나, “사람은 4명인데, 이렇게 케이크가 3조각만 남으면 말이야,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차라리 다 안 먹고 말지.”라는 제인의 대사를 통해 함께 연대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식이다. 반면, 병욱 팸에서의 생활은 제인 팸에 비하자면 참혹하기 그지없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끔찍한 일에 뛰어든다든가, 돈이 없어졌다며 심리적 압박을 가함은 물론, 밤마다 술을 마시거나, 서로의 과거를 강압적으로 캐묻기도 한다. 이와 같은 대립의 차원에서만 <꿈의 제인>을 감상하자면 사회의 구석진 곳에 카메라를 가져가되, 이편과 저편을 모두 담으려 했다는 성과에만 머물게 된다. 하지만 관객들이 이 둘을 애써 구분하기는 도리어 더 어렵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 시간상으로 우선하는지, 두 이야기가 어떤 연관성 상에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부유하게끔 <꿈의 제인>이 부단하게도 이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선 _ 모두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


 두 이야기를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기가 힘들다면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다. 집을 나온 소녀 소현(이민지 분)은 정호(이학주 분) 오빠와 모텔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밤새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 정호에의 분노와 좌절은 극단적 선택으로 소현을 몰아세운다. 그런데 이때, 정호와 같은 바에서 일하며 소현과 일면식이 있던 제인이 들어와 소현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소현은 제인의 팸이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부정당하며 시작된 정체성과 이를 믿고 싶지 않아하는 시선들의 세상에서 늘 불행을 전가받아온 제인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러자 소현은 병욱이 이끄는 팸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지만, 소수 집단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폭력적 행태 속에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 소현의 나레이션은 영화의 이야기를 한데 엮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상이 <꿈의 제인>을 상영되는 순서 그대로 바라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와 같이 바라보아도 이해에의 어려움은 없다. 두 이야기를 따로 떼어놓는 감상에서는 각각의 사건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면,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보면 인물, 즉 소현에게 비중이 몰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섬세한 시선으로의 감상은 가능하다. 바로 두 세계를 이으며 나지막이 읊조리는 소현의 편지, 즉 내레이션 덕분이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누군가가 그랬어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래요”라는 말은 소현이 병욱 팸에서 겪은 아픔을 지난 제인 팸에서의 회상을 통해 환기하며, 이제는 세상을 떠난 제인에게 편지로 전달함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출 소녀의 험하디험한 역정으로만 감상을 한정시키기에는 어딘가 허전하다. 그리하여 다시 스크린을 바라본다.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꿈과 현실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소현을 향한 제인의 존재가 소현에게 간간이 뿌려진 행복이었다면…….





세 번째 시선 _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


 세 번째 시선은 소현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꿈이 시작된다. 꿈에서 제인을 만난다. 언젠가 ‘unhappy’라는 도장을 찍어주며, ‘뉴 월드’로의 출입을 허락했던 바로 그 제인이 노래하기 전 사람들에게 전한 말을 자기식으로 옮겨, 편지로 써 내려간다. 이 지점에서 제인과 소현이 그 정도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닮아있는 불행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자 소현의 꿈은 오롯이 병욱 팸에서 자신이 겪었던 모습들이 반대 혹은 그대로 투영된다. 꿈은 현실을 반대로 비추기도, 그대로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제인은 그저 "돌아왔구나"라며 소현의 꿈 속으로 들어온다.


 강압적이고 기형적인 공동체 생활의 병욱 팸의 모습은 서로를 위하는 따스함으로, 끔찍한 방식으로까지 생활비를 충당하던 행태는 "지겹도록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니 지금은 그러지 말라"는 조언으로 반전되어 전해진다. 하지만, 소현 자신처럼 제인도 정호를 좋아했다던가, 지수(이주영 분)가 그러하였듯 제인도 결국 추락으로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 그리고 반복적인 죽음들이 땅에 묻히는 귀결로 매듭지음은 모두 꿈과 현실이 같은 양태로 그려짐이다. 이렇듯 소현에게 있어 병욱 팸에서 겪은 끔찍한 일련의 사건들은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단 한 사람 제인으로 발현되지만, “행복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쭉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라는 제인의 대사처럼 그 짧은 수명을 이내 다하고는 만다. 너무나 일찍 불행을 알아버린 소현에게 “손 좀 줘봐”라며 다가온 제인이 소현의 꿈에 나타나 잠깐이나마 짧은 행복을 전하며 소현을 위로하는 것이다. 결국,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로 바라보면, 고난과 위안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아니, 확장한다기보다는 깊어진다. 소현의 깊은 꿈처럼…….






반갑고도 고마운 영화 <꿈의 제인>


 반복이 되어버리겠지만, 다시 주지하고 싶다. <꿈의 제인>은 반갑고도 고마운 영화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배우들의 연기는 반갑다. 이들은 비록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는 아니지만, 관객을 어느 이름 모를 모텔방과 금붕어 죽은 어항의 냄새가 나는 원룸과 이태원의 뒷골목으로 아무렇게나 데리고 다닌다. 이는 섬세한 감정선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전해온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쯤 되니 반가움을 너머, 염려스럽게까지 했다. 이제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새로운 얼굴들에 연기가 좋다는 찬사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도리어 이 못지않게 연기를 해낼 수 있는 연기자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이 차올랐다. 기우이기를 바란다.


**** <꿈의 제인> 기자간담회


 또한, 고마웠다. 다양한 시선을 가능하게 하는 연출에 관함이다. 감독의 의도는 세 번째 시선이리라 감히 짐작해 보지만, 당신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건 틀린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꿈의 제인>의 탁월성이 있다. 꿈을 전면에 내세움에도 누구도 잠들거나 놀라며 깨어나지 않는다. 모든 장면은 적당히 몽환적이고, 적절히 역동적이다. 장면들은 분명히 이어지지만 쉽게 구분되지 않고, 다른 이야기이지만 또 한 궤로 엮인다. 카메라는 그저 관찰한다. 그리하여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애써 나누지 않는다. 마치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그렇게 <꿈의 제인>은 꿈이라는 모티브에 더없이 충실하다. 엔딩크래딧이 올라갈 때쯤에야 각자의 시선에 근거한 이야기가 완성되게 하였다. 고마울 정도로 고민을 많이 한 연출이라 확신한다. 또한, 소수자를 등장시키면서도 통속적인 문제에 매몰되지 않으며, 인간의 불행과 할 수 있는 만큼의 위로를 이토록 섬세하고 세련되게 담아내었음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당신은 누군가의 제인입니까?


 소현의 불행은 사람들로부터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어디에도 함께하지 못하고 내쳐지거나, 이용당하는 관계에서 소현은 너무 일찍 불행을 알아버렸다.


“방법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같이 있을 수 있는지”

 - 영화 <꿈의 제인> 중 소현의 대사

 

 그런데 이와 같은 소현의 고민과 문제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는 분명 조금씩은 소현이다. 인간에게 상처받고, 그러면서도 내쳐지지 않으려 시선의 밖에서는 발버둥 치는 그런 ‘소현들’이다. 이런 ‘소현들’의 불행에 특별한 위로가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언제나 관계로 상처받지만, 결코 이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불행 앞에 홀연히 구원처럼 제인이 나타난다. 제인은 자신이 더 큰 불행으로 상처 입었음에도 ‘소현들’을 받아 안는다.


“난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이 이어지는데, 행복은 요만큼. 아주 조금. 올까 말까 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힘든 인생, 혼자 살아 뭐하겠어. 이왕이면 다 같이 사는 게 좋지.” 

“사람은 4명인데, 이렇게 케이크가 3조각만 남으면 말이야,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차라리 다 안 먹고 말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  영화 <꿈의 제인> 중 제인의 대사


 제인은 인생이 시시하여 우리를 불행하게 할지라도, 서로를 보듬으며 시시하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자고 말한다. 제인은 그 어떤 어른보다도 선명하고 실천할 수 있으며, 반드시 우리가 놓아서는 안 될 가치를 담담하게 전한다. 이토록 분명한 위로는 확장하는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당신 앞에 꿈처럼 제인이 나타나기를 바라기보다는, 당신이 제인이 될 수 있겠는가를 물어오는 것이다. 나도 불행하지만, 역시 불행한 타인을 끌어안는 제인이 될 수 있을지를 먼 질문으로 던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소현임과 동시에, 제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제인일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꿈속에서 내가 제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영화관을 나선다.


***** 영화 <꿈의 제인> 스틸이미지



본문 중 영화 대사 참고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강병진, 2016년 10월 27일 자,
    “영화 '꿈의 제인' - 어느 트랜스젠더의 한 마디는 10대 소녀에게 용기가 되었다”

 - huffingtonpost.kr/2016/10/26/story_n_12665476.html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네이버 영화 <꿈의 제인> 항목 중 포스터 이미지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980


*(하단), **, ***, *****

 - 네이버 영화 <꿈의 제인> 항목 포토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980


*(상단)

 - 영화 <꿈의 제인> 메인 예고편 중 화면 캡처

 - movie.naver.com/movie/bi/mi/media.nhn?code=154980


****

 - 직샷 닷컴, 2017년 5월 19일 자,
    “‘꿈의 제인’, 기자간담회 성황리 개최…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다니...”

 - zigshot.com/bbs/board.php?bo_table=news_hd&wr_id=9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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