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라는 교훈

여든한 번째 지난주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다짐


서점 매대에는 행복들이 누워있어, 그것은 부동산이거나, 주식이거나, 영어라든가, 처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몇몇은 직접 행복을 명시하기도 하였다. 몇 권을 들었다가 놓았으나 미진한 문해력 탓인지, 활자들은 여전히 활자로만 남았다. 세태를 담아낸 글들을 나무라고자 함이 아니다. 본디 각자의 행복은 각자의 것이라, 오만가지 모습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행복에 관하여는 단호할 수 없겠다. 다만 불행해지지 않는 한 가지 왕도는 어찌어찌하여 알아채었다. 바로,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잘 안 된다. 이 사실을 마음에 담고서도 몇 번이나 더 기대할만한 타인을 찾아 헤매었다. 실망을 통해서만 새 얼굴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예정된 실패로 달려가지 않으면, 기대치를 높이는 식으로 패배를 종용하기도 하였다. 지난주, 하나의 기대가 꼭 5년이 지났음을 굳이 알게 되었다. 그 존재는 곧 하나의 사람이었는데, 단지 한 명의 유명인사로만 읽을 수도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마저 그를 응시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기대의 시간으로부터 다섯 해가 지났고,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다지 기념할만한 날이라든가 햇수가 아님에도 굳이 이 시간을 되새김은 오롯이 “어쩌다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분명 이렇게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에게 그는 희망이라는 이름이었다.









그 많던 희망은 “어쩌다가” 다 사라져 버렸을까?


참신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5년 전 어느 날, 그가 기성 정치인의 세련된 스타일이 아닌 귀를 덮는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서는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권 도전을 선언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비록 실체는 뚜렷하지 않았으나, ‘그간 없던 존재’였음에는 틀림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눈과 귀가 그에게로 쏠렸다. 거기에다 그의 학벌은 지적인 면모를, 기업가로서의 행보는 유능함을, 애써 개발한 서비스를 무료로 배포함은 공익을 염두에 둘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심지어 선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지니는 특유의 엄중함 이전에, 일단 보이고 들리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대중에게 단연 희망으로 대체될 만하였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길지도 않은 시간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도전과 양보, 공동대표직과 탈당, 창당과 성공적인 총선에 이은 대선 패배, 그리고 다시 공당의 대표가 되었다. 그런데 많던 우여곡절 때문인지 5년 전 정치에 입문하고 대권에 도전하던 그의 모습을 지금의 그에게서 찾는 일은 이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역으로 그는 그 누구보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얼굴하고 있다. 빈약한 논리로 정부에 각을 세우기만 하거나, 어색한 표정으로 시장을 서성이며 낯설어하는 시민들의 표정 사이를 유령처럼 떠다니는 그를 볼작시면, 물음 하나가 부유한다. “어쩌다가” 이리된 것일까? 그 많던 희망은 “어쩌다가” 다 사라져 버렸을까? 이와 관련하여 몇몇 이들의 견해를 들은 바 있다. 본래 그런 사람이라는 주장 이 나라의 정치판이 괜찮은 인물을 망쳐놓았다는 반론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딱히 어떤 의견에 손을 들지 못하는 비겁함에 용서를 구한다. 왜냐하면, 그 어느 쪽이 정답이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안철수라는 교훈


거대한 착시


본래부터 그다지 주목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안철수라는 인물에 관한 정보를 미디어가 전하는 통로로만 전달받았다. 그 방식에 거짓이 있었다기보다는 편집에 따른 왜곡이 있었을 수는 있겠다. 곧 이미지 정치의 대표적인 실례가 안철수 대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미지가 아닌 정치가 어디 있으랴. 그는 언론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고, 대중의 바람과도 잘 맞아떨어졌을 뿐이었다. 다만 본래부터 적절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위의 견해에 기대자면, 아픈 마음은 그가 아닌 우리를 바라보며 일어난다. 우리의 착시는 그 어디까지 거대해질 수 있나? 우리의 희망은 왜 이토록 공허한가?


앞서 썼던 문장을 옮겨본다. “그의 학벌은 지적인 면모를, 기업가로서의 행보는 유능함을, 애써 개발한 서비스를 무료로 배포함은 공익을 염두에 둘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심지어 선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음에도 서울시장 혹은 대통령에 곧바로 도전할 수 있을 만치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나 또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청춘콘서트의 그 긴 줄 어딘가에 설 것만 같다. 이토록 완벽한 조건으로 비추어진 존재를 제대로 못 알아보았다고 하여 지나친 아픔을 느끼는 일도 참 부질없겠거니 싶다. 또한, 개인의 각성에 비해 집단의 그것은 속도가 느린 법일 터이니 우리가 그에 대한 희망을 오래 잡고 있었다는 책망에 너무 빠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저 교훈이었으면 한다. 안철수라는 이름은 '잠깐의 희망같은 것'에서, '영원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 온갖 "그럴듯함"으로 무장한 존재에 쉽게 기대하기보다는, 어렵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명징한 교훈이어야 한다.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부터 달아날 것


다시 최초의 질문 “어쩌다가?”로 돌아간다. 그중 그가 본래부터 정치적 역량이 미진한 사람은 아니며, 단지 우리의 정치 현실이 의욕으로 충만했던 정치 신인을 이렇게까지 전형적인 인물로 만들었다는 주장에 기대어 본다. 이 견해를 받잡자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숙제가 주어진다. 하나는 이 땅의 정치판이라는 것을 온전하게 돌려놓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안철수라는 불운했던 가능성을 다시 바르게 세워놓는 일이 되겠다. 이중 첫 번째 과업은 당장에 이루기에도, 그리고 본 장에서 언급하기에도 너무 거대한 논의가 되는 탓으로 접어둔다. 그렇다면 본래는 희망을 의탁할만했던 그를 어떻게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이 남는다.


살다 보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들은 부지기수이다. 흔히 그것은 우리의 외부로부터 온다고 여기기 쉬우나, 의외로 결정적인 태클은 나로부터 기인하고는 한다. 나에게서 온 나의 적 중 가장 무서운 상대는 다름 아닌 “가장 좋았던 기억”이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고,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분명 그 시간은 나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다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서, 그 시간의 기억은 쉬 다시 돌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환상을 심어주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쉽게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탓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들도 놓쳐버리게 된다. 이 한 장의 사진을 보자.


* 2011년 6월 29일에 대전에서 열린 청춘콘서트 현장


조심스럽다. 추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언제든 자신은 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흘렀고, 그도 예전의 그가 아니며, 결정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영광된 순간의 절정이 저 사진 속 장면과 닮아 있다 할지라도, 지금의 행보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리하여 안 대표가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면,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저 기억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해야 한다. 그리고 화려했던 기억에서는 벗어나되 단 하나, 저 순간이 어찌하여 그에게 다가왔는지는 반드시 복기하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때와름을 알아챌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 그가 교훈을 얻을 차례이나,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역시 모르겠다.









희망의 부스러기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

¹


다시 그가 최초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던 5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는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다는 유명한 발언을 인용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이 내세운 ‘새정치’가 미래임을, 그리고 아직 널리 퍼져있지 않음을 역설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미래에서 다시 저 인용을 생각한다. 모호함으로 공박받던 ‘새정치’리 퍼지긴 커녕, 언제부턴가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다. 물론 그가 설정한 미래로 5년은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이한 유사 정부를 지나느라 시간을 허비한 탓으로, 특정 정치인의 아이디어를 마냥 기다려 줄 수가 없다. 그가 본래부터 정치인으로서는 부적합한 인물이었건, 혹은 우리의 정치 현실이 미흡하였건, 우리는 바쁘다. 그가 어떤 식으로 건 분전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현재 그의 위치이다.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40석의 국회의원을 지닌 공당의 대표라는 현실"이 그것이다. 다당제를 주창하는 안 대표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건, 엉겁결에 얻어걸린 상황이건 국민의당이 결정적인 위치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저 정부에 각을 세워 본인의 이름자를 확인하기보다는 자신과 소속 정당이 생각하는 미래를 분명히 하고, 그 미래가 널리 퍼질 선택을 해주기를 감히 당부한다.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었지만, 단호했던 그를 기억한다. 정치인이 아닌 멘토 안철수로 돌아가 그간의 5년을 단 한 번만 돌아보기를 또한 감히 바란다. 이뿐이다. 차마 더 이상의 희망은 품지 못하겠다.







참고

¹

- 조선닷컴, 한상혁 기자, 2012년 9월 19일 자, “안철수가 좋아한다는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누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9/2012091901748.html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한국일보, 손용석 기자, 2014년 9월 18일 자, “안철수, '롤러코스터' 정계 입문 2년”

- http://www.hankookilbo.com/v/7b4c2197ef52474ba9390ed5432087a4


*

- AhnLab 보안세상, 안랩人side/안철수 창업자, 2011년 10월 13일 자, “안철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 http://blogsabo.ahnlab.com/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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