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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Oct 01. 2017

거울의 영화_추석 영화추천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여든두 번째 지난주




스크린이 거울이라면


 조금 멀리 간다. 19세기에 유행한 어떤 기악곡은 유머가 있으나 약간 변덕스러운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유머레스크(humoresque)》이다. 슈만과 드보르자크의 작품이 유명하다고 전해진다. 피아노 대곡(大曲)의 형식을 취하는 슈만의 《유머레스크》는 표정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자주 변하는 특징을 띄는데, 이를 두고 슈만 자신은 ‘웃음보다는 오히려 눈물겨운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다. ¹ 분명 유머가 있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눈물겨울까? 우리의 귀에 친숙한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를 들어보자. 이는 분명 어떤 생동으로 출발하였는데, 어느새 감상자로 하여금 차분한 정서를 환기하는가 싶더니 이내 밀려드는 회한을 거를 방도가 없다. 그런데 이 변덕스러운 감정의 일로가 마치 우리의 사는 모양을 닮아있지는 않는가?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하자.


 스크린이 거울이라면 비치는 내 모습이 슈퍼맨은 아닐 것이며, 반지원정대도 아니겠고, 양조위나 정우성은 더더욱 아니겠다. 그저 늘 도는 쳇바퀴에 마저 발 걸려 넘어지고,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결국 쌓인 통증이 감당 안 되면 눈물겨워지는 그런 사람이겠다. 《유머레스크》 같은 사람 말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놈이 꿈과 환상을 먹고 자란 탓에, 어지간해서는 일상사만으로 빚어진 스크린 속 존재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지난주에,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을 내리며 타인과 나를 견주는 부질없음을 항시 실천하는 바로 그 내가, 스크린에 나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조심스럽게나마 장담하건대 부지기수의 여러분도 같이 나왔다. 그리하여 같이들 보셨으면 하는데, 상영시간표에서 찾기가 여간 녹록지 않다. 후딱 읽으시고 예매를 서두르자!



※ 여든두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는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Brad's Status (2017)>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관람 추천 글로서 스포일러를 배제하였으나, 감상 전 영화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감상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줄거리] ²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을까?
평온했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이 남자의 인생 타임라인!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브래드는 사회에 영향력을 행세하는 크레이그, 절대 갑부 제이슨, 은퇴 후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빌리 등 잘 나가는 대학 동창들의 SNS를 보며 열등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아이비리그에 지원하려는 아들 트로이와 함께 보스턴으로 캠퍼스 투어를 떠나게 되고 잠시나마 아들의 명문대 진학이 자신의 초라함을 보상해 줄 거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트로이의 실수로 하버드 입학 면접 기회를 잃게 되고 브래드는 아들을 위해 껄끄러운 사이인 크레이그에 연락해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거울의 영화


 ‘쉬운 접근’에의 반감은 일전에도 슬쩍 언급한 바가 있다. 최근작을 예로 들어 다시금 곱씹자면 <살인자의 기억법>을 굳이 관람하지 않았는데, 이는 순전히 원작 소설을 읽은 후에 든 반감으로부터 기인한다. 한 명의 인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며 또 작품 내내 인물의 내면을 쫓으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성 속에서, 바로 그 주인공을 보자. 그는 연쇄 살인범이자,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렸다. 흥미롭고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수학에서의 ‘자승(自乘)’ 혹은 ‘제곱’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거기에 더해 주인공은 박식한 데다가, 기억력이 감퇴하였다 뿐이지 40대 소설가의 그것처럼 빠른 두뇌 회전과 어휘력을 지니기까지 하였다. 특수한 인물이 부닥치는 상황은 그렇지 않은 인물에 비해 특수할 수밖에 없다. 슈퍼맨이 마주하는 상황과 내가 마주하는 상황은 같을 수 없겠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인물을 내세워 놓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면 뭐 그런가 보다 하겠으나, 그 편리한 작가 정신에 나는 저만치 거리를 둘 것이다.


 이제 관람한 영화 이야기를 하자. 뻔한 대조가 되겠으나,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그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그저 나와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한다. 상업영화는 재밌어야 하는데 그 기댈 언덕은 평범한 인물이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단연코 재미있다. 그 험난했을 성취는 역설적으로, 평범한 인물을 더욱더 있는 그대로 비추는 시도로써 달성된다. 마음속의 번뇌가 이리저리 횡행하는 사태를 브래드(벤 스틸러 분)의 내면을 응시하며 전개하는데, 방식일랑 치면 독백이나 상상 같은 것뿐이다. 우리의 모습으로 예를 들자면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읊조리는 혼잣말이나, 복권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하겠노라는 상상 따위의 것들, 그러니까 나와 -감히 추측건대- 당신의 그것과 똑 닮아있음이다. 이런 주인공은 어찌할 수 없이 반갑고 또 아련하다. 그리하여 번역된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브래드를 위로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음에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상영시간이 이어질수록 브래드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가고, 이내 우리를 위로하는 일과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결국,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당신을 위로하는 ‘거울의 영화’로 다가설 것이다. 그저 거울로 비추었을 뿐인데 말이다.


*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스틸컷 





타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의문이 일 것이다. 이토록 팍팍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삶의 거죽을 어찌하여 스크린에서까지 비추어 봐야만 하느냐는 의문 말이다. 앞서, 나와 닮은 상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다 보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첫 번째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유는 반대 방향에 있다.


 브래드의 번민이 우리의 그것과 닮았다는 ‘증 1호’는 소셜미디어나 여타의 매체로 전달받는 아는 사람들의 잘 나가는 행적들 앞에 무너지는 마음들이다. 아들이 하버드대학에 능히 입학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이후, 기뻐하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명한 인사의 이름을 우리가 잘 아는 모국어 이름자로 대체하거나, 하버드대를 서울대로 바꾸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감상 중 항시 궁금했던 문제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장면은 브래드가 아들의 하버드대 면접을 추진하는 과정 중에서, 아들의 성취에도 질투를 느끼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구심인데, 오래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훗날 만에 하나 혼인이라는 것을 하고, 만에 둘 나에게도 자식이라는 존재가 생겨났을 때, 혹시 이 대상에 대해서 내가 질투를 느끼는 일이 없을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자식은 하거나 해내었을 때, 그저 나의 일처럼 기쁘기만 할까? 아직도 의심스럽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의 성취가 아니지 않나…. 이와 같은 이야기를 지인에게 전하면 공감하지 못하거나, 아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접하곤 하였다. 그런데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에서는 주인공 브래드의 근심이 이 지경까지 확대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이지 반가웠다. 그런데 이 글은 추천사이니 나의 반가움은 잠시 뒤로하고, 다시 추천의 언어로 회귀하도록 한다.


 영화관에서 반드시 옆 사람과 같은 장면에서 웃을 필요는 없다. 도리어 웃음을 포함한 다른 반응을 다양한 시점에서 접하는 경험은 미세하게나마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직전에 든 사례처럼 이 거울의 영화는 -특히 한국- 관객의 고민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 모르는 영역까지도 아주 폭넓게 비춘다. 그리하여 내가 웃거나 공감하는 장면과 타인의 그것이 다를 수 있기에, 다양한 반응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숨어있다. 이는 단지 나와의 닮음만이 아닌 내 주변 사람의 닮음까지도 이 거울이 함께 비추기에 가능한 일일 지다. 그렇기에 다소 거리가 있는 타인의 내면까지도 들추어볼 수가 있음이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같은 기회는 이런 영화가 아니라면 흔히 맞이할 수 없다. 그것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버스에서, 카페에서,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를 통해 엿볼 수 있음이다. 잘 안 보이던 타인을 만나고 싶다면, 다시금 이 영화를 권한다.


**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스틸컷





고마워요, 미스터 브래드!


 사실 추천 글을 길게 쓸 것도 없다. 손 아픈 일이다. 다음 영화의 이름들을 보자. <디파티드 (2006)>, <시간 여행자의 아내 (2009)>, <머니볼 (2011)>, <월드워Z (2013)> 부족한가? <노예 12년 (2013)>, <빅쇼트(2015)>, <문라이트 (2015)>, <옥자 (2017)> 정도면 어떠한가? 이 작품들은 모두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속의 브래드가 아닌 현실의 브래드, 곧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이 모를 수 없는 바로 그 이름, 브래드 피트가 선택한 작품들이다. 브래드 피트는 ‘플랜 B 엔터테인먼트(Plan B Entertainment)’라는 영화 제작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작품은 모두 그의 ‘플랜 B’에서 제작한 작품들의 이름인 것이다. 위 작품 중 무려 세 편(<디파티드>, <노예 12년>, <문라이트>)이나 아카데미 작품상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제작자의 빼어난 선구안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³


자신이 설립한 제작사 ‘플랜 B’에 대해
"아직 세 명이 있는 작은 회사다. 할리우드는 상업적인 영화 위주로 제작된다"며
"우리 회사는 만들기 힘들고 심오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라고 운을 뗐다.

- 영화 <퓨리 (2011)> 홍보차 방한 당시 기자회견 중 브래드 피트 발언 ⁴


 그리고 올해 ‘플랜 B’의 선택은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이다. 무엇을 더 망설이나?


*** 영화 <퓨리 (2011)> 홍보차 방한 당시 기자회견 중 브래드 피트









추석 이후의 우리를 위한 영화


 연휴가 길다지만, 열흘 금방이다. 우리는 금세 우리의 현실 앞에 설 것이며, 다시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가 던지는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길 필요까지 있을지는 늘 의문이나, 가끔은 한 발치 떨어져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봄은 분명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권하였다. 그리고 짧게나마 세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하나, 자막이 다 올라갈 즈음 영상이 나오니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 둘, 감상 후 《유머레스크》를 들으며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을 읽을 것. ⁵ 그리고 마지막 셋. 너무 선명한 거울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감상하지 말 것. (소곤) 그래도 웬만하면 보셨으면 좋겠어요!^^ 





참고

⁵-¹

 - Dvořák Humoresque, Yo Yo Ma, Itzhak Perlman 연주 버전

 -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93&v=oBDmAxSFt6A


⁵-²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91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¹-¹

 - 국립국어원, <유머레스크 (humoresque)>

 - http://stdweb2.korean.go.kr/search/View.jsp?idx=251512


¹-²

 - 네이버 지식백과, <유머레스크 [humoresque]> (두산백과)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2399&cid=40942&categoryId=33011


²

 - 다음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4489


³

 - 텐아시아, 조현주 기자, 2017년 3월 2일 자, “‘디파티드’부터 ‘문라이트’까지, 브래드 피트의 빛나는 선구안”

 -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149041


 - YTN, 김수정 기자, 2014년 11월 13일 자, “'퓨리' 브래드 피트 "플랜비 직원 3명 작은 회사..보람 느낀다"”

 - http://www.ytn.co.kr/_sn/1407_201411131151021260_001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다음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4489


*, **

 - iMDb, <Brad's Status (2017)>, 중 ‘Photo Gallery’

 - http://www.imdb.com/title/tt5884230/mediaindex?ref_=tt_mv_sm


***

 - YTN, 김수정 기자, 2014년 11월 13일 자, “'퓨리' 브래드 피트 "플랜비 직원 3명 작은 회사..보람 느낀다"”

 - http://www.ytn.co.kr/_sn/1407_20141113115102126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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