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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Dec 30. 2017

2017년 올해의 영화

아흔다섯 번째 지난주




영화로 한 해를 돌아본다는 것


 행복한 한 해였다. 어떤 방향이랄 것이 생겼고, 느리지만 나아갔으며, 무엇보다 무탈하였다. 그리고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편리한 문화생활이 뭐 그리 대수라고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에 감히 개입하나? 뭐 그리 중하다고 한 해가 끝나가는 시간에 영화 제목과 별점을 노려보며 줄을 세워도 보는 것인가?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_ 아쉬가르 파르하디     


If you give an answer to your viewer, your film will simply finish in the movie theatre.
But when you pose questions, your film actually begins after people watch it.  

_ Asghar Farhadi     


 좋은 영화가 많았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말을 빌려, 영화관을 나선 후에 다시 시작한 영화가 많았다. 그 영화들은 영화 이외의 시간까지 온통 영화로 채웠다. 덕분에 영화관 밖에서 우주여행도 떠나고, 잠시나마 애틋해지기도 하였으며, 역사를 되짚기도 하였다. 결국, 한 해의 거의 모든 시간이 영화로 가득 찼다. 이 정도면 돌아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한 편 한 편 떠올릴 적마다 그 영화는 다시 시작되었다. 개중 몇 편은 쉴 새 없이 상영을 거듭했다. 여기, 한 해 동안 나의 마음속에서 가장 많이 재상영된 10편의 영화를 추려보았다. 당신의 목록과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견주어 보십사하고 권한다.




※ 2017년 올해의 영화 선정 기준

- 국내 일반 상영관에서의 최초 개봉일이 2017년인 작품 중, 필자가 감상한 77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국내 최초 개봉일’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해당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지 십여 년에서 이십여 년이 된 작품도 후보에 포함되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이어지는 순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근거하였음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0위부터 역순으로 보여드리는 가운데, 3위부터는 짧은 리뷰를 달았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감상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위


우리의 20세기 (20th Century Women)    

 

감상일 _ 9월 1일     

한 줄 평 _ 이토록 섬세한 20세기!








9위


조용한 열정 (A Quiet Passion)     


감상일 _ 12월 20일     

한 줄 평 _ 조용함을 강요당한 열정이여! 타고남을 번뇌하는 인간이여!








8위


1987 (When the day comes)     


감상일 _ 12월 26일     

한 줄 평 _ 국민이 주연인 영화!








7위


엘르 (Elle)     


감상일 _ 6월 17일     

한 줄 평 _ 더없이 매혹적인 차단!








6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     


감상일 _ 12월 18일     

한 줄 평 _ 자신의 숙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에피소드가 모든 여정에의 균형점을 찾았을 때








5위


세일즈맨 (The Salesman)     


감상일 _ 5월 2일     

한 줄 평 _ 시나리오주의자의 고결하리만치 완전무결한, 모든 사태의 단단한 얼개!








4위


마더! (Mother!)     


감상일 _ 10월 25일     

한 줄 평 _ 인류사에 맞서 한 편의 영화가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용기!









3위


덩케르크 (Dunkirk)     


감상일 _ 7월 21일     

한 줄 평 _ 어떤 체험이 너무 압도적이면, 살기위한 근육들이 움찔거린다는 사실을 영화관 객석에 앉아 상기하는 106분.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



 10위 안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올해 가장 중요한 논의 거리를 남긴 작품은 단연 <옥자>이다. <옥자>는 개봉과 동시에 영화관 스크린보다 한참이나 작은 노트북, 태블릿, 심지어 휴대전화 화면으로도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자정부터 관람할 수 있었으니, 더 먼저 볼 수 있었음이다. 이는 앞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반드시 영화관으로 향할 필요가 없어지는 시대를 미리 비추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아직은 그 고민을 할 때가 아니라고 외치며 다가왔다.


 <덩케르크>를 두고 웅장함만을 칭찬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그 못지않게 편집에도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할 작품이다. 단지 시간을 ‘땅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으로 나누었음에 박수를 보내고자 함이 아니다. 이는 아이디어가 좋았다는 차원으로 가둘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 가지 시간을 자르고 엮어 종국에는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해냄과 동시에, 호흡을 점점 긴박하게 조율하며 감정의 상승과 세 가지 시간을 연계시키는 마술 앞에서는 그저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달을 가리키는데 그치지 않고, 달을 함께 바라보게끔 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가락은 영화가 끝난 후 내 마음속에서 수차례 재상영이 될 적에야 보였다. 물론 이상은 늘 놀란 감독이 잘 하던 일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잘 하던 일을 계속 잘 하기가, 어디 그리 쉽던가…!







2위


컨택트 (Arrival)     


감상일 _ 1월 17일     

한 줄 평 _ 고통을 삼키고 나아가는 인간, 곧 나와 당신의 이야기



 영화 비평을 훈련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취향’이다. 여기서 ‘비평 훈련’이란, 단연 ‘반복하여 쓰기’를 이른다. 쓰고 또 씀에서의 태도는 다음과 같아야겠다. 부족하나마 영화 이론을 바탕에 깔고, 공명정대한 시선으로 모든 영화를 대하며, 나름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취향’이라는 놈이 불쑥불쑥 개입한다. 예삿일이 아니다. 공명정대하게 영화들을 마주할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에게는 이런 요소들이 있다. 언어, 아름다운 화면, 울림을 주는 음악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한데 2017년의 정초부터 한 편의 영화가 온갖 취향에 부합하는 덩어리의 형태로 찾아왔다. 그렇게 <컨택트>는 ‘이미 사랑하는 영화’가 되어 있었다.


 ‘이미 사랑하는 영화’를 객관적인 눈으로 다시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도해본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 언어를 다룬다는 사실이나, 아름다운 화면이나, 웅장한 음악에 있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영화 <컨택트>가 이룬 최상의 성취는 고통을 삼킨 인간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다. ‘고통 속의 인간’은 부처가 말한 고(苦)나, 예수가 진 십자가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비틀거리는 나와 너로 현현한다. 더군다나 고통과 행복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행복하고자 하면 으레 고통이 그림자처럼 따른다. 곧 살아감이 그저 고행길인 셈이다. 그런데 그 고행길에서 가장 강인한 인간이 있다. 바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이다.      


  이제 영화를 보자. 거꾸로 보자. 영화 <컨택트> 속 인간은 예정된 고통을 삼키고서 나아간다. 가장 강한 인간이 등장하는 영화인 것이다. 그런 강한 인간이기에 미지의 존재와 마주 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말을 건네고 들으며 교감할 수 있음이다. 그런 강한 인간이 지닌 강인함을 보이려니까, 기이한 미지의 이미지가 필요했음이다. 그래서 <컨택트>는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 당신 앞의 고통도 당신의 강인함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컨택트>가 전하는 최상의 미덕, 곧 나와 당신의 이야기였음이다.







1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
    


감상일 _ 12월 1일     

한 줄 평 _ 소년을 위한 전쟁은 없다.



 반칙일 수도 있다. 공평하지도 않다. 이미 1991년 세상에 나온 이후, 한 편의 영화에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무수히도 받아든 영화를 한 해를 마감하는 영화 순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두는 일은 분명 어색하다. 그러나 어떤 전쟁(戰爭)이 전장(戰場)에만 머물지 않을 때, 어떤 혼란이 그 시절로 그칠 수 없을 때, 그리하여 한 소년이 그저 한 소년이 아닐 때를 새겨낸 영화가 이윽고 이 땅의 일반 상영관에서 최초 정식 개봉하였음을 못 본채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1950·60년대의 대만을 본다. 있던 것과 새롭게 들어온 것들이 고르게 섞이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섬 위에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흔과 미국의 지원 아닌 지원과 국공내전의 파편과 본성인(本省人)과 외성인(本省人)의 갈등이 각각의 모습으로 공기 중을 떠돌고 있었다. 대륙의 폭력을 도망쳐 도달한 섬에서도 똑같은 폭력이 자행되자, 샤오쓰의 아버지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아이들은 각각 소공원파와 217파를 조직하여 밤이면 몰려다니며 싸움을 한다. 어떤 것은 문화의 모습을 하기도 하였다. 샤오쓰의 집에는 엔카가 흘러들고, 캣은 미국 노래를 부른다. 샤오쓰와 샤오밍 앞을 군용 트럭이 지나쳐 달려간다.   

  

 이 와중에도 라디오에는 합격자의 이름이 울려 퍼진다. 혼란이 가득한 섬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생의 본능은 당연히도 꿈틀거린다. 내 아이들만은 끔찍한 '불안' 속을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은 오롯이 교육으로 전가되고, 아이들은 이 욕망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그중에는 ‘사랑’도 있었다. ‘오래된 전쟁’이 작은 섬나라에서 ‘불안’도 되고, ‘욕망’도 되고, ‘사랑’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전개가 한 소년 속에 녹아들었다. 어린 영혼은 이토록 무거운 단어들을 각각 분리하여 인지하지 못한다. ‘감당할 수 없음’이 현실과 감정을 구분하지 않고 침투한다. 자신의 불안을 자신이 붙들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린다. 이제 자신이건 문제건 어느 것은 삭제해야 한다. ¹ 캣이 화해를 위해 마련한 약속 장소에서 샤오마를 만나지 못한 샤오쓰는 직접 학교 앞으로 간다. 그 자리에서 샤오마가 아닌 샤오밍을 만난다. 1961년 6월 15일 밤, 타이베이시 고령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스틸컷











다양한 한국영화를 위하여


 2017년에 마지막으로 감상한 영화는 <1987>이었다. 아쉬운 지점이 있었음에도, 기억해야 할 역사를 죽음으로 열고 죽음으로 닫는 방식이 좋았다. 오늘의 우리는 그 죽음 위를 살아감을 상기시켜주었기에 좋았다고 함이다. 그리하여 겨우 ‘내 멋대로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뿐이었다. 더 이상의 한국영화는 아무래도 넣을 수가 없었다. 물론 <1987> 외에도 좋은 작품은 있었다. <꿈의 제인>, <남한산성>, <아이 캔 스피크>, <택시운전사>, <여배우는 오늘도>까지 전혀 볼만한 작품이 없었다고 말함은 무리이겠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의 영화에는 조직폭력배가 왜 이리도 많은지, 그걸 쫓는 형사와 검사와 북한과 남한과 남자와 남자와 칼과 피와 근육과 폭력과…….


 팔릴법한 영화에 자본이 투입되는 현실을 너무 나무랄 수만은 없겠다. 그러나 당장의 달콤함만을 탐닉하는 한국영화의 '내일 따위는 없다는 답답한 담대한 행보'는 나무람이 맞겠다. 화가 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부디 새해에는 더 다양한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화가 있어 행복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영화에서처럼!








참고

¹

- 정성일 영화 평론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언젠가 당신의 고전 열 편에 들고야 말 걸작, 혹은 이미 그런 까닭」, 북로그 컴퍼니, 2017, p.279 참고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포스터

- 다음 영화, 각 영화 ‘포토’ 中 포스터 (커버 이미지 직접 편집)

http://movie.daum.net/main/new#slide-1-0     


*

-다음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포토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2713#121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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