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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06. 2023

내 발로 정신과에 갔다

우울증약을 복용하는 선생님이 된 이야기

우울증 약을 받았다. 진단서를 받은 건 아니니 아직 진단받았다 할 수는 없겠지.


금요일에 교장 선생님께 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카톡으로 남편에게 자꾸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고 보건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주말 동안 2월에 퇴사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교장 선생님께 말이라도 해야겠다 하고 줄줄이 할 말을 썼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던 그 길을 아마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악셀을 얼마나 밟아야 다치지 않고 죽을 수 있을까, 어디에 차를 박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혼자 죽을 수 있을까. 차 핸들 위에는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만들어 온 장식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와 우리 가족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가 않고 정답은 나의 죽음뿐이었다. 그러니까 병이겠지. 사고의 회로가 뒤틀리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정답은 하나 같다.


그렇게 간당간당하게 부여잡고 학교에 갔는데, 간당간당한 마음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보건 선생님이 빌려주신 손 지압기로 불안을 누르며, 주말 동안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친 것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는데...


아침 10시에 학부모가 교장실로 찾아왔다.


“선생님의 교육철학이 의심됩니다.”


그 말투와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아침에 교장 선생님과 면담하며 너무 많이 울어서 제대로 생각할 기력도 없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사실 대화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강당에 그네 매다는 고리가 있지, 현수막 밧줄 같은 것도 거기 있을 거야, 현수막 밧줄이 그 고리에 들어가려나, 단단히 묶는 방법은 유튜브 찾으면 나오겠지, 점심시간이 좋으려나 아니면 퇴근 후 시간이 좋으려나, 의자는 높은 게 필요하겠네, 고리는 내 목에 들어가려나. 어떻게 하면 좋겠냐니, 내가 죽으면 되잖아.


학부모님이 나가시고 나서 교장 선생님께서 도와줄 게 없냐 하셨다. 이런 상태로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참을 더 울고 계단을 내려가는 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옥상 놀이터로 올라가서 보니 그물은 허술하고 의자 하나 있으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학교가 너무 작아서 여기서 떨어져서 다치기만 하고 죽지 못하면 어쩌지. 죽지도 못하고 병원비 나오는 건 별로인데. 앉아서 또 한참을 울었다.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 못 한 거지?

아이들이 올해 나를 만나서 최악의 해를 보냈을까?

나는 정말 교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동네의 정신과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금요일에나 예약이 된다는 곳, 다음 주에 예약이 가능하다는 곳, 증상이 무어냐 묻더니 자살충동은 상급 병원으로 가야 한다 했다. 겨우 오늘 취소 자리가 난 곳을 찾아 방문을 했다. 예약이 꽉 차 있다는 사실이 나만 나약한 게 아니구나 위안스럽기도 했다.


정신의학과라니.


9월에 심리상담을 처음 갈 때도 그렇게 문 앞까지가 힘들었는데, 막상 내 발로 찾아간 정신의학과 간판을 보니 내가 진짜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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