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불명의 우울 에피소드로 임상적 추정합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밝고 활기찬 사람이고 씩씩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잠시 스쳐가는 슬픔이야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는 사람이었다.
병가 서류가 필요해서 어제 다시 병원에 갔다. 아직 제대로 된 진단도구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라서 ’상세 불명의 우울에피소드‘, ’상세불명의 불안장애‘ 를 임상적으로 추정한다는 진단서를 받았다. 정서장애 수업들을 때는 DSM-4였나 그랬던 것 같은데 전공 수업에서 들은 단어들이 나에게 주어지다니 기분이 묘했다.
병가를 내고 월요일 오후부터 계속 집 근처에 머무르기로 했다. 남편은 제주도에 갔다 와도 되고, 어디 호캉스라도 혼자 갔다 오라고, 등산이라도 하고 오면 조금은 시원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지금 작은 어항에 갇힌 물고기처럼, 이 연못에서 나가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나의 남편과 나의 아이의 흔적이 가득한 나의 안전기지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짓누른다. 차를 타고 어디로 나가는 것도 무섭고, 학교에 다시 복귀하는 것은 그 가는 찻길만 생각해도 너무나 숨이 막힌다.
이게 비합리적인 생각인 줄을 알면서도, 그리고 이 생각을 ‘비합리적이다’라고 판단할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압박을 견딜 수 없고 이겨낼 수 없을까 봐 겁이 나고 두렵다.
계속 이렇게 살게 될까?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까?
일은 다시 할 수 있을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퇴사하는 게 맞을까?
아침에 아이에게는 나의 병가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출근하는 척을 하며 남편과 집을 나선다. 남편은 이른 시간 여는 집 근처 스타벅스까지 데려다주고 출근을 한다. 그때부터 나의 고군분투가 시작이다. 어제는 스타벅스에서 책 읽다가 갑자기 울고, 집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뭘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빵 터져서 아파트가 떠나가라 울었다.
어젯밤에 약을 처음 복용했고,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제보다 나은 하루가 될까? 나는 나아질까? 우울한 호르몬 같은 걸 막는 약이라던데 오늘은 안 좋은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하다. 위태로운 내가 무섭고 나를 챙겨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미안하다. 나는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까? 엄마랑 아빠에게 안 들킬 수 있을까? 다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