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맥락에서 학생들을 만난 지가 벌써 12년이다. 그 사이 과외, 학원, 공립학교 방과 후 수업, 대안학교 교사 등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며 많은 부모님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중, 고등학생들 중 90% 이상의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였다.
아이들이 답답해하는 만큼, 부모도 답답하다.
아무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봤지만, 내 아이에게는 먹히지 않는 방법이다. 분명 1년 전에만 해도 효과 만점이던 훈육 방법도 어느새 힘을 잃고 말았다. 더 이상 방법을 모르겠다. 그 사이, 아이가 따라가야 할 학업의 산은 더욱 높아진다.
시간은 촉박하고, 지금 중요한 걸 놓치면 나중에 아이가 날 원망할까 싶어, 급한 마음에 해줄 수 있는 노력을 한다. 그렇게 아이의 공부에만 더 집중한다. 그 속에서 아이는 학원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의 노예가 되어가고, 아이는 부모를 '나의 공부를 검열하는 자'로 인지한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는 더 멀어져 간다. 부모도 이 모든 상황이 만족스러울 리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존의 방식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기존의 방식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우리에게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Paradigm Shift. 이 글은 사춘기를 만난 부모에게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며 뇌구조의 전면 공사를 시작한다. 특히 이성과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과격한 확장으로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인지하기 시작하고, 하나의 독립된 개체인 자신을 정의하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졌던 모든 당연한 것을 질문하고 또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내가 보는 대로 인식하고,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던 말과 행동, 감정의 영역에 머물던 아이가, 이제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자아를 인식하는 존재가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여전히 변함없는 세상이 그에게만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수많은 변화와 혼란의 '질풍노도'의 과정 속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가족'에 대한 인식이다.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의존하던 부모님이 나와 다른 타인, 즉 '남'으로 느껴진다. 이때 부모님들도 변화를 감지하고 "그렇게 착하고 말 잘 듣던 애가 어느 순간 갑자기 변해서.."라며 말씀하시곤 한다. 그 중심에는 아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아챈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다.
이렇게 아이는 부모를 타인으로 느끼지만, 부모는 여전히 내 말을 잘 듣고 나를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 어린아이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의 괴리는 부모에게는 답답함으로, 아이에게는 극심한 부담으로 다가오곤 한다. 나는 이것을 관계적 폭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족'이라는 관계적 친밀감을 강요하는 부모와 집안의 분위기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은 생각보다 많다. 자신만의 공간인 방을 부모가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엄마 옆에 누워 자는 게 가장 행복하던 아이가 익숙한 부모는 그 모습이 낯설기만 할 뿐이지만.
재밌는 건, 사춘기에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부모를 타인으로 느끼는 동시에 이전과 같이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내가 방을 치웠는지 말았는지 저 사람이 왜 관여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동시에 내가 배고플 때 밥과 간식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하는 부분이
이런 상황에서 부모에게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1. 인정하기
먼저, 부모가 취해야 할 중요한 태도는 이 모든 변화를 인정하는 일이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아이는 더 이상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라, 함께 대화해 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스스로 원함과 필요를 느끼는 인격이기에, 그것을 인정받지 못함을 힘들어 함도 당연하다. 물론 아직 불안정하고, 불완전하고,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안하다.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어리고 자기중심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고 내 의지대로 하려 한다면 그는 더욱 반항하고 멀어져 갈 뿐이다.
2. 관계의 형성
인정과 함께 필요한 중요한 요소는 관계의 (재)형성이다. 아이는 부모를 타인으로 인식하고, 부모는 이것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마치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지금까지의 관계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다고 여기고, 아이와의 관계 형성을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부모와 아이가 인지하는 둘 사이의 거리는 현저한 차이를 갖는다. 이는 부모 상담을 할 때 "우리는 그래도 아이랑 관계가 좋은 편이에요"라고 할 때 고개를 돌리며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짓는 아이의 표정을 종종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생물학적 애착관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납득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은 그 관계 역시 전혀 차원이 다른 깊이를 갖게 해 준다. 실제 사춘기 시절 이런 문제로 부모님과 멀어는 친구들을 많이 보는 반면, 오히려 이 시기에 부모님과 더 가까워지는 학생들을 (아주 간헐적으로) 보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종류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좋든, 나쁘든.
관계의 (재)형성을 위해 부모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 명령과 복종 >> 대화와 경청
만약 어떤 파티나 모임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과 대화할 때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가? 그 사람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궁금한 건 질문하기도 한다. 나의 의견을 전달할 때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리 있게 표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의 인격인 아이에게 나의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해도 괜찮을까? 내가 옳다한들, 파티에서 처음 만난 타인에게 충분한 대화도 없이 언성을 높이며 나의 옮음을 강요할 것인가? 내가 옳은 생각을 가졌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경청에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나는 "Giving someone your full attention and also allowing them to have their say 상대에게 온전히 귀를 기울일 뿐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느끼는 것만으로 극적인 관계의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이런 변화는 학업 성적의 향상뿐 아니라 아이 내면의 건강한 자아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라고 말하는 많은 가정에서 아이와 따로 이야기를 해보면 "듣는 척은 잘하죠"라거나 "듣기는 하는데 답은 정해져 있어요"라는 말을 한다. 경청은 고막으로 소리를 들여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견에 충분한 존중을 갖는 태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아이들과 관계를 회복하는 건 경청과 대화의 태도만으로도 충분하다
▶통제와 관리 >> 자율
아이의 모든 것을 부모가 관리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적 여유와 충분한 실패의 여지를 주는 태도이다.
어린아이는 걷다가도 넘어진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모래를 먹기도 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때로는 개입하며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위험에 무디고, 도덕적 기준도 모호하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다. 바로 자각 능력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처음이기에 서툴고, 시간도 많이 걸릴지 모른다. 심지어는 그렇게 나온 결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러한 생각과 성찰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다듬기도 하고, 사고의 범위를 더욱 확장해가기도 한다.
물론, 생각이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거나,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성찰의 과정 사이, 아이는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이런 실패는 매우 귀하다. 사람은 실패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가기 때문이다. 또한 고민과 어려움, 혹은 실패 앞에 부모의 지혜를 빌리는 법도 배운다.
물론 부모의 마음은 이걸 두고 보는 게 너무 어렵다.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실패를 겪거나 위험 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면 올림픽을 준비하는 달리기 선수에게 러닝머신은 뛰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근육을 기르는 과정이 없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이다. 더욱이 그런 이유로 아이의 모든 삶의 요소를 부모가 다 휘어잡고 있다면, 아이는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자율성이 억제될 때, 아이는 삶에 대한 동기나 호기심, 그리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를 학습된 수동성이라고 부르며, 현재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수동성을 학습한 아이는 마치 집에서 가두고 기른 오리가 호수에 빠져 익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과 역량도 찾지 못하고 건강한 가치관이나 삶의 기준을 세우기도 어렵다. 그냥 부모나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처리해가는 기계가 되어갈 뿐이다.
3. 멋진 어른, 롤모델
많은 부모님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아이들은 언제나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예컨대 좋은 학원에 보내주는 것보다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이의 학습 동기를 자극하는데 훨씬 좋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기에 더욱 그러하다. 부모의 모든 자랑과 걱정이 나를 향할 때, 아이는 어떤 방향으로든 부모의 인생까지 짊어지는 극심한 부담감을 겪게 된다. 반면 부모가 하나의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부모는 아이의 롤모델이나 살아있는 위인이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지속적인 본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행복한 어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몸소 보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아이의 공부가 걱정인 부모,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부모, 또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사춘기의 이런 인지적, 정서적 변화를 인지하기를 바란다. 부모님과의 관계, 가정의 분위기가 자아 형성과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학습에까지 미치는 영향 역시 학교 수업보다도 크다 하겠다.
사춘기가 가져온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이의 내면은 조금씩 망가져 간다. 이는 바로 앞에 닥친 중간고사 성적보다도 급박하고 중대한 문제이다. 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가정이 아니면 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무엇이 있다. 건강한 부모와의 관계를 가진 아이의 단단함은 그의 성적이나 학력과 무관하게 평생을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