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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Jun 18. 2016

Me before you

혼자 영화를 봤다. Me before you. 너무 슬퍼서 울지 않을 수 없다는 영화였지만, 왠지 그리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영화여서 일까? 슬픈 감정이 올라오기에는 내 생각이 너무 부산했던지도 모르겠다.


시니컬하게 생각하자면 Intouchables 와 굉장히 닮아 있는 영화이다. 굳이 따지자면 영화 버킷 리스트를 Intouchables에 첨가했달까? 돈이 많은, 사지가 마비된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 - 돈에 치이며 살 정도로 가난한 -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쩌면 당연하게도, 남자 주인공 윌에 이입하게 됐다. 자신감 넘치던 사고 이전의 모습들이 그대로 투영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했다. 마치, 나를 닮아있는듯한 착각을 했다. 그리고 윌이 말한 '나는 절대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야.'라는 말이, 그 마음이 너무 깊게 공감이 됐다. 그의 모든 생각과 선택, 그리고 행동과 마음들에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었다.


반명 여자 주인공 루이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중요한 장면들을 여러 개 놓친 것처럼, 어느새 남자 주인공에게 빠져 있는 루이자의 마음은 쉽게 공감이 가질 않았다. 사랑이 그렇게도 쉬운 것이었던가? 7년을 만난 남자친구는 그리도 가벼운 존재였던가? 약간의 불편함과, 비현실적인 감정의 흐름 속에 약간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윌은 이미 오래 전 자기 인생을 포기한 상태였다. 무엇도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스스로를 마치 어떤 짐덩어리처럼 여기는 듯 하다. 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도, 미련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22살, 한창의 나이에 얻은 질병은 한순간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후로 나는 결코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매일 잊지 않고 먹는 약은 되려 나를 죽일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음식 하나를 먹거나 음료 하나를 마시는 것에도 태산 같은 걱정이 몰려온다. 나도 의사도 답을 모르는 내 몸의 문제들과 끊임 없이 씨름하며, 이전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던 병원도 이제는 너무 익숙한 곳이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이런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윌처럼 포기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걸까? 내가 가진, 혹시나 어쩌면 언젠가 기적적으로 나을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혹 그렇다면 그 믿음은 허무한 희망고문의 일종일까? 아니면 죽음을 삶으로 돌려 놓는 놀라운 능력일까? 


나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내가 겪은 변화들 속에 새로운 나를 발견해야 하는 걸까? 이제 더 이상 미래가 될 수 없는 과거의 찬란했던 모습들에 대한 그리움을 놓아줘야 하는 걸까? 요즘도 종종 꾸는 프랑스에서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꿈은, 마치 윌처럼 과거의 나에 대한 집착인걸까?


변하지 않은 척, 이전의 나 그대로인척 노력하려 하지만 결국 나는 결코 그와 같을 수 없음을 안다. 그렇다고 죽음을 선택할 생각은 없다. 삶이 소중해서, 아니 어쩌면 그저 겁이 많아서.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다. 아마도, 분명히, 또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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