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건강 상태와 계속해서 오르는 혈압, 죽어가는 이에 대한 영화까지,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삶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왜 애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최선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는 걸까? 다시 한 번 질문해본다.
죽음이 처음 피부로 와닿았던건 아마 23살 즈음, 중환자실에서 앞 침대에 누워 계시던 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로도 마음으로 수십번을 절망과 희망을,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건강을 억누르는 질병과 죽음을 대면하는 삶이란 참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애석하게도 삶에 대한 의지가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애써 인지하지 않으려 피하며, 예전의 생활 방식, 사고 방식, 가치관과 감정들을 그대로 가지고 살았다. 그것은 되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나를 정확히 인지하는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가진 이 질병이 정확히 어떤 놈인지, 나는 이 질병을 어떻게 안고 가야 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말이다. 쉬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점점 나도 모르게 이런 나에게 익숙해져 갈 뿐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지금의 내가 어지간히 싫었던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그럼에도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가진 신앙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삶의 말과 행동과는 꽤나 모순되는 미약한 신앙이나마 있었기에,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은게 아닐까 싶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그렇기에 생명의 질서를 다스릴 권리가 내게 없음을 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세상에 온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를 향한 목적을 위해 나의 마지막 1분, 1초까지도 쏟는 것이 가장 내 존재의 이유 답게 사는 것이라 믿는다.
더 나아가자면, 사람도 모든 행동 하나, 눈짓 하나, 말을 하며 사용하는 톤 하나, 어휘 하나에도 (때론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목적이 있듯, 신이 내게 주는 상황과 환경들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믿는다. 나의 믿음이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은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나에게는 진리이며, 내게 영원한 행복과 풍성한 기쁨,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는 내 사고와 가치의 중심이다. 그리고 질병 앞에서, 또 삶의 많은 어려움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죽음이 현실로 다가올 때, 그 남은 날들이 더욱 소중해질 때,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의미를 찾게 되는 듯하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의미 없이 살지 않기를. 어릴적부터 바랐던 '의미있는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