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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Mar 03. 2024

살아가는 이유 | 뮤지컬 인문학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스포 조심.


    최근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를 봤습니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좋아하는 작품을 무대에서, 가까이에서 볼 수 이어 좋았죠. 노래도, 연기도, 무대 연출도 너무나 멋졌지만, 극이 끝난 이후에도 마음에 머무르는 생각과 감정은 내용이었습니다. 


    암에 걸린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심장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심장아,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그 동안 가장으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자신을 감싸던 날카로운 가시가 돋힌 갑옷을 벗고,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나만의 이상한 나라로의 문을 연 것 처럼, 나를 잠시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 주었다. 




    아마도 2016년 즈음, 갑작스레 찾아 온 질병과 싸우며 2년의 인공투석과 1번의 신장이식 수술, 그리고 십 수번의 거부반응으로 70%는 망가진 신장으로 매일을 버티던 어느 즈음이었다. 병원 진료를 갈 때면 신장 기능을 말해주는 수치, 고작 해야 소수점 두자리의 숫자 하나에 지구의 축이 휘청이던 시절이었다. 


    병원 진료를 다녀왔고, 넋이 나가 있었다. 정기적인 검사에서 새롭게 발견 된 문제. 진단명은 암. 이식 이후 이제는 기능하지 않은 채 쪼글라들어있던 신장에 암이 생겼다는 소식. '절망'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그 날, 하늘을 향해, 또 나 자신을 향해서 한동안 끊었던 욕을 마구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먹기나 할까 싶은 약봉지를 들고 혼자 사는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멍하기 바라 본 하얀 천장에 지나 온 과거의 기쁨과 슬픔들이 나열하며, 또 앞으로 살아 가고자 했던 날들의 허무를 헤아리며 미동도 없이 누운 채로 밤이 되었다. 


    사람은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로 살아간다.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도는 것 뿐인 무미건조한 물리적 사실 앞에, 우리는 해가 지며 만드는 노을에서 낭만을 느끼고, 다시 해가 드러다는 일출에 희망을 담는다. 누군가를 사랑함도 결국, 그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반대로, 나에게 의미있던 모든 것이 그 의미를 잃는 순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력함에 도달함을 알았다. 암이란, 죽음이란 블랙홀처럼 모든 의미를 빨아들여 사라지게 하고는 오직 암흑만이 가득하게 했다. 


    죽음. 허무. 더이상 지속될 수 없음. 종착역. 영원한 잠. 그저, 마지막. 영화 <패치 아담스>에 나왔던 로빈 윌리엄스가 죽음을 앞둔 환자와 나눈 대화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것의 여러 이름을 나열했다.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저 더 실감이 나게 할 뿐. 그렇게 점점 잠식되어갔다. 어둠으로, 심연으로.


    몇 시간이 지났을지 모르던 침대 위 사색의 사이, 나는 잠이 들기도, 울기도 했다. 먹는 걸 그리도 좋아하는 내가, 특히 병원 진료를 다녀오는 날이면 치팅이라며 원하는 걸 마음껏 시켜 배가 터지도록 먹던 내가 식욕이 없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과 죽음이 앗아간 의미 앞에서의 무기력함 속에서 실시간으로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격한 감정의 오르내림 탓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살려달라는 애원이었을까. 여전히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등으로, 가슴으로. 그 진동은 강하고 힘이 있었다. 천천히 손을 왼쪽 가슴의 살짝 아래로 가져갔다. 


    쿵쿵. 쿵쿵. 쿵쿵.


    심장은, 이 상황을 모르는 듯 했다. 이미 경기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듣지 못하고 여전히 달리고 있는 선수 같았다. 의미를 부여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뇌와는 다르게, 스스로, 어떤 동기부여나 자극이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박동을 나는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심장아, 미안해."


    아무도 없는 방, 누구도 듣지 않을 소리를 육성으로 뱉으며 다짐했다. 심장이 뛰는 한, 살아내겠노라고. 어느 유치한 드라마에 나오는 뻔한 사랑 이야기의 오글거리는 다짐이 아니라, 정말 이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그 날까지 내가 먼저 포기하지는 않으리라는 결의. 이제는 시간이 지나며 흐려지고 잊혀지기도 했던 그 마음이 뮤지컬을 보며 다시 나에게로 왔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많은 생각을, 감정을 남긴다. 가족에 대해, 질병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 모든 배우와 관계자 분들께 감사를, 그리고 앞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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