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삶: 불안에서 확신으로 전환하는 경험 만들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요즘 가장 자주 듣는 푸념 섞인 이 문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스마트폰의 등장, GPT 기술의 상용화, Z세대의 사회 진출 등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단지 새로운 기술로 편리해진 삶을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사고하는 방식 (마인드셋)과 삶을 추구하는 방식 (태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를 지나, 이제는 120세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단지 장수하며 인생을 더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보다 더 큰 걱정은 '노후'가 됩니다.
지금의 사회구조가 설계된 방식은 대략 이렇습니다.
0세부터 30세까지는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성장과 준비,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의 시기
30세부터 60세까지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시기
60세부터 평균 7~80세까지는 '노후'라고 불리는 남은 생을 즐기고 누리는 시기
120세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년퇴직을 하는 60세를 기준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을 더 살아가야 합니다. 단지 노후를 즐기는 시기가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재정의 안정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느끼는 삶의 만족도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화 <인턴>을 참 좋아합니다. 은퇴하고 노년을 즐기던 주인공 벤은 70세의 나이에 스타트업 시니어 인턴에 지원하며, 자기소개 영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매일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어요. 연결되고, 흥분되는 일을 하고 싶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사람은 누구나 의미 있는 존재이고 싶어 하며,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죠. 실제로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감이나 허무함을 느끼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위 포스터에도 보이는 문구입니다.
"Experience never goes out of fasion 경험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모든 경험, 사회에서 쌓은 모든 경력은 시대가 바뀌어도 쓸모가 있다는 뜻이죠. 실제 영화에서도 시대와 맞지 않아 보이는 주인공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패턴이 스타트업의 문법과 조화를 이루며 변화와 혁신, 문제 해결을 이끌어내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다만, 무엇을 경험하는가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슬프게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거나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기업 컨설팅 맥락에서도 종종 듣습니다. 은퇴를 앞둔 대기업의 시니어들 중 '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래전 NASA에서 달로 사람을 보내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될 때, NASA 기지를 방문한 대통령이 신나게 춤을 추며 일하는 청소부를 보고 뭐 하시냐고 물어보니 "저는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죠. 어떤 태도, 어떤 마인드셋으로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경험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이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호텔 룸클리닝을 담당하는 84명 직원들 중 둘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그들이 하는 업무 하나하나가 얼마큼의 칼로리를 소모하는지, 운동 효과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다른 그룹은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죠. 한 달이 지난 후 다시 확인했을 때, 교육을 받은 그룹은 혈압이 떨어지고 몸무게가 줄어들며 허리가 얇아졌습니다.
같은 경험도 어떤 인식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어떤 경험들로 채워질까요?
우리는 사춘기를 겪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사춘기는 엄마에게 짜증 내고 방문을 쾅 닫는 시기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으로 묻는 시기죠. 건강한 자아 형성을 위해 필요한 이 시기를 입시와 교육 경쟁에 빼앗겨 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에,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정답을 따라가는데 익숙해집니다.
우리는 눈치를 기본 문화로 장착합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등교할 때 신발장 앞에서 듣는 말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와"라거나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와 같은 관계 안에서의 처신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가르치는 일은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을 신경 쓰는 사이 '나'는 없는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는 기능적 수행 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학교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주어진 일을 처리해 내는 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창의적, 능동적 인재를 뽑겠다는 표어는 많이 보지만, 실제로는 말 잘 듣고 시키는 일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뽑는 일이 다반사죠.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눈치를 보며 출제자/업무지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생각의 습관이 강화됩니다.
요즘 '나는 뭘 좋아할까', '뭘 해야 행복할까' 류의 고민을 가져오는 연령대는 30대입니다. 특히 말 잘 듣는 어린이로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서 열심히 스펙 쌓고 괜찮은 기업에 취직한 이들이, 회사를 5년 정도 이상 다니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아, 여긴 확실히 아닌데... 그럼 어디지?'를 비로소 생각하곤 합니다.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획 - 경험 - 성찰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계획: 능동적으로 이 경험을 선택하고, 이 경험의 목적과 경험을 통해 얻고 싶은 결과 명료화
성찰: 실제 경험이 계획과 달랐던 부분은 무엇인지, 경험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돌아보기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경험을 하고, 끝나고 나면 휘발되는 경험들은 쌓이지 못하고 활용하기도 어려운 것은, 마치 시험기간에 반짝 공부해서 점수가 나오더라도, 다음 시험에는 다시 까먹어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을 안대로 가리고, 누군가가 잡아 준 손만 의존해서 길을 걸어간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불안은 내 삶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의탁할 때 증폭됩니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오늘 하루/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