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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민 Jun 24. 2019

“냉장고를 부탁해”
허마셴성의 거꾸로 보는 물류

유통을 위한 물류에서

물류를 위한 유통으로

숨어있던 물류를 무대 위에 세우다


#. 천장에 컨베이어 벨트가 흐른다.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매장 직원이 직접 상품을 바구니에 담는다. 직원은 지정 장소로 이동해 상품이 담긴 바구니를 컨베이어 벨트에 건다. 바구니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매장 뒤 한 장소로 모인다. 이곳에 도착한 여러 개의 바구니 속 상품은 고객의 주문에 따라 각각의 배송 상자에 담긴다. 그리고 이 상자는 수직 리프트를 통해 1층으로 출고된다. 바로 배송기사가 있는 곳이다.


허마셴성(盒馬鮮生)의 매장 풍경이다. 이 회사는 알리바바 그룹 산하의 O2O(online to offiline) 신선식품 유통채널이다. 2016년 1월 상하이 첫 매장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다롄, 우시에 진출하면서 3년 새 20개 도시에 13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허마셴성은 주로 야채, 과일, 육류, 수산물 등의 신선식품을 판매한다. 고객이 모바일 앱을 이용해 주문하거나 매장을 방문해 직접 상품을 고르면 매장 주변 3km 이내 지역에 30분 배달 완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래 유통의 단초’로 불릴 만큼 허마셴성은 유명세가 높다. 덕분에 올해 전미소매업협회(NRF)가 선정한 ‘2019년 미래 소매 창조자’ 25명 중에 마이클 에반스 알리바바그룹 사장이 명단에 올랐다. 이때 에반스 사장은 “미래 소매 유통의 모습은 이미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허마셴성 창업주 하오이는 물류인  

필자는 에반스 사장보다 허마셴성 창업주인 하오이(侯毅)에 더 관심이 많다. 하오이는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징동 닷컴(京东, JD.COM)의 물류 총괄 출신이다. 알리바바의 경쟁자인 징동에서 건너온 물류 현장 전문가인 하오이가 만든 허마셴성은 어떻게 알리바바의 대표적인 ‘신유통’ 채널이 됐을까.


신유통 개념은 2016년 10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처음 거론했다. 이 개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물류 서비스가 통합된 새로운 유통 방식을 뜻한다. 마윈 회장은 “순수한 전자상거래 시대는 끝났다”며 소비자의 물류 경험이 만드는 신유통 시대의 거래를 점쳤다. 비슷한 시기에 류창동(劉强東) 징동 회장도 역시 이와 비슷한 ‘무경계 유통(온·오프라인)’ 개념을 제시했고, 그 실현은 물류에 있다고 말했다. 순수한 전자상거래 시대의 종말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지는 대목에서 중국 전자상거래의 양대 거목이 서로 약속한 듯 나란히 ‘물류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허마셴성 창업주인 하오이(侯毅)는 중국 온라인 쇼핑몰 2위 징동 닷컴의 물류 총괄 출신이다. 출처: 盒馬鮮生


냉장고를 창고(倉庫)로 바라보다

"허마셴성이 미래에 냉장고를 없애버리게 될 것이다. 대량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해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 없이 휴대폰으로 주문하면 그만이다." - 장융(張勇) 알리바바그룹 최고경영자  


‘냉장고를 없애겠다’는 허마셴성은 가정에 보급된 냉장고를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필자는 허마셴성 창업주인 하오이가 마윈 회장이 언급한 신유통 개념에 대해 ‘물류로 유통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이 가설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상상력 임을 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냉장·냉동 창고는 냉장이 필요한 신선식품이나 냉동제품의 보관을 담당한다. 유통업체들이 상품을 제때 판매하기 위해, 제때 보관하고, 제때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냉장·냉동 창고는 보관 제품의 특성상 선도 유지를 위해 24시간 운영이 필수다. 비싼 전기료는 물류 운영비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온도에 민감한 제품들의 관리는 더 까다롭다.


생활 속 냉장고는 어떤가. 소비자들은 제때 먹기 위해, 1~2주일치 식품을 잔뜩 사서 미리 냉장고에 보관한다. 어쩌다 석 달 넘은 냉동육도 있고, 한편에 꽁꽁 숨은 썩은 야채도 있게 마련이다. 냉장고 속은 언제 먹을지 모를 식료품으로 늘 꽉 차 있다. 먹고 싶을 때 먹기 위해 성능 좋은 냉장고를 사고, 값비싼 전기료를 지불하면서 말이다.


물류 운영 측면에서 볼 때, 가정용 냉장고는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허마셴성은 가정용 냉장고를 대체할 ‘클라우드 냉장고(매장형 냉장·냉동 창고)’ 개념을 만들었다. 냉장고를 집에 두지 않고도 언제, 어디든, 먹고 싶은 식품을 앱으로 주문하면 집까지 바로 배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덩치가 커 집안 면적을 가장 많이 차지했던 애물단지 냉장고와 이별을 선언한 순간이다.

1927년 GE가 개발한 가정용 냉장고는 신선식품을 한 번에 대량으로 구매하는 등 도심 소비생활을 바꾼 사건이 됐다.


3내 30분 배달로 냉장고를 없애라

다시 강조하지만 허마셴성 창업주 하오이는 중국 2위 전자상거래업체 징동 닷컴의 물류 총괄 출신이다. 보관뿐만 아니라 택배 등 배송 서비스에서도 남다른 관점이 있을 게 뻔하다. 그는 “30분 무료 배송은 전 세계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라며 “이 모든 게 자동화 기술 덕분”이라고 말한다.


허마셴성에 따르면 주문부터 배송까지 총 소요되는 30분 중 10분은 매장에서 물건을 골라 배송 상자에 담는 데까지 걸린다. 나머지 20분은 배송 과정 중 도로에서 소요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허마셴성 매장을 잘 살펴보면 단서가 있다. 매장 뒤에는 300㎡의 물류합류구역(物流合流區域)이 설치했다. 그리고 매장 안 천장에는 ‘트롤리(trolley)’라고 불리는 자동화 운송시스템으로 물류합류구역까지 서로 연결돼 있다. 매장 직원은 고객 주문에 따라 상품을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는 트롤리를 타고 매장 뒤 물류합류구역에 보내져 배송에 나갈 차비를 한다. 매장은 전시판매, 창고 저장 및 온라인 주문 물품 선별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 주문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에서 허마셴성은 자신만의 독특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허마셴성의 AI(인공지능)는 고객의 주문이 많은 상품을 미리 진열대에 채우도록 알려준다. 또 현지 교통과 기후 상황, 배송기사 배치 등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허마셴성 매장 천장에는 상품을 담은 장바구니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인다.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주문한 상품이 배달되기까지의 물류 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숨어있던 물류가 무대에 서다 (백엔드에서 프론트엔드로)

유통 관점에서 물류는 기능상 늘 매장 뒤에 숨어 있다. 매장 진열대에 오를 상품을 사전에 보관하고, 분류하고, 포장하고, 또 배송하기 위해 뒤편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관점을 바꾼 것이 코스트코(costco)의 창고형 매장이다. 창고와 매장을 합쳐서 유통과 물류비용을 낮추고 그 혜택은 소비자에게 경쟁력 있는 가격에 상품을 제공해 시장 혁신을 일궜다.


이에 비해 허마셴성의 물류는 신유통 채널을 만드는 가장 중심에 서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유통은 ICT 기술 기반의 온·오프라인 소매와 물류의 융합을 뜻한다. 이러한 생태계는 O2O 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물류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빅데이터, AI, 스마트 물류 등의 첨단 기술이 뒷받침하고 있다.


허마셴성 매장의 천장에서 움직이는 자동화 운송시스템 트롤리가 그 결정체다. 매장을 찾은 소비자에게 자신이 주문한 상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게 하는 것은 허마셴성 만의 독특한 물류 운영방식을 경험하게 한다. 소비자들의 물류 체험은 온·오프라인 경계를 넘어선 허마셴성의 구매 신뢰로까지 이어진다. 생활 속 물류 경험이 결국 소비문화가 된 것이다.  


고개를 들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 허마셴성 매장의 천장을 바라보자. ‘유통을 위한 물류에서, 물류를 위한 유통으로’ 미래의 유통 혁신은 물류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된다고 하오이는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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