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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민 Jun 27. 2019

과로로 ‘신음’하는
집배원을 외면하면 안 되는 이유

지난해 과로사 추정 25명, 135년 우정 역사상 첫 파업이 던진 화두


"대표님 회사는 하루에 최대 몇 박스나 배달할 수 있어요?"
"OOO 업체는 OOO 지역 당일 픽업 가능한가요?"
"박스당 운송료가 0000원이요? 더 받을 수 있나요?"

 

보름 전, 우체국 파업이 예측되면서 이 기간 동안 택배 등 대체 배송에 나설 운송사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우정부가 비상수송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필자는 (물류 전문) 기자다. 현장에 나가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업체마다 하루 최대 처리물량, 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 건당 운송료 등 흥정이 오가는 장면을 맞닥뜨렸다. “이참에 한몫 제대로 당겨보자”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의 흥분된 목소리도 건너편에서 들렸다.

 

치열한 사업 현장에서 경쟁사의 위기로 기회를 잡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게임을 할 때도 상대방이 휘청일 때 기선을 잡는 법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체국 파업에 따른 대체 운송에 나서는 업체도 배달업에 종사하는 개인사업자나 직원을 직간접 형태로 고용하고 있지 않은가.

 

파업을 틈타 타인의 불행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역겨운 악취’가 났다. 일일이 업체들의 명단을 나열하고 싶지만 우체국 파업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은 이야기라 생략한다.

 

집배원은 왜 파업을 선택했을까

오는 7월 9일 총파업에 손을 든 집배원은 얼마나 될까. 우정노조에 따르면 파업 찬반 투표 결과 93%가 찬성했다고 전했다. 압도적인 수치다. 파업할 경우 사상 초유의 공공 물류 대란이 예상된다. 해마다 벌어지는 화물연대 파업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왜냐면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 증명력이 있는 등기우편물 배달이나 민간 택배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도서산간 배송, 그리고 군 우편물 서비스에 제동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노조가 파업을 감행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동료의 배달 물량을 떠안는 ‘겸배’

우정노조에 따르면 올해 과로로 추정되는 집배원 사망자가 9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25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번 총파업의 단초가 된 지난 19일 충남 당진우체국 집배원의 사망 원인도 뇌출혈(과로로 인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로로 신음하는 집배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가장 큰 문제로 ‘겸배(兼配)’가 꼽힌다. 겸배는 집배원 한 명이 다른 집배원의 업무를 떠안는 구조를 말한다. 우정노조에 따르면 집배 예비 인력이 없다 보니 집배원 1명이 연차를 사용할 경우 다른 집배원이 10~20% 정도의 초과 물량을 떠안고 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연간 최대 노동시간 2977시간

우체국 집배원의 노동시간은 연간 2745시간(2017년 기준, 출처: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1763시간에 비해 982 시간이 더 많다. 국내 임금노동자 평균인 2052시간보다 693시간 더 일한다. 부산·경남 13개 우체국 소속 집배원의 평균 노동시간은 57.1시간이라고 한다. 연간으로 계산하면 최대 2977시간에 이른다.


여기에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시행도 한몫 거들었다. 일과시간 내 업무를 끝내기 위해 노동강도가 커졌지만, 근로수당 등은 오히려 줄면서 임금이 깎이는 불이익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토요일에 집하, 배송 등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우체국이 유일하다.


집배원 증원 등 예산 확충은 ‘국회의 몫’

우정노조의 주장에 대해 우정부도 하소연할게 많다. 왜냐하면 집배원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인식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인 우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는데 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숫자가 모자란 집배원을 충원하는데 필요한 재정 확충은 우정부가 아닌 국회의 몫이다. 우정부는 집배원 1000명을 추가 채용하기 위한 방안을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답보상태다. 우정부의 주무부처인 과기부도 집배원 인력 충원과 관련해 행정안전부의 조직진단 판단 여부에 따라 정부 예산안 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말을 풀이하면 현재로선 집배원 증원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다.

 

우정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까

우체국을 다시 생각해봤다. 어떤 곳인가. 그곳에 일하는 분들은 어떤 위치인가. 우체국은 과기부 산하 공공기관이고, 집배원은 공무원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그분들처럼 말이다. 물론 집배원 모두가 공무원은 아니다. 별정 우체국이나, 위탁 집배원들은 일반 개인사업자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서 집배원은 원래 공무원이다. 공무원 채용은 국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려면 예산 심의도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추경 예산도 준비해야 한다.  우정부는 한국전력이나 대한석탄공사처럼 독립된 기업이 아니다. 정부 부처의 한 기관일 뿐이다.


우정부는 공공기관으로서 목표는 ‘우정 서비스를 통한 국민에 대한 봉사’ 일 것이다. 우체국 택배의 경쟁사는 CJ대한통운이나 롯데, 한진이 아니다. 민간기업과 출혈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 우체국 예금보험의 금융부문도 마찬가지다. 일선 은행이나 보험사처럼 수익 위주의 경쟁을 제1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우정부의 적자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기는 하다. 2011년 마이너스 439억 원이었던 게 올해는 1960억 원 정도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편요금 인상 등의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우정부가 예금, 보험 등 금융업도 하고 있고, 택배, EMS(해외특송) 등 물류사업을 통해 돈을 더 벌고, 그 명분으로 추가 채용을 하려고 하고 있다.


토요일 쉬는 동사무소, 일하는 우체국

우정부는 예금, 보험 등 금융업도 하고 있고, 택배 등 물류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우정부는 공무원이지만 정부 예산을 받지 않고 이익금을 정부 재정으로 환원하는 유일한 조직이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정부기업인 우정부가 흑자를 목표(금융, 택배 등)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부 기업이 적자를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다. 


독일이나 미국처럼 우정서비스가 민영화되거나 공기업으로 독립돼 활동할 수 있다면 흑자를 내기 위한 요금 인상 등 여러 가지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우체국이 민영화되기 전에는 정부도 국민도 우체국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아니면 우정부 스스로가 본연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목표를 과감하게 수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공무원들에게 민간 택배회사처럼 빠른 배송이나 정시 배송, 그리고 주말 배송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는가.


에필로그. 몰염치, 그리고 하소연

불행한 사람들의 눈을 보며, 자신의 현재 상태를 깨닫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며 살기도 한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 루치아’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지만 집배원의 죽음은 무시한다. 우체국 파업을 앞두고 미소 짓는 이들이 있다. 한 가지 묻고 싶다. 대체 운송에 투입될 귀사의 직원은 도로 위에서 안전한가? 스스로 자문해보길 바란다.

누군가의 아버지인 그분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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