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도 배송받았다. 오늘도 배송받을 것이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아침 알림은 더 이상 알람시계가 아니라 배송 도착 푸시다. 점심 메뉴는 냉장고가 아니라 앱에서 고른다. 퇴근 후 현관 앞에는 내가 주문한 기억도 희미한 물건들이 쌓여 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이상한 일인가? 아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나는 물류 전문가가 아니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도시가 어떻게 변하는지, 기술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후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했고, 지금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며 이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
나는 배송 효율을 높이는 법을 알려주지 못한다. 물류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지도 못한다. 로봇 기술을 설명할 수도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물류 시대가 아니라 '배송되는 삶' 안에 살고 있다.
이 연재는 물류 산업을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의 하루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누가 당신의 시간을 설계하는지, 왜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는지, 집 앞 현관이 왜 더 이상 당신만의 공간이 아닌지를 따라간다.
배송은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설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다.
물류는 기술이 아니다. 삶의 운영체제다.
이 연재는 10회에 걸쳐 진행된다.
1회부터 3회까지, 우리는 '이동하는 존재'에서 '배송받는 존재'로 바뀐 과정을 본다. 4회부터 6회까지, 도시가 어떻게 거대한 창고가 되었는지, 소비가 왜 감정 관리 장치가 되었는지 들여다본다. 7회부터 8회까지, 이 시스템을 떠받치는 노동이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 마주한다. 9회부터 10회까지, AI 이후 우리 삶이 누구에게 배송되고 있는지 묻는다.
정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도, 비관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질문을 남길 것이다.
나는 업계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시스템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당연하게 여겨져서 질문되지 않는 것들, 편리함 뒤에 숨겨진 구조들.
나는 이 시대를 관찰해온 사람이다. 문명 해석자로서, 지금 우리가 어떤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지 함께 보고 싶다.
이 글은 곧 책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당신과 먼저 나누고 싶었다. 책이 되기 전에 당신의 삶과 먼저 만나고 싶었다.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 연재를 읽고 나면 당신은 배송 알림을 다르게 보게 될 것이다. 현관 앞 택배 박스를 다르게 느낄 것이다. 장바구니 버튼을 누르는 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배송받을 것이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우리는 함께 이 질문을 따라간다.
나는 지금, 누구의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가.
이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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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나는 언제부터 배송받는 존재가 되었는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