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언제부터 배송받는 존재가 되었는가

by 김철민


1.

토요일 아침 10시. 나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연다.

장을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몸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손가락이 움직인다.

앱을 연다. 우유, 계란, 양파, 세제. 장바구니에 담는다. 결제 버튼을 누른다.

"1시간 내 도착 예정"

나는 다시 소파에 기댄다. 나는 방금 장을 본 것인가, 아니면 장을 보지 않은 것인가?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2.

10년 전, 토요일 아침은 달랐다.

장을 보러 간다는 건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리를 걷고, 마트에 들어가고, 카트를 밀고, 진열대 사이를 헤매고, 계산대에 줄을 서고, 무거운 봉투를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

그게 '장을 본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클릭 몇 번. 1시간 후 현관 앞.

무엇이 바뀐 것인가? 장을 보는 방식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사는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다.


3.

인간은 원래 이동하는 존재였다.

집은 잠을 자는 곳이었다. 삶이 일어나는 장소는 항상 집 밖에 있었다.

학교, 시장, 직장, 병원, 관공서, 놀이터, 종교 공간, 광장.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동'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었다.

배우려면 학교에 가야 했다. 일하려면 사무실에 가야 했다. 먹으려면 식당이나 시장에 가야 했다. 치료받으려면 병원에 가야 했다. 만나려면 약속 장소에 가야 했다.

삶의 모든 동사 뒤에는 '가다'라는 동사가 따라붙었다.

그게 인간이 사는 방식이었다. 그게 문명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4.

그러나 지금,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집에서 일한다. 집에서 산다. 집에서 배운다. 집에서 진료받는다. 집에서 만난다.

삶의 모든 동사 뒤에 '가다'가 사라졌다. 대신 '받는다'가 들어왔다.

배송받는다. 전달받는다. 제공받는다.

인간은 이동하는 존재에서, 배송받는 존재가 되었다.


5.

"코로나 때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2020년,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췄고, 우리는 집에 갇혔고, 그래서 배송이 늘었다고.

하지만 그건 정확하지 않다.

코로나는 새로운 삶을 만든 게 아니다. 코로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던 시스템을 실행시킨 버튼이었다.

온라인 쇼핑, 원격 근무, 배달, 화상 회의, 원격 진료. 이 모든 건 이미 존재했다. '언젠가 올 미래'로 존재했다.

코로나는 그것을 '지금'으로 바꿨다. 선택지를 '기본값'으로 바꿨다.

인간은 적응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구조 안으로 강제 이동되었다.


6.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산다. 아니, 어쩌면 더 편하게 산다.

비 오는 날 마트 갈 필요 없다. 퇴근 후 마감 세일 놓칠 걱정 없다. 주차 전쟁 할 필요 없다. 무거운 짐 들고 계단 오를 필요 없다.

모든 것이 온다. 내가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이 나에게 온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외출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배송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었다.


7.

이건 단순히 쇼핑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삶의 기본 동선이 재편된 것이다.


과거: 사람이 이동 → 상품을 획득

지금: 상품이 이동 → 사람은 대기


이 전환은 생각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이동하는 존재는 동선을 설계한다. 언제 출발할지, 어디를 거쳐갈지, 무엇을 먼저 할지. 시간과 공간에 대한 판단을 계속 내린다.

그러나 배송받는 존재는 대기한다. 클릭하고, 기다린다. 도착을 확인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설계권이 이동했다.


8.

그렇다면 누가 설계하는가?

당연하지 않은가. 배송 시스템이 설계한다.

몇 시에 도착할지는 알고리즘이 결정한다. 어떤 경로로 올지는 플랫폼이 결정한다. 누가 가져올지는 배차 시스템이 결정한다.

나는 선택했다고 느낀다. "내가 주문했으니까."

하지만 정확히 보면, 나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을 뿐이다.

그 선택지를 설계한 건, 내가 아니다.


9.

집의 의미도 바뀌었다.

집은 원래 쉬는 곳이었다. 삶이 벌어지는 곳은 밖이었고, 집은 그 삶에서 돌아와 회복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집은 쉬는 곳이 아니다.

집은 일터다. 집은 학교다. 집은 병원이다. 집은 상점이다. 집은 영화관이다. 집은 헬스장이다.

집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모든 서비스가 이 플랫폼으로 배송된다. 상품만이 아니라, 노동도, 교육도, 의료도, 문화도.

그리고 이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운영체제가 있다.

그것이 바로 생활물류다.


10.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편해졌는데. 시간 절약되는데. 효율적인데.

맞다. 문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동 없이 사는 존재'가 되었다.

이동은 단순히 위치의 변화가 아니다. 이동은 선택이고, 판단이고, 시간 설계고, 우연한 마주침이고, 몸의 감각이었다.

그 모든 것이 외주화되었다.

배송이 그것을 대신한다.


11.

물류는 기술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물류를 '산업'으로 본다. 택배, 로봇, 드론, 자동화, 효율, 속도.

그러나 그건 표면이다.

물류는 지금, 삶의 운영체제다.

당신의 하루는 물류 위에서 작동한다. 아침 우유, 점심 도시락, 저녁 장보기, 밤 야식. 일주일 식단, 한 달 생활용품, 분기별 가전.

이 모든 게 배송 시스템 없이는 멈춘다.

물류는 더 이상 '서비스'가 아니라, 문명의 기본 인프라가 되었다.

물, 전기, 도로처럼.


12.

나는 오늘도 배송받을 것이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클릭 몇 번. 1시간 후 현관 앞.

너무 자연스럽다.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받고 있는가? 단지 상품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삶의 설계권을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 주, 우리는 집을 다시 본다.

집은 언제부터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생활 플랫폼'이 되었는가. 현관 앞은 왜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이 아닌가.




[다음 글]

2화. 집은 언제부터 생활 플랫폼이 되었는가 에서 계속 됩니다.

https://www.beyondx.ai/2hwa-dosineun-eonjebuteo-jibi-anira-canggoga-doeeosseul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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