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집은 언제부터 생활 플랫폼이 되었는가

생활물류: 인간의 삶은 어떻게 배송되고 있는가

by 김철민

1.

월요일 아침 7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노트북을 연다.

첫 번째 회의는 8시. 두 번째 회의는 10시. 점심 주문은 11시 반에 해야 12시 반에 도착한다.

침대에서 책상으로 이동한다. 3미터.


2.

책상에 앉는다. 화상회의를 켠다. "안녕하세요."

회의가 시작된다. 화면 속 동료들. 다들 집에 있다. 나도 집에 있다.

오전 회의 두 개. 오후 업무.


3.

점심시간. 초인종이 울린다. 현관으로 간다. 도시락을 받는다.

책상으로 돌아온다. 먹으면서 이메일을 확인한다.

오후 3시. 또 초인종. 택배다. 어제 주문한 책. 현관에 놓는다. 나중에 뜯어보겠다고 생각한다.


4.

저녁 6시. 오늘 업무 종료. 노트북을 닫는다.

퇴근한 것인가?

소파로 이동한다. 5미터. 스트리밍 서비스를 켠다.

7시. 배고프다. 배달 앱을 연다. 저녁을 주문한다. 30분 후. 또 초인종. 저녁이 도착했다.


5.

밤 9시. 온라인 요가 수업. 영상을 켠다. 매트를 깐다.

10시. 친구와 영상통화. "요즘 어때?" "그냥 그래. 너는?" "나도 그냥."

11시. 잠들 준비.


6.

나는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일했다. 먹었다. 쇼핑했다. 운동했다.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7.

잠시 멈춰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 집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집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이상한 질문처럼 들린다. 집은 원래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 집은 단순히 내가 머무는 공간이 아니었다.

집은 내가 삶을 실행하는 장치였다.


8.

20년 전을 떠올려본다.

그때 집의 정의는 명확했다. 집은 쉬는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밖으로 나갔다. 학교든, 직장이든, 시장이든.

삶이 벌어지는 장소는 밖이었다.


9.

학교에서 배웠다. 사무실에서 일했다. 식당에서 먹었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서점에서 책을 샀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씻는다. 밥을 먹는다. TV를 본다. 잔다.

집은 삶에서 돌아와 회복하는 공간이었다.


10.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명확히 구분되었다.

집 안 = 사적 영역 (쉼, 수면, 가족, 회복)

집 밖 = 공적·사회적 영역 (노동, 교육, 소비, 관계, 문화)

이 경계는 확실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공적 영역으로 들어간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사적 영역으로 돌아온다.

집은 '밖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는 은신처였다.


11.

그러나 지금, 그 경계는 사라졌다.

집에서 회의한다. 집에서 강의를 듣는다. 집에서 진료받는다. 집에서 장을 본다. 집에서 운동한다. 집에서 사람을 만난다.

일, 교육, 의료, 소비, 여가, 관계.

과거에 집 밖에서만 가능했던 모든 행위가, 지금은 집 안에서 일어난다.

집은 더 이상 '쉬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일어나는 곳'이 되었다.


12.

언제부터였을까?

많은 사람이 "코로나 이후"라고 말한다. 2020년,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췄고, 우리는 집에 갇혔고, 그래서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배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코로나는 변화를 만든 게 아니라 가속화했다.

집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13.

초고속 인터넷이 집에 들어왔을 때. 스마트폰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을 때. 배달 앱이 일상화되었을 때. 스트리밍 서비스가 TV를 대체했을 때. 재택근무 시스템이 구축되었을 때.

조금씩, 천천히,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에서 연결된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코로나는 그 전환을 단 몇 개월 만에 완성시켰다.


14.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집에만 있어도, 된다.

학교 가지 않아도 수업 들을 수 있다. 사무실 가지 않아도 일할 수 있다. 병원 가지 않아도 진료받을 수 있다. 마트 가지 않아도 장볼 수 있다.

밖에 나가는 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오늘 밖에 나갈 일 있어?" 이 질문이 일상이 되었다.


15.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집에만 있으면 편해야 하는데, 더 바빠졌다.

왜?

집이 쉬는 곳이었을 때, 집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자고, 먹고, 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집에서는 모든 것을 한다.


16.

아침 8시 회의. 9시 업무 시작. 10시 또 회의. 12시 점심 주문. 1시 업무 재개. 3시 택배 받기. 6시 저녁 준비. 7시 온라인 수업. 9시 화상 통화.

하루가 빽빽하게 채워진다. 집 안에서.

과거에는 '이동'이 하루의 호흡을 만들었다.

출근길. 점심 산책. 퇴근길. 마트 다녀오기.

장소를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듬이 생겼다. 물리적 이동이 시간의 구분을 만들었다.

그런데 집에만 있으면, 그 리듬이 사라진다.

침대에서 책상까지 3미터. 책상에서 소파까지 5미터. 소파에서 주방까지 4미터.

하루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압축된다.


18.

그래서 집의 정체성이 바뀌었다.

집은 더 이상 '공간(Space)'이 아니다. 집은 '플랫폼(Platform)'이 되었다.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여러 서비스가 실행되는 운영 환경이다.

과거의 집: 물리적 공간 - 쉬는 곳

현재의 집: 서비스 실행 플랫폼 - 모든 것이 실행되는 곳


19.

이 플랫폼 위에서 모든 것이 작동한다.

일 → 화상회의, 메신저, 이메일

쇼핑 → 배송 앱, 온라인 쇼핑몰

의료 → 원격 진료 앱

교육 → 온라인 강의

운동 → 홈트레이닝 앱

여가 → 스트리밍 서비스

관계 → 메신저, 영상통화

집은 이 모든 서비스의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20.

그렇다면 누가 이 플랫폼을 운영하는가?

당연하지 않은가. 나다. 나는 집주인이니까. 내 공간이니까.

정말 그럴까?

아침 회의 시간은 내가 정했는가? → 회사가 정했다.

점심 배달 시간은 내가 정했는가? → 플랫폼이 정했다.

택배 도착 시간은 내가 정했는가? → 물류 시스템이 정했다.


21.

나는 선택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확히 보면, 나는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고를 뿐이다.

집은 내 공간이지만, 집 안에서 실행되는 모든 서비스의 설계권은, 내게 있지 않다.

나는 플랫폼의 소유자지만, 플랫폼에서 실행되는 시스템의 사용자일 뿐이다.


22.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집이 플랫폼이 되었다면, 이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운영체제(OS)는 무엇인가?

인터넷? 스마트폰? 앱들?

아니다. 그것들은 인터페이스일 뿐이다.

진짜 운영체제는, 생활물류다.


23.

생각해보라.

물류가 없으면 이 플랫폼은 작동하지 않는다.

재택근무를 하려면 → 식사가 배송되어야 한다.

온라인 쇼핑을 하려면 → 상품이 배송되어야 한다.

집에서 운동하려면 → 용품이 배송되어야 한다.

집이 생활 플랫폼으로 작동하려면, 모든 것이 집으로 와야 한다.

그래서 물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생활 인프라가 되었다.


24.

집의 공간 구조도 바뀌고 있다.

과거 집의 핵심 공간은 거실이었다. 가족이 모이는 곳. TV가 있는 곳. 손님을 맞는 곳.

지금 집의 핵심 공간은? 현관이다.


25.

현관은 더 이상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현관은 물류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아침 우유가 도착한다. 점심 도시락이 도착한다. 오후 택배가 도착한다. 저녁 장보기가 도착한다. 밤 야식이 도착한다.

하루에 몇 번씩 문을 열고 무언가를 받는다.


26.

과거에는 사람이 현관을 통해 들어오고 나갔다.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왔다. 현관은 사람의 출입구였다.

지금은? 상품이 현관을 통해 들어온다.

사람은 나가지 않는다. 대신 상품이 들어온다.

현관은 집과 세상을 연결하는 물리적 포트가 되었다. 현관은 생활물류의 종착점이 되었다.


27.

그래서 현관 앞은 더 이상 내 공간이 아니다.

배송 기사가 온다. 배달 라이더가 온다. 우유 배달원이 온다. 새벽 배송 기사가 온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낯선 사람이 내 집 앞까지 온다.


28.

과거에는 집 앞까지 오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가족. 친구. 초대받은 손님. 우편 배달원(가끔).

지금은? 플랫폼이 보낸 사람들이 매일 온다.

나는 이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온다.

왜? 내가 클릭했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으로, 내 집 앞까지의 접근 권한을 넘겼다.


29.

집이 플랫폼이 되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었다.

편리함. 시간 절약. 효율성. 선택의 자유.

밖에 나가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었다. 집의 고유성.


30.

과거의 집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밖의 세상과 단절된, 오롯이 나만의 영역. 문을 닫으면, 세상이 차단되었다. 집 안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지금의 집은? 수많은 서비스의 종착지다. 플랫폼의 말단 노드다. 물류 네트워크의 최종 배송지다.

집은 더 연결되었지만, 더 고립되었다.


31.

모든 것이 집으로 오기 때문에,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집에서 해결되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집은 더 풍요로워졌지만, 더 외로워졌다.


32.

그렇다면 이제 집은 무엇인가?

집은 삶의 단말기가 되었다.

모든 입력과 출력이 이곳에서 일어난다.

입력: 클릭, 주문, 요청, 검색

출력: 배송, 서비스, 콘텐츠, 연결

그리고 이 단말기를 작동시키는 운영체제는 생활물류다.


33.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편하잖아. 효율적이잖아. 선택할 수 있잖아.

맞다. 문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집의 주인이지만, 집 안에서 실행되는 시스템의 주인은 아니다.


34.

집은 내 소유다.

하지만 이 집을 생활 플랫폼으로 작동시키는 모든 서비스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설계하고, 운영하고, 통제한다.

나는 사용자다. 그러나 설계자는 아니다.


35.

오늘도 나는 집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클릭하고, 받고, 실행하고, 소비하고.

너무 자연스럽다.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집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집이라는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집은 누구의 것인가? 법적으로는 내 것이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다음 글에서, 우리는 도시를 다시 본다.

도시의 1층은 왜 모두 물류 공간이 되었는가. 편의점, 주유소, 아파트는 왜 배송 네트워크의 노드가 되었는가.


[다음 글]

3. 도시의 1층은 왜 모두 물류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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