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YOUtiful Dec 08. 2017

고흐는 왜 자신의 귀를 잘랐을까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아이코닉한 인물로 만든 것 중 하나는 아마 그가 스스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다는 일화 때문일 거예요. 대개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는 그의 귀는 스스로 잘랐다고 알고 있죠. 그렇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가설이 더 있답니다.


1888년 2월, 아를이라는 프랑스 남부 지방으로 이주한 후 파리에서 그와 친분이 있었던 고갱을 아를로 초청해요. 고흐는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유토피아와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었거든요. 이때, 고갱이 아를로 가게 된 것은 사실 온전한 마음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닌, 당시 아트 딜러로 고갱에게도 금전적으로 지원을 약속했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입김 때문이었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흐와 고갱은 그다지 절친은 아니었다고 보이죠.


몇 번의 거절 후에 1888년 10월에 아를로 간 고갱. 그곳에서 고흐와 고갱은 약 두 달 정도 함께 지냈는데,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관계는 깨어졌어요. 그들의 주된 불화의 원인은 예술에 대한 견해 차이. 고흐는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작업을 추구했으나, 고갱은 반대로 회화에 상상을 가미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같이 지내는 동안 자신의 화풍이 고흐에게 영향을 주기를 바랬어요.


고갱과 함께 지낸 시기에 그려진 그림.
익히 알려진 고흐의 화풍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저는 얼핏 뭉크의 그림을 보는 듯도 했어요.
<에텐 정원의 추억(Memory of the Garden at Etten)> November, 1888, St. Petersburg, Hermitage



그렇게 두 달 동안 쌓여온 불화로 고흐와 고갱 모두 지쳐가고 있었죠.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888년의 12월 23일, 그날도 역시 그들 사이엔 다툼이 있었고 고갱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가버려요.  그런 고갱을 면도 칼을 든 고흐가 뒤쫓아 갔지만 고갱을 공격하는 대신에 홀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면도 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고흐는 그 길로 자른 귀를 창녀촌의 라셸(Rachel)이라는 여자에게 가져다줬대요. (음, 그녀가 창녀인지 매춘업소의 하녀인지 저는 아직 question이어서 여자라고만 해둘게요.)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이 정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의 귀는 고갱에 의해 잘렸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고갱은 뛰어난 펜싱 선수였고, 말다툼 끝에 고흐의 귀를 잘랐다고 말이죠. 고흐와 고갱 모두 고흐의 자해였다고 말했지만 이 또한, 고갱을 아꼈던 고흐가 그의 죄를 덮어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면서요. 후에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는 보낸 편지 속 "다행히도 고갱이나 나나, 혹은 다른 화가들도 아직 진짜 기관총이나 다른 파괴적인 전쟁무기로 무장하진 않았다."라는 구절을 증거로 제시하는데, 사실 저에겐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 보이진 않아요. 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비교적 개인적인 기록을 많이 남겼던 고흐가 직접 그날에 대해 서술한 것이 없는 것은 안타깝죠. 아래는 고갱이 <Gauguin's Intimate Journals>라는 자신의 책에서 서술한 그날의 일을 참고로 가져왔습니다.

This is what had happened. Van Gogh had gone back to the house and had immediately cut off his ear close to the head. He must have taken some time to stop the flow of blood, for the day after there were a lot of wet towels lying about on the flag-stones in the two lower rooms. The blood had stained the two rooms and the little stairway that led up to our bedroom.When he was in a condition to go out, with his head enveloped in a Basque beret which he had pulled far down, he went straight to a certain house where, for want of a fellow-countrywoman, one can pick up an acquaintance, and gave the manager his ear, carefully washed and placed in an envelope. “Here is a souvenir of me,” he said.

반 고흐는 집을 돌아가자마자 그의 귀를 잘랐다. 피에 젖은 수건의 양으로 보아 그는 지혈을 하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피는 방 두 개와 침실로 향하는 계단에도 얼룩져있었다. 그가 나갈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그는 매춘업소로 향했고, 매니저에게 씻은 후 봉투에 싼 그의 귀를 주었다. "내 선물이야."라고 말하며.
(제가 해석한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만, 오역은 양해를 바랍니다_)


그런데 이번엔 Martin Bailey라는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요. 그는 문제의 그날에 고흐가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약혼 소식이 담긴 편지를 듣고 귀를 잘랐다고 주장해요.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동생으로부터 관심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는 거죠. 사랑하는 동생의 결혼, 마땅히 축하해주고 싶었겠지만 많은 부분 그에게 의지하고 있던 빈센트로선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양가감정에 휩싸였을 것 같긴 해요.


사실 빈센트가 자신의 귀 전체를 잘랐는지 아니면 귓볼만 잘랐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반 고흐의 지인이었던 화가 폴 시냐크나 동생 테오의 아내는 그가 귓볼만 잘랐다고 말했대요. 하지만, 그날 출동했던 경찰관 알퐁스 로베르는 반 고흐가 귀 전체를 잘랐다고 진술했고, 빈센트의 상처를 치료했던 아를 병원의 스물세 살짜리 인턴 펠릭스 레 역시 그의 귀는 귓볼만 조금 남긴 채다 잘려나간 모습이었다고 그려놓았죠.


당시 빈센트를 치료했던 Dr Félix Rey가 남긴 빈센트의 잘린 귀에 관한 기록


한 세기하고도 반 백 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인지라, 지금에 와서 그 누가 정확한 진실을 알 수가 있을까요. 그가 왜, 어떻게, 얼마나 귀를 잘랐는 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반 고흐 자신 밖에 없을 테니까요. 모두가 정설이라고 믿는 것에 끝없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 잘못된 태도는 아닐 테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예술가가 얼마나 자신의 경제적, 정신적인 컨디션 속에서 고군분투했었는지와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간 그 열정 아닐까요.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아래 글들을 참고하여 썼습니다. 

참고 

https://www.brainpickings.org/2017/08/23/gauguin-van-gogh-ear/

http://www.history.com/news/7-things-you-may-not-know-about-vincent-van-gogh

https://www.rnw.org/archive/why-did-vincent-van-gogh-cut-his-ear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18/story_n_6345694.html?ncid=fcbklnkkrhpmg00000001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6/oct/31/van-gogh-cut-off-his-ear-learning-brother-theo-to-marry-new-study

http://blog.vangoghgallery.com/index.php/en/2017/05/24/why-did-vincent-van-gogh-cut-off-his-ear/

https://www.vangoghmuseum.nl/en/stories/on-the-verge-of-insanity#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