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베를린을 힙한 도시라 칭하고, 어떤 이는 젊음과 예술의 도시라 일컫는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베를린에게 제각기 다른 감상을 가지겠지만 나에게 베를린은 애틋한 도시다.
난 무언가를 사랑할 때 아픔까지 알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어, 나 독일 좋아하네.’ 가 ‘나 독일 좋아해!’ 라는 확신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나라의 수도인데 안 좋아하고서 어찌 배기겠는가. 가보기도 전에 사랑에 빠질 줄 알고 아예 첫날부터 아픔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슬프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게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데도 멈춰서 기록된 아픔을 들여다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홀로코스트 추모비,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장벽을 거닐며 정처 없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다른 사상과 언어라는 이질감과, 전쟁과 분단이라는 키워드의 동질감을 오가며 멀어졌다가 친해졌다 반복하기를 여러 번. 알 수 없을 감정이 응어리진 채로 남아있었다. 이 응어리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픔을 알겠다고 다짐한 건 나인데, 끙끙대고 있으니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혼자서 한 일이라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응어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벼워졌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400-500년 전 그림에도 사람들은 잔디 밭에 드러누워 있길 좋아했고, 여럿이서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멈춰있는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림을 볼 줄 몰라도 한결같은 인간의 모습이 익숙해 웃음이 나왔다.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를 들을 땐 벅차서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저 수많은 현악기와 목소리가 어우러져 한 곡을 연주한다니. 음악과 미술은 참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겠구나. 모호한 감정 속에서 사유는 명료해진다.
더 넓은 세상을 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근데 사람이 한순간에 좋은 사람이 되진 않았다. 화려한 미술 작품을 보고 황홀한 연주를 들었다고 나의 상상력이 샘솟거나 창의력이 더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내가 더 가냘프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실패해도 괜찮은 삶을 살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이유는 충분하다.
두 발이 이 땅 위를 걷고 있는 것, 아무리 애써도 엉망진창인 나를 한껏 받아줄 세계가 있다는 것, 자신의 쓰임을 다해 걸작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쓰임을 다하겠다는 작은 다짐. 그것들이 모여 항해의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그뿐이다.